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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노 Jul 21. 2022

가족이라서 거리두기가 필요한걸요

나는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다. 남들 눈치 보느라 내 아이와 남편을 들들 볶기도 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전원생활을 하면서 남이 아닌 나를 위해 살려고 노력하면서 많이 좋아졌지만, 나의 기질 자체를 바꾸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아파트에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코끼리 걸음으로 쿵쾅거리고, 시도 때도 없이 노래하고 춤추는 딸아이를 말리려다가 말라죽지 않았을까 싶다. 딸아이도 단독주택에 살기에 자유로울테지만, 어쨌든 자유로운 영혼의 딸아이와 남 눈치 많이 보는 예민 보스 기질의 나는 다닥다닥 붙어있지도 않고, 방음도 잘된 집에 사는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에 틀림없다.


이층 집에 살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귀가 예민하여 소리가 울리는 식당에서는 귀마개를 껴야 할 정도인 내가 몇 시간씩 목청껏 부르는 아이의 노랫소리를 견딜 수 있었을까? 같은 층에서라면, 내가 괴롭든 말든 아랑곳도 안 하는 아이를 보며 견디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2층 올라가는 계단 문만 닫으면 1층의 내 영역과 2층의 딸 영역이 서로 침범받지 않으니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일이다.


난장판인 아이방은 또 어떠한가.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를 언제까지 품 안에 끼고 살 수도 없는 일인데, 매일 치워주면서 받을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있을까. 2층을 같이 쓰다가 남편과 내가 1층으로 내려와서 사니 2층 전체가 딸아이 공간이 되어버렸다. 덕분에 이층에 있는 운동실도 내가 좋아하는 라탄 소파가 있는 테라스에도, 이층을 거쳐 가야 하는 옥탑의 내 공간에도 갈 수 없어졌지만, 안 보기로 작정하니 살만하다. 아니 견딜만하다. 보지 않기로 마음먹었으니 생각도 말지어다. 문득문득 아이 방을 치워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이방을 치우면서 화가 날 게 분명하니 그런 생각은 빨리 치워버리라고 나를 다독인다.



아이와의 거리두기를 하면서 포기한, 내가 애정하는 공간. 아이방을 거쳐 지나가야하는 이층의 발리발리 테라스와 옥탑 내 자리



아이는 어른이 되어가는데 내 마음은 그런 아이를 보는 게 편치 않은가 보다. 사춘기 아이와 부딪치는 일이 잦아진 건 나의 잔소리 때문일 텐데, 잔소리의 대부분이 아이 때문이라기보다는 내가 불편하기 때문인 것 같다. 딸아이도 별일 아닌 것에 잔소리 듣는 일이 싫을 테니 내 잔소리로 시작된 일이  딸과의 감정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거의 모든 일에 내 편인 남편까지 합세하게 되면, 2대 1의 싸움이 되니 딸아이가 불리하다. 때로는 잔소리로 시작하여 참았던 것까지 다 꺼내어 토해낼 때도 있으니 우리 딸,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는 안될 일이지만 어쩌면 가족 중 최약체인 아이가  나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일도 있었겠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거리두기는 성공적인 것처럼 보인다. 내가 아이에 대해 많은 부분을 내려놓을 수 있는 이유 중 제일 큰 요인은 아무래도 시각적 차단 효과일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잔소리도 줄어들고, 줄어든 잔소리만큼 딸과의 사이가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관계가 좋아진 만큼 내 허용범위도 넓어지니 어찌 좋지 아니한가.


아이 물건을 가져다 둘 때, 문 앞에 두거나 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살짝 방문만 열어 들여놓는다.

"딸! 내가 귀신 나올까 봐 무서워서 네 방 보지도 않고 물건만 가져다 놨으니까 확인해봐~"

딸아이가 웃는다. 내가 자기 욕한 건지도 모르고.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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