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에게서 배울 점 하나

"내가 다 알아서 할게요"가 반갑지 않은 이유

5월, ‘신록 예찬’이 입에서 저절로 나옵니다. 신록 같은 '어린아이'에게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가정의 달입니다. 푸르고 싱그러운 ‘어린아이’ 시절이 짧은 건, 나무나 사람이나 같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더 오래 잡아 두고 싶나 봅니다. 어린이 날이라며 법석을 떨며 동물원이며 유원지를 가던 시절도 돌이켜 보니 아주 짧았습니다. 내가 바라던, 안 바라던, 어느새 두 아이는 성인이 되어 독립을 했습니다.




언제부터 ‘어린아이’ 티를 벗고, 독립의 기미를 보였나 생각해 보니, 이런 말을 하면서 였던 것 같습니다.


“엄마,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사춘기 즈음부터 이 말이 시작되더니, 어느 날은 입에 달고 다녔습니다. 아이가 이제 다 알아서 한다고 하니, 두 손으로 환영할 일일 수도 있을 텐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실제로 다 알아서 해 낼 수 있다 하더라도 엄마인 내 마음이 즐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 이 말이 듣기 싫고 마음이 불편한지 그 정확한 이유를 처음에는 찾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가정을 해 보았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아내도 남편에게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아이들은 부모에게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부모는 아이에게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이제 좀 명확하게 보였습니다. 이건 가족이 하는 말이 아니라, 아무 관계가 없는 남들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주도적으로 사는 것’과 ‘다 내가 알아서 한다는 것’은 달랐습니다. 이 말은 ‘간섭하지 말라는 관계 단절의 선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주도적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자기가 꾸려 간다는 것이고, '혼자 알아서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조언 없이 혼자서 해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가족의 도움이나 조언 없이 살겠다는 말을 용납하는 건, 제 기준으로는 가족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전, 가족끼리는 “내가 다 알아서 할게요”라는 말은 쓰지 말아야 한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나의 일방적 선언으로 우리 집에서는 허용이 안 되는 말이 되었습니다. 가족은 ‘내가 잘 되기를 가장 바라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조언과 도움을 구하고, 중요한 결정 전에 상의를 하는 사람입니다. 각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좀 더 잘 해결해 보겠다며 함께 궁리를 하는 일, 이게 사람 사는 일이고, 이 일을 하는 곳이 가정이었습니다. 제 생각이 그랬습니다.


이것은 사사건건 부모에게 물어보고, 부모의 인형, 로봇처럼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어떤 말을 해 줄지를 믿고 물어보며, 이 과정에서 가족 관계가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저의 이런 생각을 지지해 주는 성경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1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마태복음 18장 1절-4절)


At that time the disciples came to Jesus, saying, “Who is the greatest in the kingdom of heaven?” 2 And calling to him a child, he put him in the midst of them 3 and said, “Truly, I say to you, unless you turn and become like children, you will never enter the kingdom of heaven. 4 Whoever humbles himself like this child is the greatest in the kingdom of heaven. (Matthew 18: 1-4)


예수님은 성인이 된 제자들에게, '어린아이'같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몸이 어른만큼 컸어도, 어린아이가 가진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마음'은 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겸손은 하나님이, 나보다 더 나은 분이라는 걸 인정하는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품는 마음, 부모는 나를 사랑하고, 내가 잘 되기를 바라며, 나 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마음을, 평생 계속 지니고 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알아서 할게요”의 태도는, ‘이제 난 부모보다 더 잘할 수 있어요.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어요. 간섭 같은 건 이제 필요하지 않아요.’라는 생각, 교만에서 생긴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제가 혼자 알아서 하기엔 부족함이 많아요.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 높은 곳에서 보고 계시니 더 잘 보이시잖아요. 어떤 말로 조언을 해 주시겠어요?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잖아요.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렇게 묻고 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자가 가장 큰 자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어린아이 같은 겸손의 마음, 자신을 낮추는 마음으로 가족이 서로를 대했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도 자식에게


“내가 알아서 할게”


대신에,


“넌 어떻게 생각해? 내게 도움이 될 말을 해 준다면 어떤 말을 해 줄래?”


서로가 이런 말을 하고 사는 가족. 전 이런 가족을 꿈꾸고 있습니다. 다행히 경제적으로도 완전히 독립한 두 아이들이 아직도 금기가 된 말, 교만에서 나온, "내가 알아서 할게요"를 쓰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제 자신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이 말을 마구 남발 하고 살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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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린아이 같은 자기를 낮추는 마음’ 이 글자를 방에 붙여 놓았습니다. 깨달음이 있어도, 자꾸 잊어버리는 걸 막기 위함입니다. 이제 오며 가며 만나는 어린아이를 잘 관찰해 보아야겠습니다. 내가 배울 것이 있는지도 함께 찾아봐야겠습니다. 신록의 계절, 어린이날, 어버이 날이 있는 5월에 어린아이에게서 배우는 '겸손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니,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고, 겸손을 나누는 가족이 있음에 더욱 감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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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는 '역량에 집중하는 엄마'의 자녀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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