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시 셰프가 되다. 4편

마지막 이야기

by 아이리스 J

샐리가 떠나고 난 뒤,

노동청으로부터 날아온 리포트를 보며

한동안 멍한 기분이 들었다.

나를 모함해서라도 실업급여를 챙기려 했던

그녀의 생존 방식은 분명 씁쓸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무리한 노동으로 망가진

나의 어깨를 마주하며 깨달았다.

샐리가 내뱉었던

"너 그러다 일찍 죽는다"라는 말은,

어쩌면

삶이 나에게 보내는 경고장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우리는 흔히 직장에 목숨을 바친다.

책임감이라는 이름 아래

내 몸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외면한다.

샐리는 비록 방식은 틀렸을지언정,

나에게 '나 자신을 1순위에 두는 법'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보여준 스승이기도 했다.

그녀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삶이라는 거친 바다를 헤엄친다.

누군가는 정직하게 팔을 젓고,

누군가는 조금 비겁하게 구명조끼를 입기도 하지만,

결국 그 끝엔

'살아남고 싶다'는 절박함이 있을 뿐이다.


어깨 통증으로 결국

셰프 가운을 벗었을 때,

회사에서는 3개월의 유급 휴가를 제안하며

나를 붙잡았다.

하지만 나는 돌아가지 않았다.

샐리가 준 교훈과 내 몸이 보낸 신호가

일치하는 지점에서,

나는 '멈춤'이라는 용기를 냈다.


그렇게 몸을 회복해 가던 어느 날,

다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셰프 경험이 생긴 나에게

눈에 띄는 구인 광고는 역시

'셰프 구함' 광고였다.

사람은 익숙한 것에 눈이 가기 마련이다.

집 근처 새로운 곳에서

헤드 셰프로 다시 일을 시작했을 때

그곳에서 믿지 못할 인연을

또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거기에서 샐리를 만난 것이다.

나를 마주하고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지며 당황하던 그녀.

세상은 참 좁고,

우리가 지은 업(Karma)은 돌고 돌아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반드시 다시 마주하게 된다는 것을 실감했다.


"샐리, 그때 왜 그랬어?"

나는 그저 웃으며 가볍게 물었다.

그 한마디에는 원망도, 복수심도 없었다.

그저 지나간 시간에 대한 매듭이었을 뿐이다.

그녀는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의 카르마를 마주했을 것이라 믿는다.

(사담이지만 샐리는 그 회사에서도

성실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해고되었다.)


이후 코비드 팬데믹이 찾아왔고,

직원들이 잘려나가고 혼자 일을 해내면서

다시 어깨에 무리가 오는 바람에

나는 완전히 셰프의 길을 내려놓았다.

치열했던 주방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맛'보다 더 깊은 '삶의 결'을 가르쳐주었다.


셰프의 가운을 벗으며 깨달은 것들이 있다.


첫째,

열정에도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

나를 소진하며 하는 일은

결국 나를 병들게 한다.

지속 가능한 열정만이 진정한 프로의 조건이다.


둘째,

사람은 누군가의 거울이다.

샐리의 나태함이 미웠던 건,

어쩌면 쉬지 못하는

내 모습에 대한 반작용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를 이해함으로써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었다.


셋째,

카르마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

내가 뿌린 친절도,

누군가에게 준 상처도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언제나,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났을 때도

웃으며 인사할 수 있는

여유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다.


이렇게 나는 셰프로서의 경험을 마감했다.

하지만

주방에서 배운 이 단단한 마음 근육은

어떤 일을 하든 나를 지켜주는 가장 큰 레시피가 되었다.


P.S. 그동안

저의 셰프 경험기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떤 바쁜 일터에서도,

세상이 요구하는 레시피에 길들여지기보다

당신만의 고유한 향을 잃지 않는 매일이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다음 주 금요일엔

'마리화나 직장 경험기'

그 첫 번째 이야기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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