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내어 읽기-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
둘이서 소리 내어 다 읽는데 일 년이 걸렸다. 산기슭 여기 길뫼재의 밤은 정적의 지배를 더 받는다. 그건 생명이 움트는 봄에도 그렇고 무성한 여름에도 그렇다. 가을밤엔 정적이 소리의 저항을 받는다. 풀벌레가 저항하고 떨어지는 밤톨이 저항한다. 그러나 겨울밤에는 정적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다. 우리 둘이서 소리를 내면 길뫼재의 적막은 한 시간 여 깨어진다. 우리는 우리가 내는 소리로 이 정적을 깨트려 보기로 했다. 1222쪽의 책, 가을에 첫 페이지를 열었는데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을 때는 여름이었다. 나는 편에게 ‘책 읽어 주는 남자’가 되고, 편은 내게 ‘책 읽어 주는 여자’가 되어 계절을 네 번 보내니 그 많던 페이지 1220쪽이 결국은 동이 났다. 우리는 그런 독서를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고.
톨스토이가 15년간에 걸쳐 집필, 편집했다는 『인생이란 무엇인가』는 우리가 첫 번째로 택한 책이다. 톨스토이는 우리가 다 아는 대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시골 간이역에서 폐렴으로 객사하기까지의 치열한 인생을 살았다. 이 책에는 톨스토이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적 측면을 너무나 부각하고 종교적 인용문이 많다는 이유로 어두운 시절에 금서로 묶여 있다가 1995년 러시아에서 재출간되어 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 책을 나는 혼자서 먼저 읽었다. 읽은 한참 후에, 나 또한 이런 이유로 망설이다가 제안했는데, 편이 “아무튼 한번 읽어 보자”며 흔쾌히 응해 주어 읽는 일이 성사되었다.
책은 1년 365일간의 일기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하루의 묵상을 자신의 단상으로 시작해, 여러 위인들의 인용문을 덧붙인 뒤, 다시 자신의 결론을 던지며 마무리 짓는다. 인용된 구절은 칸트, 플라톤, 공자, 노자, 석가모니, 탈무드, 성경 등 동서양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한 주가 끝날 때면 1주일간의 묵상을 <이레째 읽을거리>라는 코너로 마무리 짓고 있다. 이 코너는 자신이 직접 쓴 단편과 빅토르 위고, 파스칼, 체호프,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작품에서 발췌했거나 개작한 52 편의 짤막한 소설로 구성돼 있다. 훗날 솔제니친이나 파스테르나크 등은 이 '이레째 읽을거리'만 집중적으로 읽어 거의 외울 정도였다고 한다.
1월 1일의 첫마디는 이렇게 시작된다 : “그리 중요하지 않은 평범한 것을 많이 알기보다는 참으로 좋고 필요한 것을 조금 아는 것이 더 낫다.” 12월 31일의 마지막 페이지는 이 말로 끝을 맺는다 : “시간이라는 것은 없다. 있는 것은 오직 무한하게 작은 현재뿐이다. 그 현재 속에서 인간의 삶이 영위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모든 정신력을 현재에 집중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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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하나 듣는다. ‘인생은 작은 배’라는 노래다. 나는 요새 노래의 가사와 그 가사를 쓴 사람 이름을 꼭 확인하는 편이다. 이 노래도 가사 때문에 익힌 노래다. 톨스토이의 마지막 언급인 ‘시간’이, 이 노래에 얹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시간이라는 배에 미움을 실을 수는 없다. 톨스토이의 시간은 “무한하게 작은 현재” 뿐이고 이 노래의 시간은 “좁디좁은 무정한 배”일 따름이다. 전자는 “그 모든 정신력을 현재에 집중” 시킬 것을 권유하고, 후자는 “그리운 마음을 시간이라는 배에 실을 것”을 호소한다.
인생은 작은 배
김지평 작사 / 박춘석 작곡 / 패티김 노래
구름은 바람 없이 못 가네 / 천년을 간다 하여도 / 인생은 사랑 없이 못 가네 / 하루를 산다 하여도 / 지금 우리들이 타고 가는 / 시간이라 하는 무정한 배 / 미움을 싣기에는 너무 좁아요 / 그리움만 실어요. // 구름은 바람 따라 떠나고 / 별빛은 그 자리 있고 / 인생은 세월 따라 떠나도 / 사랑은 그 자리 피네 / 지금 우리들이 타고 가는 / 시간이라 하는 무정한 배 / 미움을 싣기에는 너무 좁아요 / 그리움만 실어요. // 구름은 바람 따라 떠나도 / 그 하늘 그냥 푸르고 / 인생은 세월 따라 떠나도 / 그 마음 그대로 피네.
그런 것 같다. 구름은 바람 따라 떠나도 저 하늘은 그냥 푸르고, 인생은 세월 따라 떠나도 그 마음 그대로 피어 있는 것 같다. 그리움이 있는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