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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비 분수 상념

'로마의 휴일'과 진주 중앙 로터리 분수

by 로댄힐

1. 로터리


하동 읍에서 악양 면소재지를 지나 내 처소가 있는 산기슭에 도달하면 로터리 3개를 돌아야 한다. 3개 다 아담한 로터리다. 여러 갈래 길이되 교통량이 많지 않은 전국의 도로 지점에 신호등을 철거하고 로터리를 만드는 게 흐름을 더 원활하게 하고 사고율도 낮출 수 있을 거라는 기사를 인터넷 신문에서 봤다. 로터리, 실용성이 기본이면서도 추상성을 띄는 장치다. 핸들을 잡으면 직선으로 가는 게 기본인데, 이게 고정관념인데 로터리는 동선이 곡선으로도 이루어진다는 것을 몸으로 배우게 한다. 완만한 진행과 기다림, 배려도 배우게 한다. 아무튼, 로마의 트레비 분수 견학 소감을 정리하는 중에 로터리를 머리에 떠올렸다.


2. 진주 중앙 로터리 분수


011.png (70년대 초의 진주 중앙 로터리 칼러 분수. 중앙약국의 6층 건물은 그때 진주에서 제일 높은 빌딩)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 사이, 내가 기억하는 진주의 로터리 세 개 그것은 중앙 로터리와 금성 로터리와 봉곡 로터리다. 봉곡 로터리는 내가 발걸음을 자주 하던 곳이 아니어서 그 무렵에 거기 있었는지 잘 모르지만, 중앙 로터리와 금성 로터리는 뚜렷이 기억한다. 중앙 로터리는 말 그대로 진주 중앙에 있었고 금성 로터리는 바로 그 옆에 친구 집이 있어서 자주 지나칠 수밖에 없는 로터리였다.


그때 중앙 로터리의 분수대는 화려했고 환상적이었다. 말하자면 환타스틱 했다. 그 무렵 어느 해에 중앙 로터리 가운데 분수를 설치했다. 그 분수에 관한 이야기를 쓰려고 자료를 찾아서 보니 내 기억과 틀린 부분이 있었다.


나는 그 분수가, 진주 출신의 재일 교포가 기증하였으며 60년대 말에 설치한 것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재일교포가 기증한 건 맞지만 시기는 내 기억이 틀렸었다. 70년대 초에 만들어진 거였다. 그 분수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칼러 분수로서 이 분수 때문에 진주가 분수 도시로의 이미지를 확립하게 되었고, 형형색색 뿜어 올리는 물은 단순한 물장난이 아닌 한편의 예술공연이었다. 별 볼거리가 없던 그 시절, 분수라고 하면 물줄기를 쏘아 올리는 것이 전부였던 그때 남녀노소 모두의 눈길을 끌었던 중앙로터리 분수는 여러 모양으로 변하면서 움직여 인기를 독차지했다. 황홀한 분수의 환상적인 광경을 보러 다른 지역에서 구경 올 정도였다고 했다.


내 기억의 창고에서 분수는 진주 중앙 로터리의 이 분수다. 이 분수를 보기 이전에 분수를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고교생 그때까지의 내 행동반경이 진주, 사천, 삼천포를 벗어나지 못했고 이 지역들엔 분수가 없었으니 중앙 로터리의 이 분수가 내가 본 첫 분수라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지만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분수대는 돌을 다듬어 만든 원형 분수대였다.


3. 로마 트레비 분수

012.JPG (내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던 분수대는 이런 거)

베네치아 광장에서 트라얀 유적지를 밟아 보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을 돌아 트레비 분수로 왔다. 걷는 내내 직면하는 더위와 피로는 여름 여행의 기본 조건으로 받아들였기에 오늘 일정의 마지막 지점까지 비교적 힘차게 걸을 수 있었다. 도착했다. 사람이 많다. 좁은 장소에 많아도 너무너무 많다. 그래서 그랬을까? 그 지점이나 분수 모양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우선, 부산 역이나 서울 역 광장처럼 큰 광장 가운데 있는 줄 알았는데 골목 건물에 붙어 있었고, 분수대가 둥근 석조물인 줄 알았는데 여러 개의 대형 조각물로 되어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분수대는 위의 사진처럼 둥근 수반 같은 거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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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비 분수라고 말할 때 연상되는 영화는 ‘로마의 휴일’이다. 내 뇌리의 그 영화는 70년대 초 진주 중앙 로터리의 분수대와 더불어 있다. 1953년도에 만들어진 이 영화가 한국에서는 1962년도에 개봉되었다고 한다. 외화문제로 직수입이 아니고 5~6년 후에 중고 필름을 구입해야 해서 그렇게 늦게 개봉될 수밖에 없었다는 거.


