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작을 잘한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니 반이 공짜로 들어오는 것 같아, 난 시작을 좋아한다. 그런데 나의 문제는 시작하고 끝을 내지 못하는 것에 있었다. 운동도 시작은 쉽게 하는데, 제대로 하는 운동 하나 없고, 책도 끝까지 읽는 일은 거의 없다. 많은 부분에서, 이런 식으로 살아왔다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 이런 나를 좀 바꿔 보고 싶었다. 이제 ‘끝을 보는 일’에 도전을 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나의 시작이며 도전은 ‘끝을 내는 일’이 되었다. ‘끝을 한 번 보는 일’로 난 책 한 권 출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책 한 권을 쓰기로 마음먹은 배경.
2017년 여름 퇴사를 했다. 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내 몸은 매일 일어나 출퇴근에 익숙해 있었는데, 매일, 꼭 해야 할 일은 없어졌다. 시간을 내 마음대로 다 쓸 수 있는 자유, 이 자유를 황홀하게 누릴 수 있는 건,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24시간을 내 맘대로 한다는 건, 할 일과, 만날 사람을 모두 내가 선택해야 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매일 안 만나도 되니 즐거웠지만, 그렇다고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매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시간이 가니 슬금슬금 외로움이 느껴지고, 자유의 24시간이 부담스러워졌다. 일정으로 꽉 차 있던 구글 칼 린더는 텅 비어 있었고, 이 빈칸을 보니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빈 틈을 타고 분주함에 가려 있던 외로움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내 안에 깊숙이 있던 외로움이 ‘나 여기 있었다’며 나를 반겼다. 반갑지 않은 손님에 당황스러웠다.
이 외로움과 친하게 지내지 않는 한, 나의 자유는 지옥이 될 것은 뻔했다. 곰이 사람이 되기 위해 100일을 보냈다는, 동굴의 시간, 말로만 듣던 이 시간이 내게 필요했다. 100일이 될지,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 시간을 견뎌야 진정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질 것이었다. 난 동굴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나를 단련시키기로 했다. 그리고 이 훈련의 성과물로 ‘책 한 권을 써 보기로 정했다. 한국, 뉴질랜드, 캐나다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얻은 지혜를 후배 엄마들에게 전해주는 책을 쓰기로 했다. 남이 시킨 일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준 일이었다. 해외에서 아이를 키웠기에 더 잘 보이는 한국 교육의 문제에서, 엄마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생각을 전해주고 싶었던,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꿈을 실현해 보기로 했다.
시작했다고 끝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강제성을 두기로. 벌금과 상금의 차이
시작은 이렇게 참 멋졌다. 동굴 시간의 ‘결과물’까지 정하고 야심 차게 시작을 했지만, 말 그대로 '반' 뿐이었다. 뜻대로 글이 써지지 않았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해도, 무엇을 끝내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나였다. 시험공부한답시고 책상에 앉아서는 딴짓하는 학생의 꼴이 바로 내 모습이었다. 왜 글을 쓰려면, 다른 잡다한 일이 하고 싶어 지는지……이런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94년 생 아들이 내게 용기를 주며 제안 하나를 했다.
“엄마, 엄마의 교육 철학이 무엇이었는지 글을 쓰면서 찾아보세요. 육아로 힘들어하는 젊은 엄마들에게 도움을 줄 책을 한 권 내 보세요. 너무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일단 한 권을 끝내세요. 다음에 더 잘 쓰면 되잖아요. 혼자 맘 먹고 되는 일이 아니니, 내기를 하면 어때요? 지금부터 1년 후, 2019년 4월까지 출판 계약을 하면 제가 상금으로 120만 원을 드릴게요. 못하시면 엄만 벌금으로 이 돈을 주시고요”
난 내가 하고자 한 일을 끝낼 수 있는 데다, 상금도 받을 수 있는 제안이라 흔쾌히 응했다.
상금 받는 대신 벌금은 내다.
매일 도서관에 출근하다시피 하며, 글을 써 보았다. 책을 위한 글을 쓰다 보니, 전에는 몰랐던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글 쓰기에 비하면, 책 읽기는 참 쉽다는 것. 그래서 어느 날은 책만 읽고 오기도 했다. 독서 욕구를 이렇게 느껴 본 적은 처음이었다. 출판을 위한 글쓰기는 읽는 일에 비해 훨씬 어렵고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책을 낸 모든 사람이 존경스러웠다. 내용과 관계없이.
일 년에 여러 권 책을 쓰는 사람도 있으니, 1년 동안 이 일에만 몰두하면 책 한 권을 출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에너지를 모아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집중을 방해하는 건, 나 자신이었다.
‘이런 글이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남들 다 하는 뻔한 이야기를 왜 또 하고 있지?’
