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대노 Jul 22. 2022

지구에 덜 해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서.

지구에 해를 덜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3인 가구로 한 달 전기세가 5만 원 남짓인 우리 집은 설치 비용과 전기 사용량을 비교했을 때 사실 태양광 설치가 그렇게 이득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구에 덜 해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는 이 문제를 비용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고, '북극곰이 너 때문에 죽어간다'는 원망을 듣고 싶지 않았던 남편 역시 적극 동의하면서 태양광을 설치하였다. 

태양광 설치 시에 지원금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지원금을 받을 경우에는 딱 정해진 규격으로만 설치할 수 있어 공간적 제약을 많이 받는다. 적지 않은 비용을 절약할 수 있겠지만, 공간 활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지원금을 포기하고 100% 자비를 들여 3KW는 데크 지붕 위에 깔고, 3KW는 원두막(?) 지붕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총 6KW를 설치한 덕에 매달 우리의 전기는 차곡차곡 쌓이는 중이고, 여름 한낮에도 거실의 대리석 바닥은 냉한 집이라 에어컨을 자주 틀지는 않지만 그래도 북극곰에게 조금은 덜 미안한 마음으로 에어컨을 켤 수 있게 되었다. 



지원금을 포기하는 대신 우리 입맛대로 설치한 태양광. 원래 있던 원두막을 철거한 자리에 철근 구조물 제작을 요청하여  원두막 지붕처럼 설치하였다.




야채와 과일을 많이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아 두지만, 항상 남게되는 음식물이 신경 쓰였다. 마당에 있는 나무들에게 영양분을 주겠다고 땅을 파서 묻어두어도 되겠지만, 개를 키우는 우리 집은 개들이 냄새를 맡고 땅을 파헤치고 혹여라도 그걸 먹기라도 할까 봐, 아무리 좋은 재료여도 땅에 그냥 묻을 수는 없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통로로 사용하지 않는 마당 한쪽에 퇴비 통을 설치하고 효소를 이용하면 텃밭에 쓸 수 있는 유기질 퇴비를 만들어 사용하기로 했다. 커다란 플라스틱 통을 사다가 땅에 심고 간이 되지 않은 양질의 음식물 쓰레기 (보통은 재료 자체)만 모아 퇴비를 만들고 있다.

이렇게 만든 퇴비를 이른 봄 텃밭에 잔뜩 섞어주면 농작물이 얼마나 크고 실하게 잘 크는지 모른다. 개들이 출입할 수 없도록 울타리를 쳐 둔 마당의 나무들에게도 훌륭한 영양제가 되어준다.



그저 씨앗을 뿌려두었을 뿐인 적겨자 이파리 한 장이 5kg 강아지보다 큰 건 유기질 퇴비 덕이겠지?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퇴비에는 커다란 단점이 있다. 보통은 안 먹고 오래 방치된 과일이나 야채를 주로 버리다 보니 이들 중 씨앗이 있는 경우에 이 씨앗들이 마당으로 나와 발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중 최고는 토마토.  개 중 실하게 자란 아이들은 이웃에게 나눠도 주기도 하지만, 퇴비를 만들어 쓰고 난 이후 매년 토마토 지옥에 빠져 백만 개도 넘는 토마토 싹을 뽑는 중이다. 감자와 멜론, 호박도 어디선가 짜잔하고 나타나서는 심지어 일부러 사다 심은 아이들보다도 더 잘 자란다. 

남들은 돈 주고 사서 키우는 애들이, 우리 집에서는 이렇게 잡초 같은 취급을 받으며 뽑아 내쳐지니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다. 그러다가 또 '세상에 이런 불청객이 또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무자비하게 백만 개의 싹을 뽑고 있는 내가 있다.



퇴비통에서 발아된 토마토, 참외, 그리고 어디서 날라와 자라는지 모르는 깻잎.  돈 주고 사다 키우는 애들보다 더 잘 자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당이 있는 삶, 수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