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아이돌 또는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다고 했다. 노래하고 춤추는 게 너무 좋다고, 보컬 레슨을 받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이돌이 싫다. 어린 나이에 고정된 꿈을 가지고,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하며 연습생 생활만 하는 아이돌이 불쌍했고, 그들을 상품화하는 어른들이 싫었다. 게다가 연예계의 풍기 문란한 소문들은 아이가 아이돌이 꿈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나를 겁나게 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강의를 신청해주거나, 작사, 작곡 관련 책을 사주며 아이의 바람을 모른 척하고 있었다.
아이가 음악시간에 민요로 수행평가를 본 민요라며 본인이 부르는 것을 들어보라고 했는데, 놀랄 만큼 잘 불렀다. 마치 송소희처럼.
"우와! 너 송소희만큼 잘 부르는 거 같은데!"
"진짜? 수행 평가한다고 해서 송소희 노래 들어가면서 연습해서 그런가 봐. 음악 선생님이 내 노래 들으시고 무대를 찢었다고 하셨어."
그런 대화를 나누며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때마침 국악교실이 눈에 보였다.
"딸아, 너 보컬 레슨 받고 싶다 했잖아. 근데 엄마는 실용음악학원은 잘 모르겠어. 어차피 노래하는 데 있어서는 성량이나 발성이 중요한데 국악 하면서도 배울 수 있잖아. 국악학원에 한번 가볼래? 요새 국악이랑 k-팝이랑 퓨전음악도 많아지고 있으니까, 국악을 배워두면 네가 하고 싶어 하는 음악의 영역이 넓어지는 거 아닐까?"
"그럴까?"
그렇게 내 손에 이끌려 아이는 국악학원에 가게 되었다.
국악 학원에 다닌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지역 방송국에서 키즈 싱어 경연대회를 개최한다는데, 선생님께서는 아이가 끼가 많으니 한번 참가해보자고 하셨다. 한 달 밖에 안된 아이를 경연대회에? 나는 조심스러웠지만, 아이는 듣자마자 나가겠다고 했다. 네 마음대로 해라.
아이가 국악 쪽에 재능이 있는지도 궁금하기도 했고, 이런 경연대회는 아이의 재능을 전문가로부터 평가받을 수 있는 귀한 기회이니 아이가 참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아이의 신청서 작성을 도왔다. 이 기회를 통해 조금 더 연습을 빡세게 하리라는 기대도 한 스푼 얹어서.
예선, 본선, 결선으로 진행되는데, 아이는 운 좋게 7명 뽑는 결선까지 나가게 되었다. 입선에 그쳤지만 3개월 만에 나름 의미 있는 성과라고 생각했다.
좀 더 노력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본선 이후 결선까지 한 달의 시간 동안 아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 달 만 국악에 집중해줬으면 하는 내 바람과는 다르게 아이는 그 한 달의 시간에도 국악보다는 가요와 춤을 더 열심히 즐겼다.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노래를 잘하라고 비싼 국악학원에 보내 놓으니까, 경연을 앞두고도 왜 열심히 하지 않는 거지?'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화도 났다. 화를 내봐야 소용도 없지만.
국악학원에 가는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아이는 이동 중인 차 안에서 원곡과 비교하며 가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딸아, 원곡 가수는 힘을 빼고 노래하는데 넌 왜 그렇게 강하게 불러?"
"이 노래 가사가 헤어진 다음 날의 심정을 노래한 건데, 가사를 보다 보니 나는 이 상황에 맥 빠지기보다는 화가 날 것 같더라고. 그래서 화난 것처럼 부른 거야."
오올~ 그저 따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 가사를 해석해서 자기 나름대로 소화하고 있다니, 아이가 한 뼘 더 자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날 결심했다. 실용음악학원을 알아봐 주기로.
아이는 처음부터 보컬 레슨을 받고 싶어 했는데, 국악학원으로 이끈 건 나였다. 나는 아이가 하고 싶어 한 적 없는 국악을 시켜놓고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화를 낸 꼴이었다. 엄마 말이 맞는 것 같으니까 아이가 따라와 주었지만 아이가 내 생각만큼 열심히 안 한 건, 아니 가요만큼 열심히 안 한 건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매년 가정생활조사를 하면 꿈을 적는 칸이 있는데, 나는 그 칸을 공란으로 둔 적도 많았다. 아이가 굳이 본인의 꿈이라며 발레리나를 적었던 몇 해를 빼고.
그 칸을 채우는 게 그렇게 싫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본인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게 하고 싶은데, 어릴 때부터 주입하듯이 꿈을 강요하는 것만 같았다.
사실 꿈이 없으면 또 어떤가. 나 역시 꿈꾸지 않고도 지금까지 살아오는데 아무 지장 없는데, 왜 다양한 삶이 존재하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부터 꿈이 있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인지 괜한 반발심이 들기도 했다.(이런! 아이의 반항 기질은 다 내 유전자인가?)
그렇게 유난을 떨어가며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찾으라 해놓고, 막상 아이가 아이돌이 꿈이라니까 어떻게든 다른 쪽으로 돌려보려고 하는 내가 가증스럽기조차했다.
그래도 연예계 일이라는 게 얼마나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하는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짐작이 되는 만큼 그 길만은 조금 돌아갔으면 싶었다.
"가수의 최종 목표는 자기가 만든 음악을 자기 목소리로 표현하고 싶은 게 아닐까? 그럼 보컬도 보컬이지만, 작사 작곡 능력을 키우면 좀 더 너만의 색깔이 있겠지? 실용음악학원을 알아볼 때 작곡 쪽도 좀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며칠 후에 아이는 오디션을 보겠다고 한다. 가끔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지방을 순회하며 댄스학원이나 실용음악학원을 통해 오디션을 개최하는 것 같은데, 친구가 추천해줬다며 오디션 보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했다.
예전 같으면 펄쩍 뛰며 반대했겠지만, 내려놓기 연습을 하는 엄마답게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오디션 보는 것을 허락했다.
국악 경연대회는 재능을 평가받는 기회라 생각해 장려해놓고, 똑같은 경우인 소속사 오디션에 대해서는 반대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나야말로 이중잣대로 아이가 하고 싶은 걸 반대하려는 거 아닌가. 전문가에게 재능이 없다고 평가받는다면, 아이 스스로도 다른 방향의 꿈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겠는가.
덜컥 오디션에 합격해서 아이돌 연습생을 한다 해도 걱정이고, 떨어져서 아이가 상처받지 않을까도 걱정이다. 그래도 우선은 네 맘대로 해봐라. 걱정은 그때 가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