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 친구 A는 춤을 진짜 잘 추는데 연예인이 되고 싶어서 공부는 포기하고 댄스에 올인하겠대."
아침 댓바람부터 젖은 머리 말리다 말고 이게 무슨 소리냐.
"딸아. 연예인이 되겠다고 공부를 포기하는 건 좋은 생각은 아닌 거 같은데. 너 TV에 나오는 아이돌 중에 상식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 나오면 저런 것도 모르나 싶어서 답답하지 않아? 난 그렇던데. 게다가 꿈이 언제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데, 내게 주어진 시간을 포기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
내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아이는 드라이를 마저 하고는 가방을 집어 들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서 문득 아이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래서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이 뭐였지? 친구가 학업을 포기한 것에 대한 아이의 생각을 내가 들었던가?
항상 그랬다. 아이가 어떤 일에 대하여 화두를 던지면 난 혹여라도 아이가 바르지 않은 결론을 내릴까 봐 내 생각을 강요하기에 급급했다.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스스로의 성찰을 끝낸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에게 물었다.
"아침에 댄스에 올인하겠다는 친구 A 얘기했잖아. 그 얘기 왜 한 거야? 엄마가 엄마 하고 싶은 말 하느라, 정작 딸이 하려던 얘기는 듣지도 않았네. 미안해."
"아, 그거? 난 엄마 생각과는 다르게, A가 좀 멋있다고 생각했어. 자기 꿈에 올인하는 거, 어린 나이에 그런 결심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거잖아."
"그랬구나. 넌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럴 수도 있지. 맞아. 어린 나이에 꿈을 딱 정하고 올인하는 건 쉽지 않지. A도 대단한 결심 했네. 근데 부모 입장에서는 불안한 거야. 아이돌이 쉽지 않은 길이고, 또 아직 어리기 때문에 꿈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너네 나이에 가장 기본적인 학업을 포기까지 한다면 걱정스러운 마음이 크겠지. 엄마 마음도 이해는 돼?"
"응. 엄마 마음도 이해는 하지. 그런데 엄마는 학업 포기에 집중한 거고, 난 꿈에 올인했다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에 A가 멋지다고 생각한 거야. 내 마음도 이해는 돼?"
한방 먹었다. 아이는 내 반응을 예상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날 떠보는 것 일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스스로의 생각을 논리 정연하게 맞받아 칠정도로 언제 저만큼 컸단말인가. 아이는 시나브로 커가고 있는데, 나만 아직 물고 빨고 다디 던 때의 조그마한 아이로 생각하고 있었구나.
아이가 사춘기이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친구들과의 사소한 다툼, 남자 친구 얘기까지 나에게 재잘재잘 잘 말해준다. 그런데 다른 어른들과 아이가 어떤 상황에 대해 얘기할 때, 그때의 아이 감정이 어땠는지 물으면 아이는 사회적 가면을 쓰고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대답을 할 뿐, 본인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가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토로하려고 할 때, 내가 아이 말이 끝나기 전에 내 생각부터 말하느라 급해서 그런 것일까? 아이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툴다면, 그건 다 내 탓인 것만 같았다.
"딸아, 넌 네 얘기 엄마한테 잘하잖아? 친구들 감정 얘기도. 그런데 네 속마음은 엄마가 일부러 건드려주지 않으면 말 잘 안 하지?"
"음...... 난 있었던 일은 다 말하지만, 속마음까지 얘기하진 않는 거 같아."
"다 말해야먀 하는 건 아니지만, 네가 힘들 때는 엄마한테 말해주면 좋겠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리고, 가사를 쓰는 아이의 그 모든 행위가 자신의 감정을 발산하는 일이라 그것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말로 본인의 감정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데, 혹시 내 생각을 전달하느라 급급했던 나의 태도가 아이의 감정을 부정하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언젠가부터 속마음을 표출하지 않게 된 것은 아닐까?
늦었지만 이제라도, 아이와의 대화방식에 있어서 나한테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서 다행이다. 아이가 아이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내 생각은 멈추고 귀는 활짝 열어둬야겠다.
방방이는 유난히 귀가 큰 원숭이예요.
친구들을 도와주는 걸 참 좋아하지요.
그래서 방방이는 친구들의 눈을 보며
말을 끝까지 귀 기울여 들어요.
친구가 말할 때 끼어들지도 않고요.
그래야 무얼 도와줄지 잘 알 수 있으니까요.
<귀가 뻥! 이야기가 쏙쏙>, 정순 글, 진유현 그림.키즈스콜레
친구들의 눈을 보며 말을 끝까지 귀 기울여 듣고, 친구가 말할 때 끼어들지도 않는 방방이 같은 엄마가 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