‘심리학자, 교육학자 등 대단한 사람들의 책도 안 읽는 판에 누가 내 글까지 읽을까?’
‘너나 나나 책 출판하는 게 유행인데, 나도 이 유행 때문에 해 보고 싶은 거 아니야?
’‘종이가 아깝지 않아? 아무도 안 읽는 책 창고에 쌓아 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는데……’
온갖 ‘쓰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머릿속에서 쏟아졌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꼭 써야 하는 이유’의 목소리도 컸다. 아들과의 120만 원 내기. 약속을 못 지키면 벌금도 아깝겠지만, 시시한 엄마, 자랑스럽지 못한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 아들의 응원 덕에 ‘엄마가 책을 내게 되었다는’ 그런 자부심까지 안겨주고 싶었다. 엄마의 망상과 허영심은 자제가 안 되는 법, 나도 책을 내서 좋고, 아들도 책을 내게 한 원동력이 되어 좋고, 안 쓸 이유가 없었다.
일단 시작이 반이라고 하니, 써 놓은 글로 목차를 만들어 출판사 문을 두드렸다. 출판사에서 온 회답은, (많은 이들이 만났을 법한), 출판사의 방향과 다르니 다른 출판사를 두드려 보라는 내용이었다. 시간이 다급해져, 아는 출판사 사장님에게 목차를 보내고 조언을 부탁했다. 그분과 길게 통화하면서 들은 말은,
“자녀교육 관련 책은 시장에서 살아남기가 힘들어요. 각자의 가정 상황이 달라서 잘못 썼다가는 욕먹기 쉬운 분야예요. 게다가 선생님 글은, 선생님으로의 경험인지, 캐나다에서 자녀를 키운 엄마의 경험 인지도 모르겠고, 에세이도 아니고, 정보글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네요.”
솔직하게 평을 해 준 것이 고마웠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그게 바로 내 스타일이야!. 꼭 어느 한 장르에 속해야 해? 요즘이 융합의 시대 아니야? 정보도 주고 선생님, 엄마, 한국 교육, 캐나다 교육, 이거 다 섞어서 후배 엄마들에게 도움이 될 것들을 전하면 안 된다는 법이 어디 있어?’
욱하는 그 무엇이 올라왔다. 오기가 생겨 더 열심히 썼다.
그런데 이런 오기가 오래가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니, 출판사 사장의 조언이 슬금슬금 내 머리를 지배했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이 쓸모없게 느껴지는 순간마다 부채질을 해댔다. 꼭지 수를 늘리며 글을 썼지만, 필요 없는 글이라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밥을 넘기듯, 그냥 써 내려갔다. 이러다 보니 4월이 되었고, 출판사와 계약을 끝내지 못한 난, 벌금 120만 원을 아들에게 보냈다.
“엄만, 정말 이 돈을 네게 주고 싶지 않았어. 돈도 아깝지만, 엄마 체면이 이게 뭐냐? 그래도 약속이니 이 돈 받아.”
아들 왈,
“엄마, 전 정말로 이 돈을 받고 싶지 않았어요. 공돈이 생겼는데도 기쁘지 않네요. 그래도 내기는 내기니까 이 돈 잘 쓸게요.”
돈을 좀 밝히는(?) 아들이 공돈이 기쁘지 않다니, 누구도 기쁘게 해 주지 못한 120만 원이, 월급도 없어 빈약한 통장을 더 썰렁하게 했다.
벌금은 냈지만, 홀가분한 마음으로 포기하니 편한 마음이었다.
120만 원이 아깝고 부끄럽긴 했지만, 일단 해방감에 기분이 좋았다. 왜 내가 만든 굴레에 얽혀 스스로를 괴롭혔나? 이제 난 하고 싶은 일하며, 책 같은 건 잊어버려야지, 하며 한 동안 강의하는 일로 분주하게 보냈다. (책을 읽으며 보낸 시간이 허송세월은 아니었는지, 난 내가 원하는 강의를 할 수 있었다.) 그리 바쁜 강사도 아니어서, 글을 쓸 시간은 충분했는데 마음은 이미 떠나 있었다.
다행히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겨 블로그를 시작했다.
2020년 새해 다짐을 해 보려 하니, ‘시작만 하고 끝을 못낸 책 한권’과 ‘ 지금까지 살면서 끝을 내지 못했던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런 식이면, 그냥 끝을 못내는 사람으로 나를 인정하고 살게 될 것 같았다. 패턴의 고리를 끊고 싶었다. 그리고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으로 책 쓰기 준비를 다시 시작했다. 남을 의식하고 글을 쓰니 좀 더 다듬게 되고, 가끔씩 조회수가 늘어나면, 다시 쓸 힘이 생기고, 어쩌다 댓글이라도 만나면 희망을 만나는 듯 용기가 났다. 그리고 4월까지 50여 개의 글을 올렸다.
