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불용의와 소비자 잉여
어제 저녁, 아들과 용돈 이야기를 나누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들에게는 용돈이라는 개념이 아직 익숙하지 않다. 사실 당장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학교에서 점심은 급식으로 해결되고, 간식은 집에서 챙겨먹으니까 굳이 쓸 일이 없었다. 뭐 필요한 물건들은 다 사줘서 불편함은 없었다.
그래도 용돈은 돈을 관리하는 법을 배우는 중요한 시작점이다.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 앞으로 1주일에 한 번씩 용돈을 줄게. 네가 필요한 걸 사거나 모아서 나중에 쓰면 돼.”
아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용돈으로 뭐 하죠?”
“글쎄, 너가 갖고 싶은 걸 생각해 보면서 결정하면 돼. 그리고 이왕이면 저축도 조금씩 해 보면 좋고.”
아들은 잠시 생각하더니, 갑자기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빠! 그럼 로벅스를 살래요!”
로블록스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스킨이 부러웠나 보다.
“그래? 그럼 용돈으로 로벅스를 사는 건 네 선택이니까 괜찮아. 그런데 얼마면 될까?”
이 질문에 아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진지한 얼굴로 무언가 계산하듯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들의 머릿속에는 나름의 계획이 있는 것 같았다. 로블록스의 상점을 보면서, 로벅스를 얼마나 사야 원하는 스킨을 살 수 있을지 생각하는 모습이 무척 진지했다. 한참을 고민하더니 아들이 말했다.
“아빠, 1만원 이하는 너무 싼 것 같아요. 그럼 15,000원이면 돼요. 로벅스 800개 살 수 있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왜 하필 15,000원이야? 더 많이 사면 더 좋지 않아?”
“음… 그 이상은 필요 없어요. 800개정도면 아껴서 사면 될 것 같아요.”
아들의 대답을 듣고 웃음이 났다. 그는 이미 자신이 돈을 어디에 쓸지, 또 얼마가 적당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사실 이것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지불용의(Willingness to Pay)’와 같은 개념이었다. 아들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금액을 계산하고, 그것이 자신의 만족감을 충족시킬 만큼 적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불용의는 단순하면서도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경험하는 개념이다. 쉽게 말해, ‘내가 이 물건에 얼마까지 낼 수 있을까?’를 스스로 정하는 기준이다.
예를 들어, 마트에 갔을 때 한 상자에 3,000원 하는 귤을 본다면, 귤을 사기 위해 3,000원을 기꺼이 지불할 마음이 생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귤을 좋아하거나 필요하다면, 3,000원이 합리적인 가격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귤이 집에 많거나, 다른 과일이 더 좋아 보인다면, 그 금액이 비싸게 느껴질 수 있다. 이처럼 지불용의는 단순히 물건의 가격 자체보다, 그 물건이 내게 얼마나 가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지불용의를 잘 보여주는 상황 중 하나는 외식을 할 때다. 예를 들어,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하러 나갔다고 해 보자. 한 레스토랑의 메뉴 가격이 1인당 5만 원이라면, 이 금액이 아깝지 않을지 먼저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음식 맛이 정말 좋고 특별한 날이라면 5만 원을 내는 데 동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음식이 평범하거나 더 저렴한 대안이 있다면, 그 가격에 만족하지 못할 수 있다.
결국, 지불용의는 그 가격을 낼 때 내가 얼마나 만족할지를 예측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우리가 매일같이 하는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지불용의를 설명하기에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하기 좋은 사례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의 상황이다. 한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가 보니, 기본 아이스크림 한 스쿱이 3,000원이었다. 아들은 바닐라 맛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지만, 메뉴를 보다가 특별한 트리플 초코 아이스크림은 5,000원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때 아이들은 고민한다.
“바닐라를 먹으면 3,000원이지만, 특별한 초코를 먹으려면 5,000원을 써야 해. 이 초코 아이스크림이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이 상황에서 아이들의 지불용의는 단순히 가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특별한 초코 아이스크림이 주는 만족감, 혹은 다른 곳에서 쓸 돈까지 고려해야 한다.
“만약 내가 5,000원을 아끼고 바닐라를 먹는다면, 나중에 다른 간식을 살 수도 있어. 그런데 초코 아이스크림은 정말 먹고 싶으니 그 값어치가 있을지도 몰라.”
