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역할을 공부하는 중입니다.

by 박대노

"엄마 아빠는 집순이 집돌이라 집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하기는 해도, 제가 하고 싶다는 게 있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다 해주셨어요."

아이의 이 말 뒤에는, 나를 울컥하게 하는 한 마디가 더 있었다.

"그렇지만, 엄마랑 아빠랑 좋은 데 가서 사진도 찍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엄마 아빠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원하는 걸 하게 해 주고, 원하는 장소에 데려다주었지만, 막상 엄마 아빠가 그 장소에서 함께 즐기지는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밥하기 싫어하는 엄마를 위해 늘 하는 외식 말고, 나들이 가듯이 카페 가서 사진도 찍고 싶다고 했다.


아이를 우리 부부 대신 데리고 다녀주는 것은 동생네 부부나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동생도 아이가 외동인데, 워낙 활동적이라 어차피 자기네는 집에 있을 수 없다며, 차로 두 시간 걸리는 동생네 집으로 또는 놀 곳으로 아이를 데려다주면 동생네가 돌봐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놀이동산을 다니고, 명소를 다니고, 유럽여행을 다녔다. 해외에 함께 가더라도 객실을 벗어나지 않는 엄마 대신 하루 종일 수영장에서 놀아주는 일도 동생네 부부가 해 주었다. 아이가 말하는, 부모가 찾아준 방법이란 이런 거였다.




과학학원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새로 등록하러 가는 날이라, 미리 연락하고 찾아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당황해서 전화해보니 시험 기간이 끝난 주는 쉰다고, 미리 말했는 줄 알았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미술학원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지만, 집에 있을 개들도 걱정되어 집으로 돌아가려는 차에 딸아이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엄마, 시간 좀 있으니까 우리 어디 가서 뭐 마실래? 어차피 나왔으니까 좀 돌아다니다가 가자. 내가 커피 사줄게."

아! 딸아이는 이렇게 잠시라도 나와 집 밖 어딘가를 같이 다니고 싶어 했는데, 집 밖을 싫어하는 엄마에게 한번 티도 못 냈던 것이었다. 울컥하는 기분에, 딸아이 손을 꽉 쥐며 대답했다.

"미술학원 가기 전에 강아지들 배변도 시켜주고, 밥도 주고 와야 해서 카페에 오래 있지는 못해. 그래도 괜찮아? 괜찮으면 가자! 대신 네가 커피 쏘는 거다!"


아이는 친구들과 같이 가 본 카페로 내 손을 이끌고, 능숙하게 키오스크로 주문을 해주었다. 그런데, 이런! 기계 작동에 뭔가 이상이 있는 건지, 아이의 돈 만 원짜리를 자꾸 뱉어내는 것이다. 결국 내 카드를 긁어야만 했지만, 엄마와 함께 카페에 와 있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아이를 보니 좋았다. 친구들과 톡 하느라 나랑은 놀아주지도 않았지만, 그곳에서 나는 아이의 사진을 연신 찍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게 느껴져, 그동안 그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던 것이 미안했다.




미술학원이 끝나면 보통 9시가 넘는다. 남편도 저녁을 거른 채 합류해서 그림을 그리다 오기 때문에, 미술학원 가는 날은 보통 치킨, 족발, 떡볶이 등의 야식으로 저녁식사를 때운다.

그런데, 미술학원을 나오면서 남편이 갑자기 야경이 좋은 카페가 모여있는 동네에 가보자고 한다. 어차피 먹을 야식, 좋은 구경도 하면서 아이가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가자고.

'너무 늦었는데, 조금 있으면 잠이 쏟아질 텐데, 게다가 오늘 낮에 카페 다녀왔는데......' 싶어 내키지는 않았지만, 아이의 말을 귀담아 들어준 남편이 고마워서 카페 거리로 향했다.


그러나...... 이 시간에 나와본 게 언제였던가. 코로나 때문인지 카페 거리의 모든 영업 마감은 10시였다. 포털에는 더 늦은 시간으로 기재되어 있는 곳들조차 막상 들어가 보면 문 닫을 시간이라며 양해를 구했다. 어쩔 수 없이 시내로 다시 차를 돌린 시간이 9시 45분. 세계 주류마켓이 있는 곳에도 카페나 펍들이 모여 있길래 그곳으로 찾아가 보았으나, 그곳들도 10시면 문을 닫는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야외에 조명과 조경을 예쁘게 해 둔 탓에 남편이 영업시간을 확인하면서 돌아다니는 동안 딸아이의 사진을 찍어줄 수 있었다는 거였다.


