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아이를 때렸다.
발단은 내 책상에서 돈이 없어진 사건이 터지면서부터이다. 책상 위에 있던 만 원짜리 열 장 중 네 장이 없어진 것이다.
우리 집에 돈이 필요한 사람은 딸아이 밖에 없으니, 자연스레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너무 몰아붙여서 아이를 궁지에 몰아서도 안될 테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도 없는 일이니 난감했다.
"딸, 엄마 책상에서 돈 가져갔어? 엄마 돈이 없어졌어."
"아니, 내가 안 가져갔는데."
"응. 아빠한테도 물어봤는데, 아빠도 안 가져갔대."
"나 의심하는 거야?"
" 아무래도 우리 집에서 돈 필요한 사람은 너밖에 없잖아. 그래서 물어본 거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그렇지만 나 아니야. 어디 떨어뜨린 거 아냐?"
"엄마가 다시 찾아볼게. 엄마가 옛날 어릴 때 슈퍼에서 초콜릿을 훔친 적이 있다. 할머니한테 걸려서 경찰서 끌려갈 뻔하고, 슈퍼 사장님께 사과드리고 돈으로 돌려드렸거든. 근데, 그 기억 때문인지 엄마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도둑질 얘기를 들으면 뜨끔해. 딸은 자라면서 엄마처럼 평생 가지고 갈 죄책감은 만들지 마~"
어릴 때 도끼로 나무를 자르고 “제가 그랬습니다”라고 사실대로 말했다는 링컨의 얘기라도 해줬어야 하나 별의별 고민을 해놓고 길게 말해봐야 일만 더 크게 만들 것 같아 내 어린 시절을 참회하는 얘기를 들려주며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넘어갔다.
며칠 후, 또다시 돈이 없어졌다. 견물생심이라고, 처음엔 내가 눈에 딱 보이게 만 원짜리 열 장을 보란 듯이 올려놔 일이 발생했으니 내 탓도 있겠다 싶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없어진 4만 원을 뺀 6만 원을 고스란히 내가 자주 쓰는 노트 맨 앞장에 끼워뒀는데, 그중 2만 원이 없어진 것이었다.
나는 꼼꼼한 편이라, 내 물건 하나하나 어디에 뒀는지 다 아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노트 앞장에 끼워둔 돈이 없어졌다면, 내 실수 일리가 없는 그런 사람이다. 남편도 나를 잘 아는지라, 두 번째로 돈이 없어지자 딸아이에게 단호하게 얘기할 필요가 있겠다고 했다.
하교하는 딸을 차에 태우자마자 돈이 없어진 사실에 대해 화를 냈다. 딸아이는 억울해하며 말했다.
"의심할 수는 있어! 그런데 내가 그랬다는 증거도 없는데 확신하면 안 되는 거 아냐?"
"넌 내가 그렇게 물건을, 돈을 허투루 두는 사람 같니? 며칠 사이로 두 번이나 돈이 없어졌어. 처음엔 보이는 곳에 둔 내 탓도 있다 생각하고 넘겼지만, 이번엔 달라!"
"엄마가 돈을 어디에 둔지도 모르는데, 돈이 없어진 게 왜 내 탓이냐고! 엄마가 제대로 간수하지 못해 놓고 왜 확신을 하냐고! 씨 0"
아. 아이 입에서 나와서는 안될 말이 나왔다.
"너 뭐라고 했어? 씨 0? 그게 엄마한테 할 소리야!"
"엄마한테 한 거 아니야! 혼잣말 한걸 왜 들어놓고 난리야"
아이가 말끝을 흐리는 걸로 봐서는 본인도 실수 한걸 알아챈 것 같았다. 그런데도 지금 상황에서 물러나고 싶지 않았는지 혼잣말이라는 둥 친구들끼리 추임새처럼 쓰는 말이라는 둥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저녁에 남편 얼굴을 보자마자 오늘 일어난 일들을 말했다. 남편은 조용히 듣더니, 굳은 얼굴로 이층 딸의 방으로 올라갔다.
딸의 악다구니 쓰는 소리가 들리고, 남편의 언성이 높아졌다. 평소 큰소리 한번 안내는 사람이라, 인상 한번 쓰지 않는 사람이라 걱정스러운 마음에 따라 올라가 봤더니, 이미 일은 벌어져 있었다.
