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피냐(Pigna) 정원-2017년 6월 19일
2017년 6월 19일의 일을 지금 얘기하고 있으니까 늦어도 한참 늦다. 바다 건너는 비행기를 함께 타자는 제안을 받을 때마다 편과 나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대부분 거절했다. 그건 지금도 그렇다. 거절하는데 재미를 붙이고 살고 있으니까 유럽을 다시 방문할 기회가 있지 않을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비록 늦긴 했지만 한번 다녀온 그곳, 2년 전 그때 유럽 거기에 가서 보고 느낀 것을 정리하면서 다녀온 그곳의 그림을 내 머릿속에 다시 그려보려고 한다.
나선형 계단
바티칸 박물관을 입장하는 절차는 더욱 번거로웠다. 좁은 공간에 많은 인파가 밀려드니 더욱 그랬다. 북새통 중에 입장 수속 말하자면 입국절차를 마치고 나선형 계단을 빙글빙글 돌면서 따라 올라갈 때 이미 진은 제법 빠졌다. 올라가니 2층이었고 그렇게 해서 밖으로 나가니 박물관 건물의 안마당이 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성 시스티나 성당의 지상이라고 한다. 올라가니 성 피에트로 대성당 돔이 보인다. 그 돔을 바라보면서 또 여기저기를 좀 둘러보면서 기다리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피냐 정원
들어가니 사방이 건물에 둘러 싸인 장방형의 큰 뜰이 나온다. 깔린 잔디의 초록색의 구름 없는 하늘의 푸른색과 대비를 이룬다. 빛이 바랜 낡은 건물들인지라 그러려니 했는데 한쪽 면에 공사 중임을 알리는 가림막이 쳐져 있고 그 앞에 솔방울 모양의 조각상에 세워져 있다. 이것 때문에 이 정원을 ‘솔방울 정원’ 즉 ‘피냐의 정원(Cortile della Pigna)’이라 부른다고 한다. 이 솔방울 조각상은 원래 로마 시내의 판테온 신전 옆에 있던 조형물인데 성 베드로 대성당을 지을 때 뜯어왔다가 1608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사실 우리는 가림막 때문에 뒷부분은 보지 못했다. 나중에 확인하니 가림막 뒤는 둥근 돔이었다. 이건 판테온을 모방한 형태라고 한다.
로마의 솔방울과 소나무
로마에서 소나무와 솔방울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그 옛날 로마 제국시대에 로마 군인들은 병역의무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가는 동료들에게 우산 소나무의 솔방울을 따서 가족들에게 전해달라고 당부하곤 했다고 한다. 솔방울을 전해 받은 가족들은 군대에 나간 자식이나 남편이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표시로 알고 안도했다는 것이다. 로마시대부터 현재의 이탈리아인에게 솔방울이 희망과 행운의 상징이 된 것이다. 로마에선 솔방울이 가정의 행복을 의미한다고도 하고.
물론 로마의 소나무는 우리 소나무와는 다른 모양이다. 우리 소나무는 ‘원추형’인데 로마의 소나무는 ‘우산형’이다. 아피아 가도를 비롯한 로마의 도로를 따라 나있는 우산 소나무는 로마의 상징이기도 하며 이탈리아 르네상스식 정원의 미적 요소 중 하나라고 한다.
지구본
정원 한가운데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지구본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줄에 따라 박물관 안으로 입장하기에 바빠서 황금빛의 그 둥근 지구본 앞에 가보지는 못했다. 이 지구본 작품은 오염되고 병들어 가는 지구를 상징하는 거라고 한다. 가운데 썩은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반질거리는 이 현대적 작품이 고풍스러운 박물관 건물들과 조화를 잘 이룬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어울리지 않게 왜 여기에 안치했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견해도 없지 않았다. 이 지구본은 고정되어 있지 않아서 돌리면 빙글빙글 돌아간다고 한다.
푸른 솔방울
처음엔 자주색을 띠는 솔방울이 나중에 초록색을 띠게 되고 다시 1년이 지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갈색의 솔방울이 된다고 한다. 솔방울은 이렇게 2년에 걸쳐 완전히 성숙한 씨앗을 만든다. 처음 1년은 녹색의 어린 솔방울이고 다음 해 1년은 갈색의 다 자란 솔방울의 모습으로 나무에 달려 있다.
솔방울 속에는 많은 씨앗들이 들어 있는데 갈색의 솔방울 그 안의 씨앗들은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씨앗을 다 날려 보낸 솔방울은 그 수명이 다 하여 땅에 떨어지는데 우리가 소나무 주위의 땅에서 줍는 솔방울들이 바로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친 솔방울이다.
날개가 달려 있어 바람을 타고 멀리 퍼질 수 있는 소나무 씨앗은 같은 소나무끼리 좁은 지역에서 경쟁하지 않을 수 있도록 공간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다른 곳에 퍼져 나가는 소나무 씨앗의 능력, 여기서 나는 자립심을 읽어 낸다.
또한 푸른 솔방울에게서 다부진 희망도 본다. 이 사색은 솔방울 정원이라는 피냐 정원에서 땀 흘리며 서서 얻은 나의 '6월의 결실'이다.
피냐의 정원에서 좀 서성거리다가 키아라몬티 전시관이라는 곳으로 안내되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