마지막 보루로 예전에 가 본 적이 있던 맥주공장을 겸한 펍으로 급하게 차를 돌렸다. 분위기도 괜찮고 안주도 맛있었던 기억이 나서 그곳으로 가기로 한 건데, 시간은 이미 10시가 넘었다.

그런데 웬걸. 우리가 집 밖에 나오지 않는 동안 코로나의 타격이 심했던 모양이다. 1층이 펍, 2층이 식당이었던 맥주 공장은 1층은 문을 닫고, 2층을 펍으로 바꿔 운영하고 있었다. 예전 분위기도 아니어서 망설여졌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곳에서 남편은 수제 맥주를, 딸아이는 콜라와 파스타, 치킨, 감자튀김과 나초를 시켜 늦은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주문을 해놓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데, 눈꺼풀이 내려왔다.

이렇게 졸면 안 되는데, 이 시간에 여기까지 왜 왔는데! 눈을 부릅뜨고 아이의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음식이 나올 때마다 맛있게 먹는 딸아이의 얼굴에 계속 카메라를 들이댔다.

"엄마, 이제 그만 찍어."




아이의 그만 찍으라는 말에 번뜩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매주 아이를 데리고 놀러 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수백 장의 사진을 찍어댔다. 그 어린아이가 "이제 그만 쫌 찍어!"라고 짜증을 낼 정도로.

그 사진을 본 사람들이 왜 똑같은 사진을 그렇게나 많이 찍느냐고 할 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하늘 아래 같은 빨간색이 없는 것처럼, 똑같은 사진은 하나도 없어. 표정이 조금씩 다 다르잖아."


아이가 어릴 때는 매일매일 차이도 없는 얼굴 사진을 수백 장씩 찍었는데, 아이가 셀카를 찍을 수 있게 되면서는 아이의 사진을 많이 찍지 않게 되었다. 아이가 말을 하지 못할 때는 아이의 욕구를 알아내기 위해서 아이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는데, 아이가 자기 생각을 얘기하는데 내 귀는 아이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이란 말인가,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다.


아이가 기억도 못하는 시기에는 아이를 손에서 떼놓지 않고 여기 저기 끌고 다니더니, 아이가 자라고 기억할 수 있게 되고 나서는 아이 홀로 저런 생각을 하게 내버려두었다. 아이의 유아기에는 수십 권에 달하는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도 부족함을 자책하더니, 사춘기는 대여섯 권의 책으로 다 파악했다고, 그렇게 공부해가면서 15년을 키워왔으니 내 아이는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다.

오만하고 오만하고 또 오만했다.


나는 이제 두 번째 육아를 위한 공부를 시작하려 한다. 글로만 배우는 육아는 분명 한계가 있을 테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글로조차 배우려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고, 나는 그렇게 내 아이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갈 것이다.

누군가는 그렇게 매번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공부하고 시도하고 스스로를 반성하는 일이 지치지 않느냐고 내게 물었다. 아니, 나는 잘못된 것을 깨닫고, 노력해서 개선해나가는 과정이 좋다.

내가 잘못을 인정하고, 아이에게 사과하고, 그 사과를 아이가 받아주고, 또다시 노력하고....... 아이와 그 시행착오를 겪어내는 과정이 소중하고, 그런 내 노력을 아이가 알아주기에 힘이 난다.




"딸, 엄마랑 이런 거 같이 하고 싶었어? 예전에는 내가 뭐 같이 하자 하면 귀찮아하길래, 친구들하고 노는 것만 좋아하는 줄 알았어. 그동안 그 마음을 못 봐줘서 미안해. 앞으로는 이런 시간 자주 갖자!"

"엄마가 집 밖에 나오는 거 싫어하는 거 나도 아니까 참은 거지. 근데 엄마, 엄마가 올해 계획으로 기록하기를 선택하면서 엄마의 추억이 잊혀가는 게 싫다고 그랬잖아. 그 말 듣고, 나는 할아버지랑 추억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할아버지랑 추억을 많이 만들겠다고 한 거 기억나? 생각해 봤는데 어릴 때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랑 함께 보낸 시간이 적었던 게 아니라, 함께 했던 시간을 사진으로 많이 남겨두지 못해서 기억을 꺼낼 수가 없는 거 같았어. 엄마 아빠랑도 그렇게 될까 봐, 추억도 많이 만들고 사진으로도 많이 남기고 싶은 거야."


남편이 왜 딸아이가 나보다 훨씬 어른스럽다고 하는지, 이제 알 것 같다. 언제 이렇게 자라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내가 보기에 대충대충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이는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스스로 생각을 키워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이를 바라보는 내 시선에서 불안감을 걷어낼수록, 아이는 스스로 더 잘 자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는 정말이지 나만 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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