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네 막내 고모를 낳았는데, 글쎄 그다음 날에 김장을 100포기를 내가 혼자 다 했어. 그걸 내가 다 하고서는 앓아누워가지고 한 달을 못 일어났어. 얼굴도 몸도 전부 퉁퉁 붓고, 그러니까 시어미가 미역국 끓여주더라."
충격의 시집살이 스토리의 주인공은 복남이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복남이가 몇 번을 이야기해도 계속 충격적인 전설적인 시집살이 에피소드 1위라고 자부한다. 아이를 갓 낳은 며느리에게 김치 100포기를 담그라니.
그런 지옥의 시집살이를 통해 단련된 복남의 음식 솜씨는 뭐랄까 엄청난 것이었다. 복남이는 가끔 손녀랑 마트에 가서, 또 혼자서 동네 5일장에 가서 네 식구 먹을 반찬거리를 산다. 생선을 사다가 굽고 졸이고 쪄먹고, 고기를 사다가 구워 먹기도 볶아먹기도 한다. 각종 나물도 슥슥 무치면 너무 맛있어서 손녀는 옆에서 그걸 다 받아먹는다. 복남이 만드는 김치는 일주일 내내 그것만 먹어도 안 질리는 이상한 맛이었고, 특히 그 손녀는 복남이의 파김치 그리고 복남이의 (복남이의 김치로 끓인) 김치찌개 귀신이었다. 손녀는 파김치가 눈물 나게 맛있어서 그걸 먹으려고 그 파김치에 어울리는 된장찌개를 일주일 내내 끓인 적도 있다. 게다가 밤에 배가 고프면 복남이가 끓여놓은 김치찌개를 다시 데워서 냄비채로 퍼먹기도 했단다. 지독한 복남이의 지독한 손녀였다.
복남이는 제사상에 올리는 각종 전 류도 잘 부쳤다. "내가 이거 해주고 돈 받고 그랬어~" 라며 자신의 전 부치는 실력을 자랑하곤 했는데, 정말로 복남이가 부치면 어찌나 깨끗하고 예쁜지. 고백하건대 복남이가 너무 쉽게 부치길래 예쁜 전을 부치는 건 쉬운 일인 줄 알았다. 복남이가 부친 전을 넙죽넙죽 받아먹기만 하던 손녀는 다 커서 복남이와 같이 전을 부쳐보면서 알게 되었다. 예쁘게 전 부치는 건 그리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도저히 자신은 전 부치기 따위나 요리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과연 지옥의 시집살이로부터 살아남은 복남이다. 거기다 소싯적 양평군 성덕리 이장으로 활동하며 온 동네 사람들과 남의동네 손님들까지 해먹이며 갈고닦은 요리실력이다. 그 요리실력으로 복남이는 자기가 낳은 새끼들과, 그 새끼들의 새끼들까지 거두어 먹였다.
복남이는 마트에 가면 그렇게 소고기 다시다와 미원을 사 오곤 했는데, 그런 관계로 손녀는 복남이의 손맛은 엄청나지만 그게 꼭 "조미료 FREE"를 의미하는 건 아니란 걸 안다. 그러나 복남이의 손맛과 다시다와 미원이 만나면 뭐든지 맛있었고, 그래서 늘 배부르고 등 따시게 지내온 날들을 기억한다.
복남이와 같이 사는 손자와 손녀 이 어린놈의 새끼들은 컵라면이나 과자, 치킨 같은 것들을 좋아했다. 특히 손자는 치킨과 족발 따위를 엄청나게 좋아했는데, 손자가 오면 하루가 멀다 하고 치킨을 시켜먹는 바람에 손자와 함께 복남도 치킨을 자주 먹곤 했다. 손자와 손녀가 어릴 적에 복남은 손자 손녀 먹을 것을 자기가 먹어버릴 까 봐, 자기가 먹으면 손자 손녀 먹을 게 부족할까 봐 몇 조각 먹지도 않고 짐짓 다 먹은 척을 한다. "난 다 먹었어~" 그러고는 손자와 손녀가 다 먹고 남으면 또 먹는다. 늘 이런 식인 탓에 어느 순간부터는 손자와 손녀도 할머니의 거짓말을 알게 되었고, 치킨 많으니까 할머니도 먹으라며 성화를 해댔다. 어떻게 된 게 이놈의 집구석은 치킨을 눈앞에 두고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애틋함이 펼쳐진다.
복남이 제일 좋아하는 것들은 족발, 편육, 닭발, 멍게, 문어, 그리고 그 외에 생선이라면 그냥 다 먹어버린다. 해산물 킬러다. 족발은 자고로 뼈에 붙은 게 제일 맛있다며 제일 커다란 뼈와 자잘한 뼈에 붙은 껍데기는 어떻게 저렇게 깨끗하게 먹나 싶을 정도로 쪽쪽 다 뜯어먹고, 닭발도 복남이 먹으면 정말이지 이미 죽은 닭의 발인 그 닭발이 좀 불쌍할 정도로 뼈만 남고, 멍게는 시뻘건 고무같이 생긴 놈을 통째로 사다가 칼로 슥슥 까서 후루룩 다 먹어버리고는 한다. 복남은 어릴 때 강원도 옥계면 바닷가에서 나고 자랐는데, 거기서 나는 각종 생선과 해산물을 먹고자랐댔다. 해변에 밀려오는 미역 줄거리도 다 먹었다고 하니, 해산물을 잡아다가, 캐다가 먹는 건 얼마나 익숙한 일이었겠는가. 바닷가 출신의 몸에 배어있는 엄청난 해산물 손질 실력은 생선을 제대로 만지는 것도 힘들어하는 손녀에게 경외스러운 어떤 것이었다.
돈을 벌고 나서 손녀는 추측컨대 수백 번 정도 복남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장을 봐다가 가져다주었다. 복남에게 수많은 것들을 사다 주었지만 가끔 삶은 문어도 통째로 사다 주었는데, 그러면 복남은 그걸 받아 들자마자 그 자리에서 다리 몇 개를 썰어서 초고추장을 앞에 놓고 "쭐깃쭐깃" 다 씹어 먹는다. 문어와 초고추장을 앞에 놓고 손녀한테 이러쿵저러쿵 수다를 떨면서 쭐깃쭐깃 먹는다. 그게 복남에게는 최고의 주전부리다. 나머지는 썰어서 요 며칠 먹을 것으로 남겨둔다. 아마도 복남이는 그 문어로 며칠간 배가 든든했을 것이다. 복남이에게 문어 몇십 마리로 갚을 수도 없이 잔뜩 얻어먹고 이만큼 자란 손녀는 그래 문어라도, 멍게라도, 먹을 거라도 잔뜩 사다 줬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하여 복남의 기억 속에도 이것저것 씹으며 재잘거리는, 평범하지만 행복했던 시간이 꽤나 많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