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돌아다니는 것도 지겨워졌고, 여행도 예전처럼 즐겁지 않다. 계속 친구를 만들어서 헤어지는 것도 지쳤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귀찮다. 역시 예상한 것처럼, 나이가 들어가니, 한 곳에 정착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나의 다음 정착지는 어디가 될 것인가?
하지만 이는 단순히 내가 거주하는 곳이 아닌, 하는 일이나 인생의 태도에서의 정착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제는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를 좀 깨달았으니, 좀 더 나의 가치관이나 철학에 맞는 삶의 방식에 '정착'하고 싶다. 그냥 화려한 옷을 입기보다는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어야 멋이 나는 것처럼, 나다운 방식으로 인생을 살고 싶다.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을 보아, 나는 질문하고, 깊은 생각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단순히 어디 틀어박혀서 내 생각에만 몰두하는 철학자 유형은 아니다. 난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접하는 것을 즐긴다. 그렇지만, 겁도 많고 특히 불안이 높아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결국 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용기가 있지만, 이 용기를 내기에는 상당한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난 개인주의자고, 타인의 반응에 크게 신경쓰지 않지만 그래도 자라온 환경 때문인지 과시 및 인정 욕구가 있다. 쉽게 타인에 대한 질투 및 동경의 감정을 느끼고, 우울감과 자기 혐오가 심화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은 일주일에 한번만!)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지만,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교류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즐기기보다는, 그들과 교류하게 됨으로써 무엇을 새로이 깨닫고 배우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딱히 소속감이나 공동체 의식을 중요시하지는 않지만, 일정 이상의 연대감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쩌다 보니 초기 크립토, AI, 외신 언론계에서 일했지만, 단순 호기심으로 발만 담구었기 때문에 무언가를 해내지는 못했다. 계속 업계에 있었다면 커리어가 풀렸겠지만, 지금이야 할 말이 없다. 일하기보다는 노는 것을 더 좋아해서, 많이 빈둥빈둥 놀았고, 배낭여행 및 봉사활동으로 여러나라들을 돌아다녔다. 미니멀리스트로, 적은 돈으로 최대한 즐겁게 살아왔다. 딱히 큰 돈을 쓰지 않아도, 인생을 즐겁게 사는 방법은 무궁무진했기에. 소득 없는 날이 많았음에도, 내가 버틸 수 있었던 원천의 힘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앞으로의 삶의 방식은 좀 달라질 것 같다. 계속 미루어오던 성취 및 성장에 이제는 좀 더 집중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빡세게 나를 갈아넣고 싶지는 않지만, 최대한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고 집중해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 무조건 싼 것만 사는 것이 아니라, 비싼 것도 사보고, 좀 더 다양한 선택을 해보고 싶다. 계획을 세우고, 루틴을 지키고, 하기 싫어도 하는 참을성을 기르겠다. 비관적인 나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고쳐먹어서 그래도 지금보다는 더 나아질꺼라는 낙천성을 기르도록 하겠다. 혼자서 끙끙거리지 말고, 필요할 때는 과감하게 도움을 요청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연습을 더 하고 싶다.
이렇게 살다보면, 다시 한량이 되고 싶기도 하겠지. 그렇지만 그 때는 오랫동안 한량이 될 수 있는 기반이 갖추어져 있을 가능성이 더 높으니 그러고 싶으면 그럴 수 있겠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영원히 한량처럼 살고 싶은 욕망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