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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노 Aug 18. 2022

야호! 개학이다!

중학생인 아이가 개학을 했다. 


'여느 사춘기 아이들답게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는 2층으로 나뉜 우리 집의 구조적 특성을 최대한 잘 활용하여 엄마의 간섭을 최소화하며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방학을 최대한으로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층분리로 인한 평화와 안정은 내가 더 많이 누리는 혜택이었다. 

아이가 어릴 때와는 달리, 하나하나 챙겨줄 필요도 없고 챙김을 원하지도 않는 상황이 좋았고, 층분리를 이유로 스트레스가 될 만한 상황은 눈 감고 귀 닫으면 되니 잔소리하기 위해 입을 벌릴 일이 거의 없었다. 자유에 따른 책임을 운운하며 아이의 방이 난장판이 되는 것을 방치할 명분이 있었고, 운이 좋으면 (아이가 용돈이 떨어지면) 용돈을 빌미로 하기 싫은 집안일을 떠맡길 수 있었다.

오롯이 나 혼자 즐길 수 있는 시간은 방학이나 개학이나 큰 차이가 없었고, 아이가 제주로 일주일간 여행을 다녀오면서 어쩌면 나는 아이가 학교 다닐 때보다도 더 나 혼자 살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나는 무기력에 빠져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사람처럼 글 쓰기도, 악기 연주도, 책 읽기도, 운동도, 마당일도, 내가 좋아하는 그 모든 행위들을 할 수 없었을까. 어제보다 나은 나로 살아가야만 하루가 만족스러운 내가 루틴이 무너졌다는 이유를 들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날들이 아이의 방학 내내 지속되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놀랍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아이가 학교 다녀오겠다는 인사와 함께 집을 나서자마자 내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났다는 사실!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로봇청소기를 작동시키고, 오랜만에 커피머신 전원을 켠다. 커피머신 버튼 하나 누르는 것조차 귀찮아 스틱커피로 카페인을 공급하던 날들은 이제 안녕. '커피에 넣었을 때 더 놀라운 맛'이라고 당당하게 쓰여있는 바리스타용 비건 밀크로 좋아하지도 않는 라테를 만들어 내가 좋아하는 머그컵에 담고, 기꺼운 마음으로 책상에 앉아본다. 


공기마저도 완벽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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