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했는데도 성적이 나쁜 건 어쩔 수 없지. 엄마 아빠가 너한테 공부 잘하라고, 1등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잖아. 현재 네가 소속된 곳에서의 너의 역할, 학교에서 학생으로서 요구되는 공부를 하라는 거지."
"그래도, 공부를 했는데 성적이 잘 안 나오면 좀 창피할 거 같아."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지. 그런데 그건 창피할 필요가 없어.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성적이 잘 안 나왔다면 그건 공부 방법이 잘못되었을 거야. 오히려 자기한테 맞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건데, 창피해질게 두려워서 지레 겁먹고 공부를 해보지도 않는다면 나한테 맞는 방법을 찾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잖아. 내가 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는 거야."
예전엔 학창 시절에 놀 거리가 풍부하지 않아서 그랬을까. 나와 남편의 기억으로는 청소년기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에 앉아서 보낸 것만 같은데, 딸아이는 참 관심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으니 공부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본인 말로는 시험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데, 그 '열심히'의 정도가 남편과 나의 기준과는 차이가 좀 크다. 내가 보기에 딸아이는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남는 시간에 공부를 하는데,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를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아이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아끼는 것은, 아이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는 데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서 섣불리 잔소리를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잔소리를 하지 않으니 이런 고민을 부모와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공부에 대한 고민을 하고, 그 고민을 부모와 나누는 아이가 기특하고 예뻤다.
"공부뿐이 아니라, 다른 어떤 일을 할 때도 내가 잘 못할까 봐 시도하지도 않는 건 내가 잘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빼앗는 행동이야. 실패하면 다시 나한테 맞는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되는 거야. 기죽을 필요도 없고, 포기할 필요도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