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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PARK Jan 28. 2020

[일본 - 토쿠시마] 농장에서의 한 달

도시 밖의 삶을 상상해보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뼛속까지 '도시 사람'이다. 흔히 말하는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도 나에게는 없었다. 내 친척들도 모두 도시에 살았으니까. 


처음 농장을 경험한 것은 다름아닌 콜롬비아였다. 보고타에서 1시간 떨어진 Suesca라는 곳에서, 구글 맵에 잡히지도 않는 농장에서 2주간 있었는데, 8개월 남미 여행에서 제일 좋았던 곳이였다. 그 곳에서 만난 자원봉사자들, 자연, 동물들, 멋진 호스트 (농사도 짓고 일도 하는 저널리스트 부부)의 기억은 3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어쩌다보니 오사카 주변의 농장에 머물게 되었다. 여기서는, 이렇게 살고 있다. 


농장 특징 : 일본의 농업 철학가 후쿠오카 마사노부가 창시한 자연농법을 따름. 비료, 농약을 쓰지 않고, 벌레나 잡초도 농사에 이용한다고 한다.

기르는 작물 : 브로콜리, 토마토, 양파, 배추, 가지 등등


하루 일과 

오전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일한다. 도중에 30분 티 브레이크가 있다. 그 이후로는 완전히 자유. 

올빼미 형 인간이었던 내가 아침형 인간으로 변했다. 보통 새벽 2시에 자던 내가 여기서는 밤 10시가 되면 하품을 하기 시작한다.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창문에 빛이 들어오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보통 아침 7시에 일어난다.


같이 사는 사람들

자원봉사자들은 보통 유럽, 미국에서 왔지만 아시아계도 가끔 있다. (싱가포르, 홍콩)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청년들이고, 3달 이상 여행하는 장기 여행자들이다. 몇몇은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가지고 있다. 다들 나처럼 방황하는 영혼들이다. 퇴사 후 여행은 한국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더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그렇지만 한국에 비해서는 크게 나이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조금 달랐다. 패자부활전이 있는 국가에서 와서 그런가.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알바해서 여행온 18살 독일 친구들이 참 부러웠다. 취업, 대학 진학을 바로 하기보다는 천천히 시간을 두는 것이 부러웠다. 나도 대학 가기 전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 하려고 했었는데, 그 때 갔다면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 


모닥불을 피우고 음악을 듣고 술을 마시면 그 것이 금요일.


하는 일 

채소 수확, 포장, 단순 노동, 잡초 뽑기, 요리 등등... 

마음을 다스리는데에는 단순 노동이 도움이 되었다.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멍하니 잡초를 뽑거나 흙을 만지작 거리는 것이 힐링이더라고. 흙을 파내고 운반하는 단순 노동도 있지만, 매일 하다보면 운동처럼 느껴지게 된다. 

8명-10명의 자원봉사자들의 점심이나 저녁을 요리하기도 하는데, 나 혼자를 위한 요리보다 더 만족스럽다. 


제일 뿌듯한 일은 브로콜리 수확


쉬는 날에 하는 일

주변에 볼거리는 딱히 없다. 슈퍼마켓, 편의점 정도고 카페나 상점도 거의 없는 시골이다. 심심하면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쭉 돌거나 주변 절에 간다. 이 곳을 나가고 싶으면 히치하이킹을 해서 주변 동네에 간다. 

주로 내 일을 하거나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시간을 보낸다. 함께 요리를 하고, 수다를 떨고,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면 하루가 빠르게 지나있다.

무엇보다도 속도 좋은 와이파이가 있으니,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여기와서 요리에 취미가 생겼다 





나의 미래 - 자연, 커뮤니티, 자급자족

이 곳에서의 생활이 만족스러운 나머지 귀농까지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농촌 체험하러 와서 이렇게 유유자적 살고 있는 것이지, 생존을 건다면 최소 몇 년 동안에는 치열하게 이 곳에 집중해야 할 것 같다. 아직 나는 그럴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여유를 일정 찾은 40대가 되면 땅을 사고 농장을 운영하고 자원봉사자들도 받아들이고 싶다. 


현재 대도시 생활에 질려 있는 것은 사실이며 좀 더 여유가 있는 곳으로 이주하고 싶다. 나는 자연이 좋고, 내 공간을 가지는 것이 좋다. 외식, 카페, 밤문화, 문화 생활은 희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시골까지는 아니지만 규모가 좀 더 작은 도시가 더 좋다. 


단지 나 혼자는 그렇게 못하고, 이렇게 커뮤니티나 공동체로 살면 좋겠다. 농사일도, 집안일도, 요리도, 나 혼자를 위한 노동보다는 단체로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친구보다는, 잠옷 차림으로 같이 커피 마시는 하우스메이트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일정 혼자 있는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친한 사람들과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결혼을 하던 안하던, 나는 나만의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 나와 마음이 통하고 서로 일상을 공유하고, 인생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그리고 무엇을 소비하기 보다는 생산하는 방법을 더 배우고 싶다. 직접 내 손으로 무엇을 만들고 고치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굳이 돈을 쓰지 않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내가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 당장은 도시에 산다 하더라도, 최소한 텃밭이라도 가져서 내가 먹을 음식은 일정 내가 해결해보고 싶다. 생존하기 위해서, 소비하기 위해서, 스트레스 받으면서 노동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 당장 악순환을 끊을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 일상 생활에서 연습하고자 한다. 



호스트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이 곳을 일본의 '외국인 마을'로 만들고, 돈이나 음식 걱정 없이 누구나 와서 살 수 있는 곳을 만들려고 한다. 다들 하루에 한 시간 노동하면, 생존할 수 있는 음식과 집이 있는 그런 곳으로. 


허무맹랑한 꿈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기본 소득제가 논의되는 이 시점, 단순한 이상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농사라는 것은 변수가 많기는 하지만, 지금 하루 4시간 반 노동하면 음식과 집이 나오는데, 10년이 지나면 얼마나 축소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삶은 좋은 대학 졸업 - 좋은 직장 - 집 사기 - 은퇴 였는데

이 공식을 벗어난 다른 삶에 대해서도 배우고 있다. 설사 내가 사는 삶이 이 공식이라지도,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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