차근차근 잘못을 추궁하는데도, 딸 아이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눈을 부라리며 반항하자 평소 예의 하나만 지키라던 남편이 폭발해버린 것이었다.
내가 올라가자 흥분할 대로 흥분한 두 사람의 감정이 걷잡을 수 없게 되었는지 딸아이가 외쳤다.
"해보라면 못할 줄 알아? 할 수 있어! ㅆ0!"
남편은 이성을 잃고 베개를 들어 내리치기 시작했다. 분명 아이가 잘못해서 훈육을 하는 중이었는데, 끼어들어도 되는지 잠깐 고민스러웠다. 남편이 서너 번쯤 베개를 들어 올려 아이의 등짝을 때렸을까,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에 남편과 딸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리고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남편을 아래층으로 내려보냈다.
남편이 저렇게까지 이성을 잃은 것을 보자 무서웠다. 나라도 정신줄을 잡아야겠다 싶었다.
딸아이는 분에 못 이겨 울고 있었다.
"네가 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더라면 발생하지 않을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아빠가 널 때린 건 폭력 맞아.
그런데 네가 아빠한테 맞을 때, 아빠를 말려야 하는지 고민했어. 아빠가 분명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내가 끼어들어 너의 잘못을 고치려던 아빠의 훈육에 방해가 될까 봐. 그런 고민을 하느라, 그 상황에 바로 말리지 않고 널 지켜주지 못했던 거, 엄마가 너무 미안해. 사과할게.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그리고, 아동학대로 신고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
"나도 내가 잘못한 거 알아. 그런데 왜 내가 돈 안 가져갔다는 건 알아주려고도 안 하고, 내가 왜 그런 잘못을 하게 됐는지는 물어보지도 않고 내 잘못만 탓하는데!"
남편은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행위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장 내일 아침 검도장에 가는 일부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지난번처럼 조용히 에둘러서 훈육할걸 그랬나, 아이를 몰아붙인 내 잘못만 같았다. 딸한테 그런 욕을 들은 배신감에 밤새 뒤척이는 남편이 안쓰러웠다. 의지할 곳 하나 없다고 느끼며 울면서 잠들었을 딸아이가 불쌍했다.
아침 일찍 남편과 딸을 불러다 식탁에 앉히고 말했다.
"어제 일에 대해서 나는 두 사람 다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해. 발단은 돈이 없어진 거지만, 딸, 네가 억울한 것과 상관없이 부모한테 욕을 한 건 분명 잘못한 거야.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 집에서 돈이 없어진다면, 나는 너를 의심할 거야. 증거가 없어도, 우리 집은 너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니까 명심해!
당신이 어제 아이를 때린 건 훈육이라 포장할 수도 없어. 당신은 아이를 폭행한 거고, 만약 누군가 다른 어른이, 선생님이, 아이의 미래의 남편이 저 아이를 그렇게 때리는데, 아이가 가만히 있었다면 난 화가 났을 거 같아. 부모에게 한 욕설이 패륜같이 생각될 수 있지만,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폭행이라는 부당함에 욕설로라도 맞받아친 걸 잘했다고 했을 거야.
그래서 두 사람이 서로의 잘못과 무관하게 각자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면 좋겠지만, 그건 본인들이 판단해. 화해가 없다면 이전 같은 가족이 되기는 어렵겠지. 그래도 강요하지는 않을게.
그런데, 그것과 무관하게 각자 자기의 인생을 살아. 딸, 네가 검도 배우고 싶다 해서 시작한 거니까 넌 오늘도 검도장 가는 거야. 당신, 당신이 그랬잖아, 우리도 운동이 필요하니까 같이 검도하자고. 우리는 우리 운동하러 검도장 가는 거야. 알았지? 남들이나 다른 가족이랑 상관없이 그렇게 각자의 삶을 살아내!"
평소엔 딸 자세를 봐주고, 재잘재잘 떠들던 두 사람이 검도장에서도 눈 한번 안 마주치고,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딸이 하교하면 먹을 간식거리를 매일매일 고민하던 남편이, 외식을 거부하고 집에서 혼자 점심을 먹겠다는 딸아이를 내버려 둔다.
서로의 사과와 화해 없이는 이들의 냉전이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시간이 길어지면 점점 어려워질 일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지금은 각자의 삶을 살아내며 서로에 대한 분노를 잠재우길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