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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PARK Sep 24. 2019

나는 이 나라에서 행복한가?

행복의 조건

한국은 정말 헬조선인가

몇 년전, 한창 한국에는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유행했었다. 요즘은 이 단어가 유행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빈부격차, 긴 시간 노동, 무한 경쟁의 분위기, 청년 실업, 미세먼지 등의 문제로 해외로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 


한국은 정말 '헬조선'일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헬'의 ㅎ자도 못 내민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헬'을 찾으려면 전쟁으로 나라가 완전히 망가져서 국민들이 필사적으로 나라를 탈출하는 시리아, 국가 경제가 무너져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를 보면 된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 있는 나라를 제외하더라도, 생각보다 세계 지도에서 '살기 좋은 나라'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극심한 빈부 격차 및 부정 부패, 불안한 치안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 다수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살기 좋은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최우선적으로, '생존'이 보장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행복을 위한 생존의 조건은 이와 같다.

1. 경제적 여유 (비상 상태를 위해서 저축할 수 있는 여유)

2. 안정된 정치 (쿠데타, 내전, 극심한 부정부패 x)

3. 사회 보장 제도 (교육, 의료 보험 등등) 

4. 치안

5. 살아남을 수 있는 기후/자연 환경


'생존'을 고려했을 때, 놀랍게도 한국은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선진국' 조차도 이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 나라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 미국은 부실한 사회 보장 제도와 치안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북유럽은 혹독한 겨울을 가지고 있다. 


물론, 사람은 생존만을 원하지 않는다. 생존 문제가 해결되면 그 이상의 것을 바라기 마련이고, 이 또한 중요하다. 우리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서 사는 거니까. 그리고 이 행복에 대한 문제로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는 것을 고려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 개인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

한국은 집단주의, 서열주의 문화가 강하게 발달한 곳이다. 사람들은 주로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집단 (학교, 직장)과 그에 따른 사회적인 신분 (학생, 직장인, 주부)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한 살이라도 나이 차이가 나면, 쓰는 언어가 달라진다. 학교, 군대, 직장은 개인의 일탈을 경계하고, 집단에 순응하도록 훈련시킨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개인의 행복은 억압되어 왔다. 


하지만 집단주의는 한국의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의 압축적인 성장을 가능케하였다. 자원도 없고, 식민지도 없고, 국민들을 통합시킬 국교도 없었던 한국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집단주의였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욕망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저녁 없는 삶을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더 이상 남들의 눈치를 보고 싶지 않다. 더 이상 무한 경쟁 체제에 머물고 싶지 않다. 남들 가는 인생이 아닌, 나만의 인생을 살고 싶어한다.




유토피아는 존재하는가

많은 사람은 해외 이주를 꿈꾼다. 하지만 해외로 간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없던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우선 언어와 문화가 다름으로써 겪는 어려움이 있다. 특히 한국 대중문화, 밤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은 더더욱 그렇다. 한국에 두고온 가족과 친구가 그리워 향수병과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 


그리고 아무리 겉으로는 평등을 외쳐도, 백인들이 주류인 나라에서는 동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이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캣콜링 (여성 인권이 높은 나라여도 동양인 여성들의 지위는 백인 여성과는 다르다), 차별이 일상이 되어버릴 때도 있다. 


또한, 한국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다른 나라에서도 존재한다. 세계 어느 나라던 대도시의 집값은 비싸다. 일찍히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와 함께 사는 선진국 청년의 숫자도 늘어나고 있다. 고령화, 자동화에 따른 일자리 축소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아무리 '좋은 나라'에 산다하더라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하다. 꼰대와 또라이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나에게 더 좋은 곳이 있다면 

입시주의 교육, 잊지 못할 상처를 준 가족을 피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생각으로 한국을 떠났었다. 이주에 실패하고 다시 돌아온 한국은 '살만했다.' 서울도 동네따라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을 배웠고, 한국 안에서도 둘러볼 곳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고, 좋은 사람들도 만났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떠돌이가 되었다. 한국으로 가는게 제일 쉽기는 하겠지만, 그닥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더 많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욕심일까. 한국의 집단주의와 경쟁에 호대게 대인 기억 때문일까. 


극 개인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더 편하게 느껴지는 곳이 있다면 그 곳이 나에게 유토피아가 아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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