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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노 Aug 24. 2022

마당이 있는 삶, 포도

수돗가의 포도나무는 남편의 오랜 꿈이었다. 자주 가는 칼국수 집의 넓지 않은 마당에 30년이 넘은 포도나무가 마당 하늘 전체를 덮고 자라는 것을 보며 '우리가 마당 있는 집에 살게 되면 꼭 포도나무를 심자'라고 말했던 남편은 이사 올 때 마당 수돗가를 정비할 때부터 포도 덩굴을 올릴 생각으로 틀을 짰을 만큼 계획적이었다. 신 맛을 싫어하지만 포도는 먹고 싶은 나를 위해 거봉으로 선택했는데, 그렇게 5년 넘게 키운 아이가 지난겨울 죽었다. 아니, 아무리 기다려도 싹이 나지 않길래 죽은 줄만 알았다. 넝쿨로 올린 가지에 벌레가 생긴 걸 보기는 했는데, 우리 마당에서만 5년을 넘게 살았는데 그렇게 쉽게 간다고?

그래도 싹이 나질 않는 걸 어찌하겠는가. 죽은 아이를 마냥 방치할 수도 없으니 치우고, 새 포도를 들여야지. 아쉬운 마음에 혹여 뿌리는 살아있을지 모른다며 뿌리는 남겨보자며 죽은 목대를 잘라내는 순간! 지면으로부터 1미터쯤 되는 지점에 싹이 트고 있었는데 남편이 그걸 못 보고 밑동에 이미 칼을 댔다. 아~ 어떡해, 내 거봉!

살아있으니 다행이긴 하다만, 이 포도가 다른 뿌리에 접목시켰던 아이라면 뿌리 쪽에서 새로 나는 아이는 거봉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렇게 여름 내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포도 알맹이가 자라나길 기다렸다.

그리고 다행히, 이 아이는 거봉이 맞았다. 다 같이 소리 질러!

어젯밤, 드디어 잘 익은 거봉의 컷팅식이 있었다. 너무 들뜬 마음에 너무 빨리 땄나? 아직은 단맛보다 신맛이 많지만, 다행히 아직 세 송이의 거봉이 남았다.






올해 갑자기 마당에 가장 많은 군으로 자리 잡게 된 포도나무. 사정은 이렇다.


I.

어쨌거나 저쨌거나 죽은 줄만 알은 거봉이 살아있기는 했지만, 거봉이 거봉이 아닐까 봐 새로운 포도를 들이기로 했다. 지난여름, 샤인 머스켓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으로 그렇게 맛있는 포도를 우리 마당에도 키워보자는 마음으로 접목된 밑동이 튼실한 다른 종 나무에 붙여 만든 접목된 샤인 머스켓을 들였는데 싹이 나질 않았다. 그래도 이 샤인 머스켓을 판매하신 분은 접목된 상품은 품절이라 없지만, 삽목 시킨 아이들이 좀 자라면 보내주시겠다고 하더니 두 그루를 보내 주셨다. (접목된 상품이 훨씬 비싸긴 하지만, 품절이라 상품이 없음을 미안해하시며 두 그루를 보내주셨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 

올해 열매를 맛보기는 어렵겠지만, 잘 자리 잡아서 튼실하게 자라주렴!


II.

태양광을 설치하고 새로 원두막을 만들면서, 덩굴이 원두막 기둥을 타게 만들고 싶었던 남편이 심은 머루. 위로 옆으로 가지를 잘 뻗어주고 있어 열매도 대여섯 송이 달고 있는데, 내년에는 열매뿐 아니라 가림막 장식으로도 훌륭하게 자리 잡아 줄 것  같다. 


III.

지난여름 이웃이 그들의 땅에서 열매 맺은 머루를 나누어 주었는데, 그 향이 어마 무시하더라. '어머, 이건 꼭 과실주를 담가야 해!'라는 생각에 지난가을 이웃 머루의 가지를 잘라다가 삽목 시켜놨더니, 오호! 올봄에 고맙게도 싹이 나왔다 (삽목이 제일 쉬웠어요!). 그렇게 해서 텃밭 한쪽에 자리 잡아주었더니 열심히 잘 자라는 중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마당에서 제일 많아진 우리 집 포도들. 남편의 바람대로 오랜 시간 함께 하며, 우리 집의 한 역사가 되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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