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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jin Feb 12. 2024

여섯 번째 로그아웃

2024년 2월 8일_1100_1945

새집으로 이사하기 전에 한 달 정도 기간이 뜨게 돼서 부모님 댁에서 지내고 있는데, 제대로 된 내 방도 없고, 집안은 내가 가져온 짐들로 정신없고, 일찍 퇴근하시는 부모님과 계속 같이 있다 보니 뭔가를 진득하게 할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핑계지만. 그래서 도통 책도 못 읽고, 공부도 못하고,  종일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핸드폰에서 조금이라도 해방되고자 시도하고 있는 로그아웃인데, 그 이외의 시간은 오히려 핸드폰에 매몰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간밤에도 새벽까지 유튜브와 예능을 보느라 제시간에 잠들지 못했다. 한심하다.


2024년 2월 8일 목요일


1100-1140 청소&아침식사


1140-1230 빈야사 요가

지난주와 동일하게 빈야사 요가를 진행했다. 우선 현재 내 몸은 지난 금요일에 걷다가 접질린 왼발에 여전히 멍과 붓기가 있다. 그다음 날 바로 한의원에 갔는데, 보통은 잘 다치지 않는 아킬레스건에서 떨어지는 후면 인대가 다쳤다는 소견과 함께 침치료를 받았다. 걷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으나, 쪼그려 앉거나 발목을 신전하는 동작에 여전히 통증이 있다. (이 발목으로) 클라이밍 하러 갔다가 이번에는 왼쪽 견갑골과 목에 근육통이 왔다. 며칠은 잠자기도 힘들었다. 부지런히 스트레칭도 하고, 파스도 붙이고, 마사지도 해서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힘들다.


이런 상태에서 요가다. 우선 허리 디스크로 유연성이 너무 떨어지고, 몸의 양쪽 밸런스가 전혀 안 맞는 게 느껴진다. 오른 어깨는 늘 부대끼는 듯한 느낌이 든다. 팔을 하늘로 올리는 아주 단순한 동작만 하더라도 오른쪽 어깨가 덜 올라간다. 그래도 요가가 끝낸 후에는 견갑골과 목 통증 텐션이 떨어져 어깨가 조금 가벼워진 듯하다. 다행히 발목에 무리가 크게 가지 않았고, 왼쪽 발목에 힘을 주는 동작도 따라 할 수 있는 걸 보니 인대가 크게 다친 건 아닌 것 같다. 여전히 온몸이 삐걱대서 수월하게 따라 할 수 있는 동작은 없지만 전반적으로 몸의 긴장이 풀어진 거 같아 개운하다. 


1320 카페 도착


1330-1510 독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원제: Survival of the Friendliest)

독서 편식을 줄이기 위해서 올해는 적게 읽더라도 문학과 비문학을 번갈아 읽기로 했다. 문학 한 권 읽으면, 그다음에는 무조건 비문학 도서를 읽는 식이다. 최근에는 한국사 책을 두 권 읽고, 이번에는 (굳이 분류하자면) 자연/과학이다. 초반에 진화론과 유전학에 관한 부분이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기본 전제가 흥미로웠고 후반부는 (사회심리학과 정치분야를 아우르는) 사회적 담론을 제시하고 있어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만 가볍게 받아들이며 읽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인간 종과 다르게 끝까지 살아남아 현생의 인류로 남게 된 이유가 특유의 친화력과 사회력이었고, 적자생존에만 매몰되어 있던 기존의 이론을 확장한다. 개가 우리의 반려견이 된 이유도 인간이 친화력이 좋은 개들을 선택해 길들였기 때문이 아니라, 친화력 좋은 늑대들이 스스로 자기 가축화의 과정을 거쳐 인간과 살아가게 되었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것도 흥미롭다. 또, 사람 자기 가축화 가설은 같은 집단 내에서만 친절하고, 이외의 집단은 비인간화하며 잔인해지는 인간 본성의 역설을 야기한다. 종국에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전히 반목하는 세계 (인종 차별을 포함한) 갈등의 해답이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아 번성하게 된 협력과 소통, 그리고 관용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우치게 한다. (이 책도 추천합니다)


1510-1540 다이어리&일기

당황스럽다. 카페에 노트북으로 글도 쓰고, 책도 읽으려고 왔다. 분명히 노트북 충전기를 가방에 담았는데 열어 보니 없다. 오는 길에 흘렸는지(어쩌다가 왜?), 아니면 집에서부터 제대로 가방에 안 넣은 건지 알 길이 없다. (집에 오니 책상 위에 있네…?) 배터리도 얼마 없는 상태라 글쓰기는 글렀다. 책 두 권을 챙겨 나왔는데, 한 권은 다 읽었고 다른 한 권은 지난달부터 읽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다. 총 두 권으로 되어 있는데, 오늘 챙겨 온 책은 이미 읽은 1권이다. 어째서 나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는가… 결국, 읽을 책도 없고 노트북은 배터리가 없어 꺼지기 직전이다. 치즈케이크 마저 먹고 집에 왔다.


1600 집 도착


1610-1640 글쓰기


1640-1810 티브이 시청

부모님 댁에 오니 유튜브/넷플릭스도 보고 + 티브이도 볼 수 있음…


1810-1835 독서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2)


1835 저녁식사


1945 끝


뭔가 한 것도 없이 9시간이 휘리릭 지났다. 그러나 다시 한번 꼭 이 시간에 생산적인 뭔가를 해야겠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겠다. 평소에도 핸드폰 보는 시간을 줄이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내지 말고 해야 될 것들을 야무지게 해내는 게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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