그런데 왜 내 머리엔 그 영화 제목이 로터리 분수대 곁에 붙어 있을까? 그때 로마의 휴일이라는 영화는 시골 사춘기의 내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교실에서 선생님도 그 영화, 영화 속의 분수대를 말했던 것 같다. 그랬으니까 그 영화를 그때 보지 않았는데도 본 것처럼 영화의 분수가 머릿속에서 그림으로 남아 있었지. 비록 틀리긴 했지만. 영화는 긴 세월이 흐른 후 EBS를 통해 봤고 이번에 또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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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트레비 분수는 고대의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명한 ‘처녀의 샘(Aqua Virgina)’으로,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에게 물을 준 한 처녀의 전설을 분수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분수의 정면 오른쪽 위에 이런 일화를 담은 조각품이 있다고 화는데 붐비는 사람들 틈에서 세세하게 살펴보거나 확인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했다.


돌아와서 확인한 건 트레비 분수의 중앙에 있는 근엄한 모양의 부조물은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이며, 양쪽에 말을 잡고 있는 두 명의 신은 포세이돈의 아들인 트리톤이라는 것, 종종 테베레 강이 범람해서 이곳까지 물에 잠길 때가 많자 바다의 신을 만들어 이를 막고자 하는 뜻에서 설치한 것이라는 것, 분수 왼쪽에 날뛰는 말은 풍랑을 상징하고, 오른쪽의 말은 고요한 물을 상징한다는 것, 양쪽에 있는 4개의 여인 조각상은 4계절을 상징한다는 것 등이다.


1) 로마의 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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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의 사진을 보면 공주인 오드리 헵번은 트레비 분수쪽으로 걸어가고 그레고리 펙은 수박을 들고 몰래 따라간다. 즉 동전을 던지는 장면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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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수를 등지고 서서 동전을 던져 넣으면 다시 로마를 방문할 수 있다고 하는 믿음 혹은 전설이 트레비 분수를 말할 때 병행하여 언급된다. 그리고 영화에서 오드리 헵번이 그렇게 동전을 던졌다고 언급된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보니 영화에서 트레비 분수는 별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오드리 헵번이 걸어서 그냥 지나치는 뒷모습만 나온다. 그 뒤를 그레고리 펙이 수박을 들고 몰래 따라가고. 다시 확인하니 나중에 TV용으로 다시 만든 영화에는 동전을 던지는 장면이 삽입된 모양이다.


2) 달콤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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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트레비 분수는 영화 ‘로마의 휴일’ 때문에 일차적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 때문에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고 한다. 주인공인 아니타 에크버그와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분수에 뛰어드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스웨덴 출신의 할리우드 여배우 아니타 에크버그가 영화 촬영을 위해서 공항에 오게 되고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는 육체파 여배우인 아니타 에크버그의 매력에 빠져 파티장에서 그녀를 데리고 둘이 빠져나가서 이탈리아의 밤거리를 드라이브하며 그녀를 어떻게 해볼 기회를 노린다. 순수하고 사교적인 실비아가 시키는 대로 고양이 우유까지 사 오며 껄떡거릴 기회를 엿보지만 로마의 분수에 도취된 아니타 에크버그는 어느새 마르첼로의 존재조차 잊은 듯하다.


이 영화는 1960년 이탈리아의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로서 함의를 많이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4. 꼴로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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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비 분수를 빠져나와 어디를 향해 골목길을 걸었다. 아이들이 가는 대로 편과 나는 따라갔다. 스페인 광장을 지나 길을 따라가는 것 같았다. 스페인 광장에 머물지는 않았다. 이곳엔 다시 올 모양이다. 그 유명하다는 명품의 거리 콘도티 거리(Via dei Condotti)에 들어 선 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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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또 들어가서 구경하다가 식료품 상점에도 들렸다. 아주 유명하다는 젤라토 점에서 젤라토 즉 아이스크림도 사서는 서서 먹고. 걷고 있는데 앞에 우리나라 목욕탕 굴뚝같은 원주가 아이들이 콜로냐 광장(Piazz Colonna)이라고 일러준다. 나중에 찾아봤더니 AD 176년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의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광장이며 그때의 전쟁 장면이 부조로 세겨져 있다고 했다. 꼭대기에 아우렐리우스 동상이 원래 있었는데 사도 바울의 동상으로 대치되었다고 하고. 알고 나니 씁쓸하다. 원래 동상이 자기 자리에 그대로 있어야 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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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콜로나 광장은 로마 중심부 중의 중심부라고 한다. 트레비 분수와 가까워 늘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고. 포폴로 광장과 베네치아 광장의 중앙에 있으며 여기서 바르베리니와 테르미니로 이어지는 트리토네 거리가 시작된다. 참고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의 저자로서, 엄격한 절제의 철학을 지녔던 스토아학파의 대가로서 학자적 위상을 지닌 인물로도 유명하다. 기둥을 바라보고 보아 오른쪽 건물은 현재 총리와 그의 책임내각이 있는 ‘끼지 건물(Palazzo Chigi)’이라고 한다.


그리고 테베레 강으로 갔다. 가긴 갔는데 어느 지점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큰 플러터너스(?) 나무가 줄 지어 서 있는 곳이었는데 앉을자리가 없어 서서 쉬다가 다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저녁 식사, 아이들은 이탈리아 음식의 진수를 맛보게 하려고 메뉴 선정에 애를 썼다.


로마에 도착하여 밤을 새운 후 첫날 일정은 이렇게 갔다.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에서 많이 걸었다. (2017년 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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