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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노 Jul 21. 2022

마당이 있는 삶, 수국

수국이 이렇게나 예쁜 줄 몰랐다. 처음 화단을 꾸밀 때 이것저것 나무를 많이 사서 서비스로 받은 수국은 꽃샘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꽃대가 떨어져 꽃 없는 깻잎 상태로 마당을 차지했기 때문에 수국을 키웠지만 키우지 않은 거였다. 그래서 남편이 산수국 5주를 사면서 이 꽃이 얼마나 예쁜 줄 아냐고 입이 마르게 칭찬할 때도 시큰둥했었고, 다음 해 큰맘 먹고 비싸게 산 장미 수국 역시 꽃샘추위에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며 수국에 대한 기대치는 저만치 떨어져 나갔더랬다.


매년, 봄이 왔다 싶어 사다 심은 수국들이 꽃샘추위를 견디지 못해 꽃은 피우지 못하고 그저 살아내기만 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상했다. 노지 월동이 가능한 아이일지라도 우선 튼튼하게 자랄 때까지는 화분에 심어 데크에서 겨울을 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풍성하게 꽃을 피운다길래 커다란 화분을 준비했고, 그 화분을 가득 채운 꽃들은 여름 내내 나를 기쁘게 했다. 그렇게 화분에 심어 데크에서 겨울을 난 수국은 어느 다른 아이보다 빠르게 풍성하게 싹을 틔우고, 조로록 세워둔 수국 화분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강탈하며 예쁘다는 칭찬을 듬뿍 들었다.


올봄에도 데크에서 빠르게 싹을 틔운 수국들은 쑥쑥 자라기 시작했고, 꽃샘추위도 지난 어느 날인가 한낮의 태양을 피할 수 있는 북쪽 마당에 내놓았다 (수국은 뜨거운 태양에는 잎과 꽃이 타 버리기 때문에 오전에만 해가 드는 북쪽 마당에 키우는 것이 제격이었다. 많은 꽃들이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견디지 못하는데, 이는 내가 북쪽 마당을 사랑하게 된 결정적 이유이다.).

그런데 잘 큰다 싶던 수국 이파리들이 갑자기 시들시들해졌다. 물만 잘 주면 그냥 크는 수국이, 매일 물을 주는데 무슨 일인지 싶어 잘 살펴보니 너무 커버린 수국 뿌리가 화분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화분에 키우는 것은 무리였다. 더 큰 화분을 준비한다고 해도 남편과 둘이서 옮기기도 쉽지 않을 테고, 이만큼 키워냈으니 겨울에도 잘 버텨낼 거라 믿으며 북쪽 마당에 자리를 내주기로 하였다. 그렇게 마당에 심어놓고 보니 화분 관리를 안 해도 된다는 기쁨에 예쁜 수국을 더 들이고 싶은 욕심이 났다. 수국 심어둔 땅을 따라 ㄱ자로 꺾어진 돌길에 조로록 수국을 심어 수국 길을 만들기로 했다. 원래 있던 수국과 산수국을 제외하고 종류가 다른 열개의 수국을 더 사다가 돌길 양옆으로 심었다. 풍성한 수국 길을 기대하면서.


그러나 온실에서 자라난 애기애기한 모종이 겪기에는 추웠던 날에 이파리들이 얼어버리는 사달이 났다. 그 때문에 뿌리부터 다시 싹을 틔워야 해서 올해는 기대한 수국 길을 보지 못하게 되었지만, 내년에는 내가 사랑하는 또 하나의 공간이 되어줄 거라고 믿는다. 내년의 풍성한 수국 길을 위하여 겨울에 짚으로 잘 덮어두리라 마음먹는다.



화분의 수국을 땅에 심고, ㄱ자로 꺾어진 길 양 옆에 산수국을 제외하고도 십여 개의 수국을 더 심어 수국길을 만들었다. 내년엔 수국으로 가득찬 이 길이 정말 예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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