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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노 May 26. 2022

마당이 있는 삶, 장미

집에 마당이 있는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마당은 매년 그 모습이 달라진다.


화분에 키우던 아이의 뿌리가 너무 커져 더 이상 화분에 키울 수 없어서 땅에 심어야 하거나

노지 월동된다고 알고 산 나무들이 겨울을 버티지 못하고 죽어 빈 공간이 생겼거나

처음엔 작게 키우고 싶어 화분에 심었으나, 겨우내 예쁘지도 않게 실내만 차지하고 있던 화분에 지쳤거나

정체를 모르고 얻어 키운 식물들이 어울리지 않게 자라나고 있거나

폭풍 성장한 나무의 자리를 다시 잡아주어야 하거나

그리고, 마당을 관리하는 자의 관심의 변화와 욕심때문에


마지막의 마당을 관리하는 자의 욕심은 나의 경우가 그러하다. 더 이상 심을 곳이 없다고 생각할 때, 테트리스 하듯이 어떻게든 심을 곳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다. 뿌리가 깊지 않은 아이들은 계단식으로 화단을 만들거나 공중부양시켜서라도 심기 때문에 마당은 극한의 밀집도를 자랑한다. 처음엔 꽃이 좋아 꽃나무 위주로 심다가 수확의 기쁨을 알고 나서부터 유실수를 늘려가며 본격적인 채집 생활에 들어간다. 이미 공간을 생각하고 심어놨는데, 욕심은 끝이 없으니 잔디를 파헤치고 숲 속의 오솔길을 만들겠다며 사람 다니는 길을 따라 심고 또 심는다. 도대체 세상에 예쁜 꽃은 왜 이리 많은지, 같은 종이라도 해도 꽃 색깔과 모양이 제각각 다르니, 이렇게 예쁜 아이들을 못 본척하고 너른 잔디의 마당을 가진 사람들은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모르겠다.




나의 마당에는 찔레 장미 3종을 빼더라도 9 종류의 장미가 있다. 카르텐 슈파스, 사하라, 스펙트라, 로즈 데 톨비악, 투폴리나 살몬, 키스미케이트, 아바에드클루니, 슈테른탈러, 노발리스. 독일에서 개량된 아이들이 많아 그 이름도 참 독특하지만, 이 이름을 헷갈리지 않고 외워줄 만큼 예쁜 아이들이다. 겨울을 보내지 못하고 가버린 앰버썬, 엉클월터, 찰스톤, 이름 없는 미니장미들을 포함하면 진짜 많은 장미들을 키웠다.


어릴 때는 식물에 큰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난 특히 장미를 좋아하지 않았다. 괜한 심술이었을까 시기 질투였을까. 뭐 얼마나 대단하게 예쁘다고 꽃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씩이나 가졌나 싶어, 누군가에게 꽃 받을 일이 생길 때도 장미만큼은 극구 만류할 정도였다.


마당 있는 집에 살면서 장미 예쁜 걸 알아가면서도 빨간 장미는 내 마당에 들어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집집마다 있는 빨간색 장미가 너무나도 흔해빠진 것만 같아서, 내 마당에 남들 다 심는 빨간 장미는 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빨간 장미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옆집 담장을 타고 주렁주렁 탐스럽게 매달려있는 빨간색이 어찌나 선명하게 눈에 띄는지, 초록초록한 마당에 빨간색이 주는 강렬함이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그렇게 해서 빨간색 장미를 알아보던 차에 나는 알게 되었다. 하늘 아래 같은 빨강이 없는 건 립스틱뿐이 아니라는 것을. 장미는 꽃의 색과 크기와 꽃잎 수도 다양할 뿐 아니라, 다화성, 사계성, 향이 있는 것, 가로로 확장하는 넝쿨형인지 나무처럼 세로로 자라는 관목형인지 등등에 따라 정말 많고 많은 종류가 있다는 것을. 빨간 장미 중에서도 검붉은색, 주황빛이 도는 빨간색, 벨벳 같은 빨간색,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 바뀌는 빨간색 등 그렇게나 많은 빨간색이 존재한다는 것을.  

고민고민 끝에 작년 봄 나의 마당에 입성한 빨간 장미 엉클월터는 겨울을 이겨내지 못하고 가버렸지만, 언젠가는 꼭, 다시 빨간 장미를 마당에 입성시키겠다는 결심은 유효하다. 올해는 헤르초킨 크리스티아나 또는 가든 오브 로즈 먼저 들여놓고 말이다.



올해의 장미들, 아직 꽃피우지 않은 아이들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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