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가의 포도나무는 남편의 오랜 꿈이었다. 자주 가는 칼국수 집의 넓지 않은 마당에 30년이 넘은 포도나무가 마당 하늘 전체를 덮고 자라는 것을 보며 '우리가 마당 있는 집에 살게 되면 꼭 포도나무를 심자'라고 말했던 남편은 이사 올 때 마당 수돗가를 정비할 때부터 포도 덩굴을 올릴 생각으로 틀을 짰을 만큼 계획적이었다. 신 맛을 싫어하지만 포도는 먹고 싶은 나를 위해 거봉으로 선택했는데, 그렇게 5년 넘게 키운 아이가 지난겨울 죽었다. 아니, 아무리 기다려도 싹이 나지 않길래 죽은 줄만 알았다. 넝쿨로 올린 가지에 벌레가 생긴 걸 보기는 했는데, 우리 마당에서만 5년을 넘게 살았는데 그렇게 쉽게 간다고?
그래도 싹이 나질 않는 걸 어찌하겠는가. 죽은 아이를 마냥 방치할 수도 없으니 치우고, 새 포도를 들여야지. 아쉬운 마음에 혹여 뿌리는 살아있을지 모른다며 뿌리는 남겨보자며 죽은 목대를 잘라내는 순간! 지면으로부터 1미터쯤 되는 지점에 싹이 트고 있었는데 남편이 그걸 못 보고 밑동에 이미 칼을 댔다. 아~ 어떡해, 내 거봉!
살아있으니 다행이긴 하다만, 이 포도가 다른 뿌리에 접목시켰던 아이라면 뿌리 쪽에서 새로 나는 아이는 거봉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렇게 여름 내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포도 알맹이가 자라나길 기다렸다.
그리고 다행히, 이 아이는 거봉이 맞았다. 다 같이 소리 질러!
어젯밤, 드디어 잘 익은 거봉의 컷팅식이 있었다. 너무 들뜬 마음에 너무 빨리 땄나? 아직은 단맛보다 신맛이 많지만, 다행히 아직 세 송이의 거봉이 남았다.
올해 갑자기 마당에 가장 많은 군으로 자리 잡게 된 포도나무. 사정은 이렇다.
I.
어쨌거나 저쨌거나 죽은 줄만 알은 거봉이 살아있기는 했지만, 거봉이 거봉이 아닐까 봐 새로운 포도를 들이기로 했다. 지난여름, 샤인 머스켓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으로 그렇게 맛있는 포도를 우리 마당에도 키워보자는 마음으로 접목된 밑동이 튼실한 다른 종 나무에 붙여 만든 접목된 샤인 머스켓을 들였는데 싹이 나질 않았다. 그래도 이 샤인 머스켓을 판매하신 분은 접목된 상품은 품절이라 없지만, 삽목 시킨 아이들이 좀 자라면 보내주시겠다고 하더니 두 그루를 보내 주셨다. (접목된 상품이 훨씬 비싸긴 하지만, 품절이라 상품이 없음을 미안해하시며 두 그루를 보내주셨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
올해 열매를 맛보기는 어렵겠지만, 잘 자리 잡아서 튼실하게 자라주렴!
II.
태양광을 설치하고 새로 원두막을 만들면서, 덩굴이 원두막 기둥을 타게 만들고 싶었던 남편이 심은 머루. 위로 옆으로 가지를 잘 뻗어주고 있어 열매도 대여섯 송이 달고 있는데, 내년에는 열매뿐 아니라 가림막 장식으로도 훌륭하게 자리 잡아 줄 것 같다.
III.
지난여름 이웃이 그들의 땅에서 열매 맺은 머루를 나누어 주었는데, 그 향이 어마 무시하더라. '어머, 이건 꼭 과실주를 담가야 해!'라는 생각에 지난가을 이웃 머루의 가지를 잘라다가 삽목 시켜놨더니, 오호! 올봄에 고맙게도 싹이 나왔다 (삽목이 제일 쉬웠어요!). 그렇게 해서 텃밭 한쪽에 자리 잡아주었더니 열심히 잘 자라는 중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마당에서 제일 많아진 우리 집 포도들. 남편의 바람대로 오랜 시간 함께 하며, 우리 집의 한 역사가 되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