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과 불법 사이
2018년 캐나다에서 마리화나가 합법화되었다.
어느 나라에서는 여전히 금기시되는 대상이
어느 나라에선 새로운 산업의 기회가 되는 세상.
식물은 그저 그 자체로 존재할 뿐인데,
인간의 판단이 그 존재의 가치를 극과 극으로 갈라놓는 아이러니.
동네 아는 동생에게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어린아이가 셋이 있어서
육아에 지쳐있던 동생이었는데
최근에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캐나다는 대부분 맞벌이를 한다.
요즘은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캐나다는 아이들이 하나건 셋이건
부부가 서로 공동 육아를 하면서
맞벌이를 한다.
고만 고만한 아이들 셋을 키우는 동생은
육아도 지쳐있었는데
캐네디언 시부모님이 틈만 나면 hiring 하는
전단지를 가지고 와서 스트레스를 받던 차에
우연히 이 회사를 알게 되어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어딘데?’ 물으니
‘마리화나 공장’이라고 한다.
‘마리화나 공장? 어떤 일 하는데?’
무척 궁금하다.
한국인에겐 마약이라 생각되는
마리화나가 합법화되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걸 만드는 회사에서 일한다니
또 신기하다.
그 회사는 우리 집에서도 멀지 않다.
그때 나는 셰프 일을 그만두고 한참 쉬고 있었고
‘이제 나도 일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그 동생이 컨택했던 에이전시를 찾아서
나도 그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그 동생이 있어 같이 일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에 들어간 건데
그 동생은 내가 들어가려고 processing 하는 중에
개인적인 일이 생겨 그만두었다.
회사에 가보니 한국인은 나 혼자였다.
동생의 말에 의하면
일도 쉽고 그냥 내 일만 하루 종일
열심히 하고 가면 된다고 했다.
내 일만 열심히 하는 것.
난 그건 자신 있다.
공장이란 곳.
거기다가
‘마리화나’ 공장이란 곳이 궁금해서
한편으론 ‘구경 삼아’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 집 근처니까 가까워서 좋았다.
예전에 이민 오기 전 나는 대기업을 다녔었다.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는 대기업.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곳이었고
자부심도 있었지만
그만큼 경쟁과 스트레스도 심했다.
상사에게 인정을 받아도 힘들었다.
상사의 인정을 받는다는 건
더 많은 일이 주어진다는 것이고
거기에 부합하기 위해
영혼을 끌어모아야 했으니까.
극 'I' 성향인 나는 이곳에서
그저 조용히 내 일만 하면 되는 위치가 마음에 들었다.
캐나다 와서 전업으로 있다가
시작한 이전 직장에서 생각지 못하게
'슈퍼바이저'라는 감투를 쓰고 일하면서
책임과 스트레스에 많이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왕관을 쓴 자여. 그 무게를 견뎌라' 하는데
난 그 무게에 짓눌려버렸다.
각자 자기의 '그릇'이 있는 거다.
내 '그릇'은 '종지'인데
나는 내 '그릇'이 '대접'인 줄 착각하다가
큰 코를 다쳤었다. ㅠ.ㅠ
그러다 공장 일을 시작하니
공장 일이 너무 재밌었다.
엄청난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약간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들어가는 문도 쉬웠다.
영어 소통만 필요하고
그마저도 처음 들어올 때 인터뷰만 통과되면
끝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백그라운드 체크만 끝내면 된다.
시간도 8시 출근해서 4시 퇴근이고 베니핏도 좋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근무하면 된다.
가끔은 오버 타임이 있어 주말에도 일을 할 때가 있긴 하지만
예전에 셰프로 일할 때 주중이고 주말이고 상관없이
시간에 관계없이 출퇴근을 하는 것과 비교하면
이곳은 지상낙원이었다. (나는 소박한 사람이다.)
들어와 보니 대부분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필리피노,
흑인들뿐이었다.
(한국에 있는 생산직 공장도 그러하리라.
나도 여기서 그들 틈에 끼어 'One of them'이 된 거다.)
잠깐의 트레이닝을 받고 일을 하는데
'이런 쉬운 일을 하는데도 돈을 많이 주는구나.'
놀랍다.
(그렇다고 고임금은 아니다.
미니멈보다 많다는 거다. )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직업들이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마치
캐나다에 오직 이 회사밖에 없는 듯이
일을 열심히 했다.
다들
여기저기 공장에서 20년 정도
일을 해왔다고 했다.
알고 보니 울 집 근처 위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공장 지대였는데
나는 이 동네 10년 이상을
살면서도 그걸 몰랐다.
직원들은 한 공장에서 일하다
그 공장이 문을 닫으면
또 인맥을 통해 다른 공장을 찾았고
그렇게 이 공장, 저 공장들을 다니며
20년 동안 일을 해왔다고 했다.
이 사람들은 공장 아닌 다른 곳에서
일할 생각을 안 한다.
아니 못하는 거 같다.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속이
세상 전부인 줄 알고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이들도 벗어날 생각이 없는듯하다.
이렇듯 사람들은 해왔던 일에
안주하려 한다.
그 길이 편하니까.
공장인만큼 이곳은 하루에 목표량이 있다.
한 시간에 4박스의 마리화나를 완성하는 것이 인당 목표량이다.
마리화나가 담배보다 작은 사이즈인데
한 박스에 100개비가 들어있다.
그걸 한 시간에 4박스를 만들어야 한다.
나에게 그건 식은 죽 먹기였다.
다른 직원들은 자기 나라 사람들과 옆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며
재미 반, 돈 벌 생각 반으로 출근을 했지만
나는 그냥 일에 열중했다.
(나만 한국인이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이곳 일은 나에겐 일종의 명상이고 몰입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몰입하는 일에 뭔가 쾌감이 있었다.
하루에 8시간. 중간에 30분 점심시간과 15분 휴식 시간.
그렇게 반복적인 일을 매일매일 했다.
매일 반복적인 일에 누군가는 신물이 날 수도 있겠지만
당시 나는 그 일이 너무 재미있었다.
아침이 되면 기분 좋게 눈이 떠졌다.
오늘은 또 얼마나 내가 목표량을 해낼까.
하는 기대감에 즐겁게 출근을 했다.
아무런 욕심도 없었고
그냥 나 자신이 얼마나 해낼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이런 나를 주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