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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 바티카누스(Mons Vaticanus),

말하자면 바티칸 언덕으로

by 로댄힐

김혜경이 지은 『일곱 언덕으로 떠나는 로마 이야기』를 또 샀다. 저자는 목차에서 일곱 언덕 각각에게 이런 의미를 붙인다. 첫째 언덕, 팔라티노:로마의 창건 신화가 얽힌 언덕. 둘째 언덕, 카피톨리노:가장 작지만 가장 신성한 언덕. 셋째 언덕, 아벤티노:주류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모이던 언덕. 넷째 언덕, 첼리오:로마의 관문이 된 언덕. 다섯째 언덕, 에스퀼리노:로마의 기(氣)가 모인 언덕. 여섯째 언덕, 비미날레:직공들과 상인들이 모여 살던 언덕. 일곱째 언덕, 퀴리날레:화해와 중재의 언덕.

01 오타비아노역 출구.JPG 오타비아노 지하철 역 출입구

그리고 저자는, 로마를 형성하는 또 하나의 언덕으로서 테베레 강의 서쪽 언덕인 바티칸 언덕을 소개한다.


오늘은 그 언덕, 몬스 바티카누스(Mons Vaticanus), 말하자면 바티칸 언덕으로 가는 날이다. 이 이름은 그리스도교 발생 이전부터 있던 이름인데 그리스도교 총본산으로 자리매김한 이후에도 이름은 그대로 쓰고 있다. 슬로 트레블(Slow Travel)을 꼭 지향하는 건 아니지만, 아이들이 여러 곳을 다니기보다는 한 곳에 머물면서 느린 걸음으로 찬찬히 보는 설계 했는데, 오늘은 그런 구도 속의 로마 두 번째 날로서 “르네상스 예술의 총체를 보여주는 박물관”인 바티칸 박물관과 “한 사람의 굳은 믿음에서 출발한 성당”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머문다. 말하자면 바티칸 언덕으로 간다.

02 오타비아노역 벽화.JPG 오타비아노 지하철 역 벽화

아침 일찍 걸어서 터르미니역으로 갔다. 바티칸으로 가기 위해서는 로마 대중교통의 중심인 테르미니 역에서 메트로 A선을 타고 오타비아노(Ottaviano) 역에서 내려야 한다고 한다. 로마 지하철은 A선과 B선 등 2개의 노선이 있다고 한다. 미 발굴된 고대 유적 때문에 함부로 지하철 공사를 할 수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세 번째 노선인 C선이 공사 중이긴 한데, 착공한 지 무척 오래됐지만 공사 중 고대 유적이 발견되는 통에 공사 속도가 무척 늦다던가, 준공했다던가 그건 모르겠다.

03 가이드 인원점검.JPG 바티칸 박물관 투어 가이드의 사전 설명

우리나라 경복궁의 1.3배 크기인 작은 영토에 1,000여 명의 국민이 사는 주권을 가진 국가, 이탈리아가 전국을 통일하면서 로마에 속할 뻔했으나 교황의 땅을 인정하는 라테란 조약에 따라 독립한 시국(市國) 거기로 가기 위해 오타비아노 역에 내렸다. 벽화가 시선을 끈다. 따뜻한 색감이다. 여기서 우리를 안내할 가이드와 만나 인원 파악을 한 다음 지하철역 계단을 걸어 올리 육지로 나왔다. 동굴에서 육지로.

04 가이드 브리핑.JPG 김혜란 가이드

지하철에서 위로 올라와서는 도로변에 서서 가이드의 안내 설명을 들었다. 가이드는 이탈리아 시티 투어의 김혜란이라는 분이었다. 명함을 보니 ‘이탈리아 관광청 공인 가이드’로 소개되어 있었다. 이 분, 어떻게 열심히 또 재미있게, 알기 쉽게 잘 안내하던지, 여행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이 분한테서 안내받은 사람들의 칭찬 글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홈 페이지 주소는 www. italycitytour.co.kr

05 바티칸 쪽으로 맥도날드 간판.JPG 바티칸을 향하여 고고

한 15분 걸으니, 앞에서 가는 사람들 뒤를 쫄쫄 따라가니 바티칸 성벽이 눈 앞에 나타난다. 중세 성채 이미지 그대로다. 바티칸 성벽, 저 성벽 안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 여섯 개 있다던가.

06 바티칸 시국 모서리.JPG 드디어 바티칸 성벽

저 성은 852년 경에 축조된 거라고. 박물관들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들은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 싸여 있는데 이 성벽은 서기 846년 로마를 침략한 사라센이 성 베드로 대성당과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금은보석 등을 약탈해간 이후에 852년 교황 레오 4세의 명에 의해 축조된 것이라고.

