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평화주의자다.
누군가와 언쟁하는 게 싫고
싸우고 나서의 그 불편한 공기가 너무 싫다.
그래서 싸움을 싫어한다.
무언가 선택해야 할 경우
상대방에게 선택권을 주고
나는 주로 그들의 의견에 따랐다.
누구 의견대로 할까 서로 눈치게임 하기보단
그냥 내가 따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이런 나를 사람들은 좋아했다.
내가 착하단다.
그 말은 사실 내가
‘자기가 잘 휘두를 수 있는 만만한 사람’
이라는 거다.
나는 공감은 잘하고 거절은 못하는 사람이었다.
누가 힘들어하면 같이 울어주고
누가 부탁하면 no를 못했다.
내 사전에 no 란 말은 없었다.
이런 성격은 천성인 거 같다.
이런 나에게 더욱 이렇게 사는 게 옳다고
가르친 건 나의 종교인 천주교였다.
난 어릴 적부터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미사 시간 중에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면서
가슴을 치는 예식이 있다.
모든 게 내 탓이란다.
성당의 교리에선 천주교 신자라면
모든 걸 참아야 한단다.
다 내 탓이니까.
신자로 하느님을 따르고 살다 보니
그 말이 맞는 거 같았다.
정말 모든 잘못된 건 내 탓 같았다.
우리 애들이 아프면 내 탓 같았다.
내가 애들을 잘 케어 못해서
또는 영양가 있게
먹이지 못해서 아픈 거 같고
남편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그 또한
내 탓 같았다. 괜히 미안했다.
내가 이런 성격인 걸 알아챈 남편도
거기에 가세했다.
집안에 가전이 작동 안 하면 내 탓이란다.
내가 사용을 잘못해서 그런 거란다.
첨엔 ‘그런가? 그럴지도..’
이런 맘에 수긍을 했다.
그러다 보니
조금만 뭔가 잘못되면
‘자기가 또 뭘 잘못 만졌구나.
또 뭐 한 거야?’ 이렇게 말을 한다?.
‘응? @@ 나 아닌데..’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고
나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정말 착한 게 아니다.
나도 화낼 줄 알고 기분 나쁜 거 안다.
그런데 참은 거다
화내면 나쁜 사람이고
내가 화내면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서로 어색해지고 화내는 건/남을 미워하는 건
도덕상 나쁘기 때문에 참은 거다.
그렇게 배워왔기에 참은 거다.
화내면 나쁜 거라고 배웠고
어른들 말엔 무조건 복종하는 거라고 배웠고
결혼해서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면
집안일이며 육아는 여자의 몫이라고 배웠다.
우리 세대는 그랬다. 난 배운 대로 한 거다.
(요즘 MZ 세대는 할 말은 다 하는 거 같다.
참 부럽다.
조금 늦게 태어날걸…)
그렇게 참고만 살다 보니 화가 내 안에 눌려있었다.
화는 참으면 억눌려서 쌓인다.
세월이 지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옅어지는 게 아니었다.
쌓이고 쌓이다가
어느 순간 폭발해 버렸다.
착하다는 거는 많이 참는다는 거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다.
좋은 일 있으면 기분 좋고
나쁜 일 있으면 화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화나면 화난다는 걸 표현하는 사람과
표현하지 않고
꾹 눌러 참는 사람 두부류가 있다.
(아주 드물게 정말 성인군자 같아서
화가 없는 사람도 있긴 하겠다만.)
솔직히 말해서
착한 사람이 더 무서운 사람이다.
평상시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시시때때로 화를 내서 자기감정을
풀어버리지만
착한 사람들은 계속 누르다가
갑자기 언젠가 폭탄처럼 터뜨릴 날이 온다.
그나마 폭탄처럼 터뜨리면 괜찮은데
그걸 또 꾹꾹 누르다 병이 생기고 만다.
그런데 이걸 알려줘도
끝까지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 화를 꺼내서 풀어줘야 하는데
화가 올라오려고 하면
그러는 거 아니라고 화를 다시 눌러버린다.
그들은 화를 꺼내는 게 수치스럽다.
타인에게 '착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을
생의 가장 큰 칭찬으로 여기며 살아온 사람들은
화를 내는 것이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라 믿기에
끓어오르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기만 한다.
하지만 그렇게 쌓인 침묵은 결국
화병이 되어 나를 해칠 뿐이다.
내가 잘못한 일엔 진심으로 사과하되,
모든 상황을 내 탓으로 돌리는 죄책감의 굴레에선
이제 벗어나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것은 무례함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최소한의 예의다.
모든 책임을 혼자 짊어지기보다
때로는 적절하게 마음을 표현하고 사는 것이
나를 건강하게 지키는 방법이다.
내 안의 화가 나를 잡아먹는 독이 되지 않도록,
이제는 조금 더 솔직해져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