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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노 Oct 13. 2022

코코야, 산에 갈래?

마루를 산에 데리고 다니는 건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들한테 민폐가 되기도 하고, 내리막길에서는 나와 마루가 위험할 수 있으니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 그렇다면?

문이 열리면 미친 듯이 튀어나갈 정도로 바깥을 좋아하여 산책할 때 마치 한 마리 나비처럼 귀를 나풀거리며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니는 코코가 좋겠다 싶어, 코코를 데리고 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뿔싸! 우리 코코는 워낙 깔끔쟁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게 내 잘못이었다. 매일 아침, 모닝 배변을 위해 잠에서 깨자마자 마당으로 나갈 때도 비가 오는 날은 문으로 흘끗 쳐다본 뒤 절대 두발을 집 밖에 내밀지 않는 아이인 것을 왜 미처 생각 못했을까.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온통 발을 더럽게 하는 흙길이었으니, 자기 발이 젖거나 더러워지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코코는 두어 발자국 올라가다 흙길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냥 주저앉고 만다. 목줄을 끌어당겨도 절대 흙길로는 가기 않겠다는 완강한 코코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임도(임산물의 운반 및 산림의 경영관리상 필요로 설치한 도로)로 발길을 돌렸고, 코코는 이제야 안심이 되는지 종종걸음으로 신나게 걷는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그렇게 임도를 따라 산으로 향하다 보니, 아무도 다니지 않는 넓은 길에 코코와 나 단둘이라는 사실에 겁이 났다. 그건 코코도 마찬가지였는지, 코코가 자꾸 더는 올라가지 않겠다고 버틴다. 처음 몇 번은 코코를 달래 가며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코코가 무서워하는 것을 보니 나도 무서워 30분을 오르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다.


아쉽긴 해도, 코코 산책을 한 셈이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집에 돌아왔는데, 그렇게 깔끔한 척하는 코코 가슴털과 앞발에 온통 이상한 낙엽 부스러기 같은 것들이 잔뜩 붙어 털어내도 떨어지지 않는다. 털 빗으로 빗어도 떨어지지 않아 목욕을 시켜가며 계속 빗었는데도 떨어지지 않는다. 아니 도대체 산길로는 몇 발자국 가지도 않아놓고 뭘 이렇게 묻혀왔나 싶어 자세히 살펴보니 아아아아아아악! 그 많은 것들이 다 산 진드기였다!

4월부터는 진드기 목걸이를 하고 있어서, 우리 아이들은 진드기에 물린 적이 거의 없는데, 이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작고 빨간 산 진드기가 코코한테 수 백만 마리가 붙어 있는 것 같았다. 이를 어쩌나 ㅠㅠ


털에 잔뜩 붙언 이상한 부스러기들이 목욕을 하는 중에도 떨어지지 않아 자세히 보니, 수 백만 마리의 산 진드기들이었다. ㅠㅠ



우선 급한 대로 집에 있는 디에칠톨루아미드를 주성분으로 하는 해충기피제를 코코에게 잔뜩 뿌려보았다. 해충 예방용이지만, 고함량으로는 퇴치제로도 쓰이기에 우선 잔뜩 뿌려놓고 기다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니 진드기들이 죽어 있는 게 눈에 보인다. 죽은 진드기들은 빗으로 빗어내고, 남편에게 전화해 퇴근할 때 바르는 진드기 약을 가져오라고 일러두었다. 남편 약국이 동물의약품을 취급하고 있기에, 이런 위급상황엔 참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내가 못 본 사이에 코코가 집안 구석구석 어디에 있었는지 모를 뿐 아니라, 내가 분명 안고 돌아다니기도 했으니 입었던 옷과 모든 침구를 빨고, 집안 구석구석에 진드기 약을 잔뜩 뿌려놓고 남편을 기다렸다.

남편이 약을 가지고 퇴근하자마자 코코뿐 아니라 마루, 루루에게도 피프로닐 성분의 진드기 약을 발라주었다. 이 약이 아이들을 구제해주길 바라며...

그날부터 진드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매일 아이들 털을 결결이 훑어가며 진드기 찾아내기에 돌입했다. 진드기 방지 목걸이를 새것으로 간 지 얼마 안 된 것도 다행이고, 해충기피제를 뿌리고, 약물처치를 한 탓인지 살에 파고든 진드기는 거의 없었다.


깔끔쟁이, 겁쟁이 코코와의 산행은 이렇게 어이없게 막을 내리게 되었다. 참나, 산길로 다닌 마루는 멀쩡한데 도대체 어디서 그 많은 산 진드기를 붙여와서 이 고생을 하게 한단 말이냐. 코코 너도 산행 파트너로는 아웃이다. 그러면 이제 루루만 남았는데, 하아..... 루루와의 산행을 생각하자 내가 엄두가 안 난다. 루루와 산에 갈 수 있을까?


진드기 잡겠다고 하루종일 엄마가 품에 끼고 있으니 기분이 좋은가보다. 귀를 한껏 뒤로 접어 물댕댕이 (바다표범)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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