‘브런치 작가’가 되다.
무엇을 꾸준히 하다 보면, 의외의 기회를 만나는 모양이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브런치를 하면 좋을 이유’를 보게 되었다. 브런치는, 나처럼 책을 써 보려는 사람에게 딱 맞는 곳이었다. 시작을 잘하는 나답게,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고, 이틀 후, 합격 통지를 받았다. 사막에서 물을 만난 느낌이었다.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을 주니, 작가답게 써서 할 것 같아, 블로그의 글을 성의껏 다듬어 2편 올렸다. 생애 처음,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우연히 통계가 있어, 눌러보니 3시간 전에 올린 글 “엄마가 표정관리를 하면 좋은 이유”조회수가 300이 넘어 있었다. 네이버 블로그에서는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세 자릿수. ‘이게 무슨 일이지?’ 자기 전에 다시 확인해 보니 5,000이 넘었다. 다음 날은 15,000, 그 다음 날은 25,000을 넘더니, 사흘 째는 더 이상 요동치지 않고 두 자리 숫자로 차분해졌다.
25,000이 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두 글을 올렸는데, 다른 하나는 여전히 두 자릿수. 두 글은, 내용이나 질적인 차이가 별로 없는데, 하나는 25000이 넘고, 하나는 그렇지 못하니 이건 또 뭐지? 알 길이 없었다. 어쨌건, 조회수가 오를 때가 기회인 것 같아, 블로그 글을 7편 다듬어 올렸다. 제목을 수정을 해 보며 올렸지만, 25,000 같은 조회수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조회수라는 '숫자'로 마음이 요동쳐 본 이 느낌을 아들에게도 알려 주었다. 아들에게 벌금 120만 원을 준 지 정확히 1년이 지난 시간, 포기하지 않으니 이런 일도 생긴다며 마치 책 출판을 끝낸 기분으로 조회수 이야기를 즐겁게 해줬다.
“사실, 엄마 25000 조회수를 받고 3일 동안 기분이 정말 좋았어. 인기 유튜버들이 어떤 기분인지는 좀 알겠더라. 그런데, 4일부터는 이 즐거움이 싹 가시는 거 있지? 300 같은 숫자도 하나도 즐겁지 않더라고. 처음에는 이 숫자에 신이나더니만. 숫자에 의미를 둘 필요는 없는 것 같아. 그런데, 이 숫자 덕에 말이야, 더 열심히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 앞으로 더 열심히 해 보려고.”
아들의 격려는 이런 식이었다.
“엄마, 조회수 25,000이 의미 없는 게 아니에요. 엄마가, 그 조회수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된 그 사실이 의미가 있는 거예요. 책도 내 보세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읽을지, 누구에게 도움이 될지는 아무도 몰라요. 일단 책을 내 본 후에 알게 되는 게 있잖아요. 쓸모없는 책을 냈다 해도, 낸 것과 안 낸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예요. 그러니 일 단 책을 끝내 보세요.”
내가 늘 하던 식의 말을, 아들에게서 들었다. 난 조회수 25,000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로 했다. 내게 '시작한 일을 끝내 보라는 즐거운 신호'라는 의미를.
즐거운 상상을 해 본다. 난 브런치에 올린 첫 글의 25.000조회수가 나의 글은 읽을 만한 것이니 책으로 내 보라는 신호를 보내 준 덕에 끝까지 쓸 수 있었다고 말하는 상상을. 나의 출판 기념일이 생긴다면 말이다.
시작이 반인 것이 맞다. 시작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말도 맞다. 그런데 시작을 한다고 다 끝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끝을 내기 위해서는 다른 동력이 필요하다. 난 브런치를 시작해서, 내 책의 반까지 왔다. 나머지 반을 끝낼 힘도 난 브런치에서 얻을 것이라 맘을 먹었다.
난 ‘책 한 권 끝내기’ 도전 중에 있다. 이 끝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난 저 깊숙한 곳에 있는 나를 만났다. 외로움을 안다는 건 외로움 깊숙한 곳에서 만난 또 하나의 나를 아는 것이었다. 난 글을 쓰면서, 글을 쓰는 사람들, 자신의 외로움과 함께 놀며 글로 표현한 사람들을, 예전과 다른 시선, 존경의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브런치에 글을 올려 나누는 사람들은, 위안이 필요한 이들에게 외로움과 친해 보라고 따뜻하게 손을 흔들어 주는 이들이었다. 브런치라는 공간이 있어 이런 아름다운 이들의 부류에 끼게 된 것이 기쁘고 뿌듯하다. 이 공간이 있어, 내게 ‘끝을 내는 일’이 곧 올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