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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노 Jun 23. 2022

마당이 있는 삶, 홍접초

'홍접초', '(나비) 바늘꽃', '가우라'라 불리는 이 아이를 만난 건 우연이었다. 온라인으로 초화류 이것저것을 (많이) 샀더니, 이름도 적히지 않은 모종 하나가 같이 온 것이었다. 이름을 모르니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몰라 마당 한 구석에 심어놨는데 이 아이가 길게 1미터 이상 키를 키우더니 길어진 줄기 가득 나비 날개 같은 꽃을 피웠다.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줄기마다 가득 찬 꽃으로 마당에 나비가 가득한 것만 같았다.

정체를 모르니  영하 7도 이상에서 월동이 된다는 걸 알 수가 없어 마당에 그냥 두었는데, 그 해 겨울은 유독 눈도 많이 오고 영하 20도를 내려가는 날이 수차례였던 탓에 겨울을 나지 못한 아이는 이듬해에 볼 수 없게 되었다.


다음 해에 봄이 찾아오자마자 또 각종 모종과 묘목 구매에 들어갔고, 인터넷 쇼핑몰에 있는 꽃들을 차례대로 훑어보던 차에 이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얼마나 오래도록 예쁜 꽃으로 나를 기쁘게 하는지 알아버렸는데 당연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아이가 '홍접초', '바늘꽃', '가우라'라는 것을, 분홍색뿐 아니라 흰색 꽃도 있다는 것을, 중부 이북에서는 노지 월동은 어렵지만 베란다 또는 데크에서는 겨울을 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늦은 가을 줄기를 바짝 자른 상태로 화분 채 데크에 보관하면 되었는데, 가끔 운이 좋게 자연 발아하는 아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우리 집의 하얀 바늘꽃은 어디선가 날아온 아이가 자연 발아한 것이다.)


늦은 봄부터 이 아이 키가 커지는데, 줄기가 쓰러질까 봐 길어진 줄기를 잘라내준다. 보통 잘라내고 나면 곁가지가 자라 더 풍성하게 자라니 이 아이도 그럴 것이라 믿고. 그리고 잘라낸 줄기가 아까워 삽목을 해보니 일주일도 되지 않아 뿌리를 내리는 것이었다. 키 큰 줄기를 잘라낼 때마다 삽목을 했고, 늘어난 아이들은 이웃마다 나눠주었다. 우리 집 나비바늘꽃이 얼마나 풍성하게 예쁘게 자라는지 지켜본 이웃들은 기꺼이 분양받았고, 삽목의 신이라 불리는 나를 믿고 화분이 아닌 마당에 심으며 다음 해에도 또 분양해주기를 요청했다.

3500원 주고 산 나비꽃 화분 하나가 이 동네 집집마다 분양되고 있어 화원에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삽목 하는 재미를 포기할 수도 없으니 어쩔 수가 없다.


예쁜 꽃을 보며 시 한 편 써 보았다.


나비 바늘꽃     


꽃이 아닌 척  
닮고 싶은 당신을 향한   
기다림의 날갯짓을
모른 척하지 말아 주세요.
 
그리움의 창백한 날갯짓은   
당신이 돌아오는 그날,
붉은 꽃을 피우겠지요.       



*바늘꽃 꽃말
하얀색 : 떠나간 이를 그리워해요.
분홍색 : 환영 , 청초


꽃마다 돌아다니며 살뜰히 꿀을 챙기느라 바쁜 벌이 앉은 찰나를 운 좋게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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