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성
아들은 세 살 때부터 딸기를 참 좋아했다. 말을 잘하지 못하던 시절, 딸기를 보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음! 음!" 하며 입을 벌렸다. 딸기를 건네주면 두 손으로 꼭 쥐고 입 안에 잔뜩 넣곤 했다.
딸기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한 번은 딸기를 보며 한 손으로 딸기를 가리키고, 다시 눈을 가리켰다. 당시 내가 “딸기가 눈에 좋대”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딸기를 먹어야 눈이 좋아진다며 나름의 표현이었던 것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웃음이 나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 아들과 함께 마트에 갔다. 과일 코너에 딸기가 보이자 아들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빠, 딸기 먹고 싶어요!”
어렸을 적 딸기를 좋아하던 아들의 모습이 생각나 흐뭇한 웃음을 보이며 가격표를 보고 잠시 멈췄다. 아니! 왜 이리 비싼 것인가? 물론 오르지 않은 것은 우리들의 월급뿐이라는 생각과 함께... 계절성을 띄는 딸기는 겨울 초입이라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조금 비싸네. 겨울 초입이라 딸기가 많이 없거든.”
아들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딸기가 비싸요? 얼마나 비싸요?”
“요즘은 평소보다 두 배 정도 비싸지. 대신 봄이 되면 많이 싸질 거야.”
“그럼 봄까지 기다려야 해요?”
아들이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짓길래 딸기 한 팩을 집으며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하나 사자. 오랜만에 먹는 거잖아.”
아들은 웃으며 딸기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근데 아빠, 왜 겨울에는 딸기가 비싸요?”
아들이 딸기 가격에 관심을 갖는 걸 보니, 탄력성이라는 경제 개념을 설명할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겨울에는 딸기 생산이 어려워서 그래. 날씨가 추우니까 딸기가 잘 안 자라고, 그래서 가격이 더 비싸지는 거야.”
*참고 : 사실 딸기의 제철은 6월이지만, 요즘은 시설 재배로 계절을 타지 않는다. 겨울에 많이 나오는 이유는 재배 농가들이 경쟁 과일이 적은 겨울 시장을 집중 공략했기 때문이다.
“그럼 봄이나 여름에는 딸기가 싸져요?”
“그렇지. 그때는 딸기가 많이 생산되니까 가격이 내려가지. 예를 들면 수박도 그래 여름에는 수박이 많이 나오니까 가격이 내려가지. 다른 계절에는 수박을 구하기 어렵잖아. 그래서 수박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고...”
아들은 딸기가 가득 쌓인 상상 속 풍경을 그리며 말했다.
“아빠, 그럼 우리가 겨울에는 딸기를 조금 덜 먹고, 봄에 많이 먹으면 되겠네요!”
그 순간 나는 아들이 방금 ‘탄력성’이라는 경제 개념을 자연스럽게 이해한 것을 깨달았다. 물론 ‘탄력성’이라는 단어는 어른들도 생소하긴 하지만... 원리를 이해할 정도는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제학에서 ‘탄력성(Elasticity)’은 쉽게 말해, 가격이 바뀔 때 사람들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느냐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딸기를 생각해 보자. 딸기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소비자들은 금방 반응한다. 대신 딸기를 덜 사거나, 다른 과일로 대체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딸기의 가격탄력성이 높다고 말한다. 가격이 높아지니 바로 구매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휘발유처럼 꼭 필요한 물건은 가격이 올라도 수요가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 기름값이 갑자기 오르면, 차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잠깐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차를 덜 몰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차를 다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는 편리하고 대중교통이 제공하지 못하는 자유로운 이동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휘발유의 수요는 가격 변화에 민감하지 않다고 표현하며, 이를 가격탄력성이 낮다고 한다.
탄력성은 단순히 물건의 가격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공급의 변화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오르면 농부들은 더 많은 농산물을 생산하려고 한다. 하지만 농작물이 자라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농산물의 공급 탄력성은 낮은 편이다.
탄력성을 설명하다 보면 ‘낮다’와 ‘높다’의 표현을 계속 쓴다. 하지만 쓰다 보면 자꾸 헷갈린다. 머릿속도 복잡해진다.
그럴 때는 방법이 있다. 고무줄을 한 번 생각해 보면 쉽다. 딸기의 탄력성은 잘 늘어나는 고무줄과 비슷하다. 가격이 오르면 사람들이 금방 반응해서 소비를 줄이거나 다른 과일로 바꾼다. 잘 늘어나니 탄력성이 높다고 한다. 반면, 휘발유는 딱딱한 고무줄 같다. 아무리 잡아당겨도 잘 늘어나지 않는다. 가격이 올라가도 사람들이 쉽게 행동을 바꾸지 못한다. 탄력성이 낮은 것이다.
공급도 마찬가지다. 농산물은 공급의 탄력성이 낮다. 농부들이 딸기를 더 많이 재배하려 해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씨를 뿌리고, 자라기를 기다리는 과정은 단축할 수 없다. 농산물은 딱딱한 고무줄인 셈이다. 하지만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제품은 다르다. 가격이 오르면 생산량을 금방 늘릴 수 있다. 늘어나는 고무줄이다. 이런 상품은 공급의 탄력성이 높다.
탄력성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경제학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깊은 통찰을 준다.
삶은 늘 변한다. 어떤 날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찾아오고, 또 어떤 날은 그 변화에 따라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유연함이다.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새로운 환경 속에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태도는 탄력성이 높은 삶을 사는 방식이다. 유연함은 단순히 상황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이다.
그러나 모든 변화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필요는 없다. 어떤 순간에는 자신만의 중심을 지키는 단단함이 중요하다. 주변의 소음과 흔들림 속에서도 내가 지켜야 할 가치를 놓치지 않는 태도는 탄력성이 낮은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삶의 중요한 원칙을 지킬 수 있게 한다. 유연함이 변화를 따라가는 힘이라면, 단단함은 내가 변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되새기게 한다.
그리고 탄력성은 또 다른 교훈도 준다. 변화에 즉각 반응하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준비하고 나아가는 과정의 중요성이다. 인내와 성실함은 삶에서 흔들림 없는 토대를 만든다. 우리는 모든 변화를 따라갈 수는 없지만, 꾸준한 노력은 언젠가 변화를 극복하고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탄력성을 경제개념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앞서 얘기했듯 경제는 우리의 삶을 연구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탄력성을 통해 언제 유연해야 하고, 언제 단단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지. 탄력성을 이해하는 것은 결국 우리 삶의 태도를 돌아보는 일이다. 변화에 휘둘리지 않고, 필요한 선택을 하며, 성장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 이것이 탄력성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인생의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