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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팅힐 Oct 19. 2024

내 인생에 이런 일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출산 2주 만에 항암을 시작했다

상피내암이 아니라 유방암 3기에

겨드랑이와 쇄골까지 암이 전이됐다는 게

나의 현실이었다..

검사결과를 듣고 다음날 항암을 하기 위해 입원을 했다.

단 한 번도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본 적이 없어서

걱정되고 아이들도 너무 걱정됐다.
그리고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항암치료가 너무 두려웠다.
막연하게 항암은 머리가 빠지고 엄청 고통스럽다고만 알고 있었다.

수술 전 6번의 항암과 수술 후 12번의 항암..
나는 총 18번의 항암을 받아야 한다.​
항암약이 독성물질로 암을 죽이는 거라 혈관이 많이
망가지기 때문에 케모포트 시술을 하기로 했다.
쇄골 쪽 피부밑으로 기구를 심어서 그쪽으로 약을 주입하면 혈관손상도 없고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해서 편하다고 했다.​

겨우 잘 참고 참았는데 입원 후 케모포트 시술하는 날..​
결국 터지고 말았다.

부분마취로 시술을 하는데 시술 과정이 다 느껴져서​
무섭다는 말을 들은 후로 마음이 진정이 되질 않았다.​
유방암카페에서 여러 후기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고 싶었는데 오히려 더 두려워졌다.


지금 내가 이런 시술을 받아야 하는 걸까?
차가운 수술방에 멀쩡하게 눈뜬 채로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내가 뭘 잘못한 거야?..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이야?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 만큼 감정이 바닥을 쳤다.

수술실을 들어가기 전 간호사를 붙잡고 제발 나 좀​
재워달라고 울었다. 너무 무섭다고.. 너무 두렵다고..
수술대에 누워서도 교수님한테 울면서 말했다.

너무 무서워요.. 저 못하겠어요..

그래도 내 또래였던 교수님이 시술 내내 말을 걸어주며 정말 진심으로 위로해 준 덕분에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시술받으면서.. 교수님께 물었다.

우리 아들들 커가는 거 볼 수 있을까요?라는 내 물음에 너무 당연하단 듯이 웃으면서 손주까지도 볼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교수님 말이 참 고맙게 느껴졌다

케모포트 시술은 아프고 불편한 느낌이 강했지만
생각보다 견딜만한 아픔이었다..

아마 케모포트라는 것을 평생 모르고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이런 걸 알게 되고 또 그런 걸 내 몸에 심는다는 자체가 너무 겁이 났었던 것 같다

다음날..
드디어 첫 항암을 시작했다..
tchp 4가지 약을 사용하는 데 주사를 맞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이거구나.. 이런 독한 약이 내 몸에 들어가는구나..
너희들 제발 내 몸에 있는 암덩어리 좀 없애주라..

나도 독한 너희들 버텨볼 테니 꼭 싸워서 이겨내 주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사를 맞았다..

그러다 갑자기 주사를 맞는 도중 오한이 왔다..

온몸이 떨리면서 급격하게 추워졌다

지켜보던 남편이 급하게 간호사를 호출하고 또 다른 주사를 맞고 나니 점점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오한을 제외하고는 큰 이벤트 없이 1차 항암을 끝냈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서가 진짜 시작일 것이다
보통 항암은 맞고 2-3일 뒤부터 부작용이 시작된다고 한다. 

독한 약이 온몸을 돌아다니며 나쁜 세포뿐 아니라 정상세포까지 다 공격해 버리니
내 면역력은 바닥을 칠 거라고 했다..
사람마다 부작용이 달라서 나도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는 모르지만 일단 유방암은 99프로 머리카락은 빠진다고 하니 마음을 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우리 큰아들에게 엄마가 머리카락이 빠지는걸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그걸 가장 고민했던 것 같다.

2박 3일간의 1차 항암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들 얼굴을 보니 모든 게 괜찮아질 것만 같다

버티자 버텨내자..

난 엄마고.. 아직 지켜줘야 할 두 아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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