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그리고 불확실성, 민스키 모멘트�
오늘 아침, 아들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로케트~ 로케트~!"
어디서 들어본 가사다. 유튜브에서 들었다는 ‘아파트’를 개사한 노래.
사실 이 노래는 나도 아는 노래다.
아들은 그냥 신나게 부르고 있을 뿐인데, 가사에 슬며시 웃음이 난다.
그런데 갑자기 질문이 날아든다.
"아빠, 북한이 로켓을 쏘면... 파주가 먼저야, 서울이 먼저야?"
"음... 서울이 먼저겠지. 서울이 더 중요하니까."
아이의 천진난만한 질문이지만, 대답하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진다. 전쟁이라는 단어, 로켓이라는 단어가 불러오는 묘한 불안감. 불안이라는 감정은 이렇게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우리의 일상을 흔들어 놓는다.
생각해보면 불안정함은 개인뿐 아니라 경제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늘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고, 불안은 금융시장에서도 반복된다. 금융위기의 한복판에서 떠오르는 단어, ‘민스키 모멘트’처럼 말이다.
우리는 과연 합리적인 존재일까?
한때 경제학의 핵심은 ‘효율적 시장 가설’이었다.(지난 글에서 얘기했으니 참고. 지난 글) 그 이론 속 인간은 언제나 합리적 선택을 내리는 존재, ‘호모 이코노미쿠스’였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인간은 비합리적이며 때론 감정에 휘둘린다. 행동 경제학은 인간이 ‘충동적’이고 ‘감정적’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더 현실적인 인간상, ‘호모 사피엔스’를 이야기한다.
금융시장에서 이런 감정적 선택은 불안정성을 키운다. 낙관은 거품을 만들고, 불안은 그것을 붕괴시킨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를 두고 ‘민스키 모멘트'라 불렀다.
경제의 시작은 생산과 소비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현금 흐름’ 즉 투자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투자를 위해 우리는 자본을 조달한다. 때로는 여유 자금으로, 때로는 빚을 내어 투자 자금을 마련한다. 문제는 이 투자의 기반이 확실성이 아니라 불확실성에 있다는 점이다.
하이하이먼 민스키 교수(1919~1996)는 이런 '투자'와 '불확실성'에 관심을 두었다. 민스키 교수는 주류 경제학이 효율적 시장과 합리적 인간을 강조할 때, 그는 경제 시스템이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고 주장했다. 시카고 대학과 하버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민스키는 생애 동안 금융 불안정성에 주목하며 시장의 낙관과 비관이 가져오는 위기의 메커니즘을 설명했다. 그의 연구는 당시 크게 주목받지 않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조명되며 ‘민스키 모멘트’라는 단어가 세계적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하이먼 민스키 교수는 금융시장의 이런 불확실성과 그로 인한 불안을 연구했다. 이를 통해 ‘금융불안정성 가설(financial instability hypothesis)’을 제시했다. 그는 금융구조를 세 가지로 나누었다.
헤지 단위는 가장 안전한 상태다.
경제 주체가 현재의 소득으로 부채의 이자와 원금을 모두 갚을 수 있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월급을 받아 대출의 이자뿐만 아니라 원금까지 무리 없이 갚아 나가는 상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이며 큰 위험이 없는 단계다. 이 시기는 대개 경제가 호황으로 가기 직전 단계로 볼 수 있다.
투기적 단위는 한 단계 더 위험해진 상태다.
현재 소득으로 부채의 이자만 갚을 수 있고, 원금은 갚지 못하는 상황이다. 원금을 갚기 위해서는 새로운 빚을 내거나 자산을 팔아야 한다. 예를 들어, 대출 이자는 꾸준히 갚고 있지만 원금을 갚을 여유는 없어서 다른 대출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 단계에서는 경제 주체들이 경제가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무리하게 빚을 내는 경우가 많다. 경제가 호황일 때 나타나는 특징이다. 그러나 이 상태는 외부 충격이 생기거나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큰 위기로 번질 수 있다.
폰지 단위는 가장 위험한 상태다.
현재 소득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때 경제 주체는 이자를 갚기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빚을 내야 한다. 말 그대로 빚을 빚으로 돌려막는 상태다.
이 단계에 이르면 경제는 매우 불안정해진다. 외부 충격이 조금만 와도 부채를 갚지 못해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폰지 단위’라는 이름은 1920년대 유명한 금융사기 사건에서 유래되었다. 당시 찰스 폰지는 나중에 투자한 사람들의 돈으로 먼저 투자한 사람에게 수익을 지급했는데,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 사건이었다. 폰지 단위의 경제 구조도 이와 비슷하다.
민스키 교수는 경제가 시간이 지나면서 헤지 단위 → 투기적 단위 → 폰지 단위로 점차 위험한 상태로 변해간다고 설명했다. 경제가 호황일 때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낙관적 기대를 품고 더 큰 빚을 내게 된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한계에 도달하면 결국 무너진다. 이것이 바로 ‘민스키 모멘트’다.
민스키 모멘트가 발생하면 금융시장은 큰 충격을 받고, 경제 주체들은 다시 신중한 태도를 가지게 되어 헤지 단위로 돌아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같은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경제의 호황과 불황이 마치 파도처럼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들의 노랫소리와 엉뚱한 질문으로 시작된 아침은 묘하게 불안을 떠올리게 했다. 전쟁이나 정치적 불안정 같은 외부 요인들은 마치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처럼, 언제 터질지 모를 위험을 키우고 있다. 요즘의 전쟁 소식이나 흔들리는 정치는 그 불안을 더욱 부추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민스키 모멘트’가 지금 올 수도 있고, 앞으로 반복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하이먼 민스키 교수의 이론처럼, 경제는 결국 헤지 단위에서 시작해 투기적 단위를 거쳐 폰지 단위로 빠져들고, 위기가 터지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는 단순히 금융시장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세상은 불확실성과 불안정함으로 가득 차 있고, 그것은 정치, 경제, 심지어 우리의 일상에까지 스며든다.
하지만 불안정함은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불확실성을 이해하는 것만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경제든 삶이든 완벽한 확실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위기의 순간에도 균형을 잃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음가짐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불안은 어쩌면 우리가 다시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기 위한 과정일 것이다. 민스키가 말한 금융의 순환처럼, 불안과 회복은 반복되지만, 그 반복 속에서도 우리는 조금씩 더 단단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