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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박물관에서 발견한 코칭GROW의 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20번 넘게 가고 깨달음

박물관, 의무인가 즐거움인가?

많은 부모가 아이에게 '좋은 경험'을 만들어주려 박물관에 갑니다.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전시를 훑어보려다 지치기만 할 뿐, 정작 깊이 느끼거나 배우지 못한 채 돌아올 때가 많습니다.

저 역시 60년 넘는 인생 동안 국내외 유명 박물관을 수없이 다녔지만, 진심으로 즐긴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첫 해외여행에서 루브르 박물관에 주어진 시간은 단 2시간. 모나리자 앞 인파에 휩쓸리고, 끝없이 이어진 그림들 속을 허겁지겁 걸었습니다. 그날 제 머릿속에 가장 또렷하게 남은 건 작품이 아니라 박물관 밖의 유리 피라미드였습니다.

그동안 저는 입장료가 아까워 '끝까지 다 봐야 한다'는 생각과 '유명하니 꼭 봐야 한다'는 의무감에 묶여 있었습니다. 박물관은 늘 “빨리, 많이”의 공간이었지, 감동과 배움의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의 깨달음

그러다 뉴욕에 사는 딸 덕에 메트로폴리탄 박물관(Metropolitan Museum of Art)을 수없이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예전 습관대로 '전체 훑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2번, 3번... 20번 이상 반복해서 가다 보니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처음엔 스쳐 지나갔던 그림이 두 번째, 세 번째 방문에서는 마치 저를 부르는 듯 눈에 들어왔습니다. 유명하지 않은 작품이 오히려 제 마음을 더 깊이 울렸고, 전시물 배치나 조명의 의도 같은 '공간 설계'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은 "오늘은 이집트관만 보자!" 하고 한 구역만 깊이 보았습니다. 또 다른 날은 조각상 뒤편으로 돌아갔다가, 앞모습보다 더 감동적인 뒷모습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박물관은 한 번에 다 보려는 곳이 아니라, 여러 번, 다른 시선으로 볼수록 재미있다."


코칭의 GROW 프로세스를 박물관에 적용하다

저는 코칭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물관 관람에도 코칭의 GROW 프로세스적용하면 어떨까?"

G (Goal, 목표): 오늘 박물관에서 무엇을 보고 싶은가?

R (Reality, 현실): 지금 우리 상황은 어떤가? (시간, 에너지, 관심사 등)

O (Options, 선택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작품 선정, 사전 공부, 한 구역만 보기)

W (Will, 실행·정리): 관람 후 무엇을 얻었는지 정리하고,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인가?

예를 들어, 저는 '작품 배치와 조명의 효과'를 오늘의 목표로 세웠습니다. 예전엔 그런 걸 볼 여유가 없었지만, 이제는 한 작품 앞에 오래 머물며 “왜 이 위치일까? 이 조명은 어떤 느낌을 줄까?” 하고 생각합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오늘 배운 점을 두 문장으로 기록합니다.

이 과정을 거치자 박물관은 '의무 코스'에서 '삶의 배움터'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하는 GROW 대화법

이 방식은 부모가 아이와 함께 박물관에 갈 때 특히 효과적입니다. 딱딱한 이론이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처럼 시도해 보세요.

목표 세우기: “오늘은 뭘 보고 싶어? 왜 그게 보고 싶은데?”

현실 점검: “우리에게 1시간밖에 없는데, 그럼 어디부터 볼까?”

선택지 탐색: “코끼리 상아 조각상 먼저 보고, 그 옆에 미라 보러 가는 건 어때?”

정리하기: “오늘 봤던 것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뭐야?”


이렇게 하면 박물관은 아이에게 '발견과 배움의 놀이터'가 됩니다. 짧은 시간에도 깊이 보고, 오래 기억하며,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습니다.


책 읽기와 일상에도 똑같이 통한다

놀랍게도 이 방식은 책 읽기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책을 읽기 전 ‘왜 읽는지, 무엇을 얻고 싶은지, 어떻게 읽을지’를 정하고, 읽은 후 ‘얻은 한 가지’를 기록하면, 한 권의 책이 주는 배움과 기쁨이 몇 배로 커집니다. 마트에서 장보기를 계획하거나 주말 나들이를 준비할 때도 이 GROW 프로세스는 아이와 함께 즐겁게 목표를 세우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AI 시대, 부모의 진짜 경쟁력

AI 시대에 필요한 건 단순히 많은 지식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싶은지, 그것을 어떻게 알아낼지를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이 있으면,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도 방향을 잃지 않고, 스스로의 성장 경로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부모가 먼저 GROW 프로세스를 생활 속에 실천하면, 아이는 지식의 소비자가 아니라 창조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 힘은 학교도, 학원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아이 인생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 됩니다.

자, 당신의 아이는 요즘 핫한 우리나라의 국립 중앙 박물관을 어떻게 방문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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