07 박물관 입구.JPG 박물관 입구

박물관 가까이 오니 우리보다 더 일찍 와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보인다. 우리도 새벽같이 출발하여 일찍 도착하느라 했는데 말이다. 그런데 바티칸 박물관 입장에 대해 가이드의 설명을 이미 들었는 지라 저 줄은 현지에서 입장권을 구입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걸 금방 알아차렸다. 입장권을 사전 예매한 우리는 쭉 더 가서, 저 쪽에서 이 쪽을 보고 줄을 서야 한다고, 그리고 곧장 입장하게 된다고 하는 점을 다시 한번 리마인드 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나이가 들었다. 그래서 지시를 잘 따라야 할 때는 눈치껏 잘 따라야 한다. 그래서 단순한 사실도 그것이 지시어일 때는 가끔 복창이나 복기(復記) 해 봐야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저 사람들 뒤에 서지 말고 곧장 나아가 저쪽에서 이쪽으로 새 줄을 만들어야 한다. 마음이 여유로웠다. 왜 지체하지 않고 곧장 입장할 테니까.

08 입구 위 조각상.JPG 박물관 옛날 출입구 위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MVSEI VATICANI, 바티칸 박물관이라고 쓰인 출입문, 군이 두 명이 중무장하여 지키고 있는 출입문 위의 조각 얼굴이 눈에 띈다. 정면으로 바라보아 왼편은 나이가 든 미켈란젤로이고 오른편은 젊은 라파엘로, 미켈란젤로는 징을 라파엘로는 팔레트를 들고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교황 비오 11세(PIUS Ⅺ)의 문장을 대리석상에 조각되어 있다. 미켈란젤로는 1475년 생이고 라파엘로는 1483년 생이니 둘은 여덟 살 정도 차이가 난다. 그런데 미켈란젤로는 90여 살까지 살았고 라파엘로는 40년도 채 살지 못했다. 그래서 두 천재의 나이 차이는 별로 크지 않아도 저기 새겨진 모습은 저렇게 늙은이와 젊은이로 조각되어 있는 듯하다.

09.jpg 박물관 출입구

사실 저 조각에서도 미켈란젤로는 추남으로, 라파엘로는 꽃미남으로 새겨져 있다. 성격면에서도 라파엘로는 사람들과 잘 어울렸으나 미켈란젤로는 예민하고 까탈스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라파엘로는 여성편력이 심했지만 미켈란젤로는 여성 스캔들과는 거리가 먼 금욕적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건 외모 콤플렉스 때문이기도 하고 신플라톤주의적인 예술관 영향일 수도 있다고 한다. 저 조각을 언제 완성했는지, 누구의 작품인지는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다만 저 두 천재 가운데 있는 문장이 비오 11세 교황의 것이 맞다면 그 교황의 재임 기간이 1922년~1939년이니 저 조각품의 제작 년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10 국경선.JPG 바티칸과 이탈리아를 가로지르는 국경선

그런데 두 거장의 조각이 새겨진 이 문은 옛날 출입문이고 지금은 그 옆의 문 같지 않은 문, 담의 트인 공간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11 입국심사장 요한 바오로 2세.JPG 매표소와 보안 검색대 공간의 줄리아노 반지 작품

바티칸은 로마 중심 지역에 섬처럼 자리하고 있으며 국경이랄 것도 없이 성 베드로 광장(Piazza San Pietro)에 그어진 하얀 선이 국가 간의 경계를 알려줄 뿐 검문소도 보이지 않는다. 누구나 제약 없이 드나들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국경의 힘을 쉬이 볼 수는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바티칸 내에 진입하지 못하고 국경 밖에 군대를 주둔시켰을 정도로 위력이 있는 선이다. 저기 담 아래 희 페인트 선이 국경선이라고 한다.

12.jpg

안으로 들어가니, 그러니까 검색대와 매표소가 있는 안으로 들어가니 번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검색하여 통과시키는, 바티칸 시국 출입국 업무를 담당하는 경찰들의 소리가 관람객의 소리보다 한 옥타브 더 높았다. 그러는 중에 내 눈에 띈 조각품은 마치 교황이 어떤 남자(죄수?)를 포박하여 몰고 가는 듯한 조각품이었다. 보아하니 고대 작품은 아니 것이 분명한 듯하고. 자료를 찾는데 시간깨나 잡아먹었다.

13 검색대 통과 후 박물관을 향해.JPG

이탈리아 조각가 줄리아노 반지의 작품인데 그 제목은 ‘문턱을 넘어(Crossing the Threshold)’라고 했다. 반지는 20세기의 미켈란젤로라는 평을 듣는 조각가, 우리나라 곤지암에도 그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넥타이를 맨 현대인의 등 뒤 대리석판 양쪽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기도하고 손을 치켜든 모습인데 이는 교황이 지닌 두 가지 임무, 즉 기도와 행동을 의미한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 설명을 듣고도 죄수를 몰고 가는 형상이다.

14 통과.JPG

드디어 검색대를 통과했다. 문을 나서면 바티칸 박물관 안뜰이다. 저기 문 밖으로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이 보인다. (2017년 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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