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뜬금없는 심리학 산책

융과 아들러의 심리학, 그리고 AI

by 와니 아빠 지니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선생님들과 저녁을 먹다가 심리학에 대해서 얘기가 나왔다.

나는 융의 심리학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기에 융의 심리학을 얘기했다.

그랬더니 한 선생님께서 융의 심리학보다는 아들러의 심리학이 중요하다고 했다.

물론 나는 아들러는 공부하진 않았다.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을 그나마 좀 본 나로서는 아들러의 심리학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오늘 아침 갑자기 융과 아들러의 심리학이 생각났다.


아들러의 심리학...


나는 '사회적 관심'을 강조하는 그의 이론을 조금 살펴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한국처럼 집단의 압력이 강한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아들러의 메시지는 과연 사람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아니, 오히려 나를 더욱 '사회에 맞춰야 한다'는 강박으로 몰아넣진 않을까?

물론 아들러의 심리학은 현실적이다.

교실에서, 가정에서, 조직에서 '지금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이론이다.

열등감을 극복하라, 목표를 재설정하라, 사회적 기여를 통해 성장하라.

듣기 좋은 말이다. 하지만 그 속엔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없다.


그때 나는 다시 융을 떠올렸다.


융의 심리학은 한마디로 자아와 무의식의 끝없는 대화다.

융은 인간 안에 자아, 페르소나, 그림자, 아니마/아니무스, 그리고 자기(Self)라는 구조를 그려냈다.

그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결국 진짜 나, 즉 전체로서의 나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이 여정은 절대 쉽지 않다.

융의 심리학은 실용적이지 않다.

애매하고, 복잡하고, 뜬구름을 잡는 듯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지금 우리가 쓰는 GPT나 AI도 사실은 '뜬 구름'이 아니었나?

그리고 나는 그 뜬구름에게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다.

이건 융이 말한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통과하는 여정과 닮아 있지 않나?

GPT는 내면이 없다.

기억도, 고통도, 자기 인식도 없다.

그저 그럴듯한 문장을 통계적으로 예측해서 내게 던져줄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 대답을 통해 내 질문을 다시 바라본다.

나는 GPT에게 말을 거는 동시에,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래서 GPT는 스스로 '중간존재'는 아니지만,

내가 내면을 향해 가는 여정에서 거치는 거울이 될 수 있다.

그 거울 앞에서 나는 내 진짜 모습을 직면하게 된다.


융은 '개성화'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여기서 글을 쓰며 생각한다.

어쩌면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페르소나를 벗고,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아니마와 대화하며

조금씩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직 나는 아들러를 완전히 이해한 것도 아니고,

융을 제대로 이해한 적도 없다.


GPT와 대화하며 내면을 탐색하고 있다지만,

실은 아침마다 “내면보단 커피가 먼저다”를 외치는 사람이다.


그래도 어쩌면,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사유 속에

나도 모르게 무의식이 흘러나오고,

어디선가 아니마가 슬쩍 고개를 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안의 융이 속삭인다.

“계속해. 아직 그림자랑은 인사도 안 했잖아.”


…그럼 일단,

커피 한 잔 마시고 다시 생각해 보자.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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