결국, 아이들은 자신의 지불용의를 바탕으로 선택을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돈이 단순히 가격에 따라 쓰이는 게 아니라, 그 돈이 가져다줄 만족감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물론 게임상에서의 결제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남들이 가지고 있는 스킨을 본인도 가졌을 때의 만족감으로 치환해 지불용의가 생기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얘기하는 만족감이 바로 앞에서 얘기한 ‘효용’이다.
용돈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가격과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주고 싶었다.
“아들아, 그런데 이 로벅스가 얼마로 정해지는지 궁금하지 않아?”
“로블록스 회사에서 정한 거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는데, 사실 이런 가격은 회사가 마음대로 정하는 게 아니야. 사람들마다 로벅스에 대해 생각하는 가치, 그러니까 ‘얼마를 내면 살까?’를 고민해서 정하는 거야.”
아들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러면 내가 15,000원 낼 생각이니까, 그게 가격이 되는 거예요?”
“그럴 수도 있어. 그런데 너보다 더 많이 낼 사람도 있겠지? 그런 사람들이 많다면 가격은 더 올라갈 수 있어.”
나는 경매 이야기를 꺼냈다.
“예를 들어, 어떤 물건을 경매로 판다고 해 보자. 사람들은 각자 자기 마음속에서 ‘이건 얼마까지 낼 수 있겠다’ 하고 정해. 그리고 가장 높은 금액을 부른 사람이 그 물건을 사게 되지. 이렇게 하면 시장은 그 물건의 ‘진짜 가치’를 찾아가는 거야.”
경매는 지불용의를 극대화하는 대표적인 방식이다. 사람들은 각자 마음속에서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 금액, 즉 지불용의를 기준으로 물건에 값을 매긴다. 경매에서는 이 지불용의가 가장 높은 사람이 물건을 얻게 된다. 그 결과, 물건은 가장 가치를 높게 평가한 사람에게 돌아가고, 판매자는 물건에 대해 가장 많은 대가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아이들에게도 경매는 이해하기 쉬운 예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게임 아이템이 한정판으로 나왔다고 생각해 보자. 이 아이템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경매가 활발해진다. 어떤 아이는 5,000원을 낼 준비가 되어 있고, 다른 아이는 8,000원까지 낼 수 있다면, 경매를 통해 아이템은 8,000원을 부른 아이에게 돌아간다. 이 과정을 통해 시장은 아이템의 ‘진짜 가치’를 찾아간다.
경매에서 이긴 사람은 물건을 얻을 수 있지만, 항상 자신이 생각했던 가치만큼의 만족을 얻는 건 아니다. 물건이 8,000원에 낙찰되었다면, 그 사람이 10,000원까지 낼 생각이었다 해도, 실제로는 8,000원만 지불했다. 이렇게 자신의 지불용의(10,000원)와 실제로 지불한 금액(8,000원)의 차이인 2,000원이 바로 ‘소비자 잉여’다.
소비자 잉여는 우리가 좋은 거래를 했을 때 느끼는 만족감과도 같다.
아들이 로벅스를 15,000원에 살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세일로 10,000원에 샀다고 해 보자. 그 차이인 5,000원은 소비자 잉여로 남아, 다른 곳에 쓸 수 있는 여유가 된다.
경매는 소비자 잉여를 확인하기 좋은 사례다. 물건을 가장 가치 있게 여긴 사람이 낙찰받지만, 실제 가격이 자신의 지불용의보다 낮았다면 그 차이만큼 소비자 잉여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불용의는 단순히 ‘돈을 얼마까지 낼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삶에서 선택할 때, 어떤 것이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가를 고민하는 과정이다.
경매에서 누군가가 자신이 정한 최대 금액을 부르며 ‘이 물건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듯, 우리는 매일 선택의 순간마다 자신의 지불용의를 떠올린다. 중요한 것은 돈이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선택은 늘 기회비용을 동반한다.
지불용의를 이해하면, 우리는 단순히 돈을 쓰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내게 더 중요한지를 스스로 판단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아이들도 이 개념을 이해하면, 돈이 단순히 쓰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만족과 행복을 만드는 도구임을 알게 된다.
우리가 경매에서처럼 삶의 선택에서도 스스로의 지불용의를 고민한다면, 돈은 한정적일지라도, 그 안에서 최선의 만족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만족은 더 나은 선택으로 이어지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