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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댄힐 Sep 28. 2016

뒤꼍의 어둠

9월이 가는 소리

https://youtu.be/RjM-FvTjGxE


   01 태양열 등 두 개를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하고 내려왔다. 그게 오늘 도착했다. 그거 두 개를 설치하는데 오후 시간을 다 보냈다. 이미 설치한 여섯 개 중 두 개가 망가졌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추가로 설치한다고 해도 개수는 여전히 여섯이다. 그러나 불을 밝히는 장소는 다르다. 새로운 두 개는 뒤꼍에 세웠다. 한 개이던 등이 세 개로 늘어난 것이다. 뒤꼍, 이는 뒤안을 말한다. 우리는 어릴 때 집 뒤쪽 혹은 뒤뜰을 이렇게 불렀다. 뒤꼍이 산기슭과 이어지는지라 밝히지 않으면 많이 어둡다. 다 세우고 나니 해가 서산에 기운다.

 

 

   02 해가 넘어가다 말고 형제봉 아래의 신선대에 잠시 걸린다. 뛸 시간이다. 망치를 놓고 작업 장갑을 벗은 후 신발을 갈아 신었다. 뜀박질 출발이다. 아침 해 뜰 때와 오후 해 질 때 등 하루에 두 번씩 뛰는데 길이가 60여 미터인 밭둑을 합계 스무 번 왕복한다.


   03 가쁜 숨을 추스르고 도끼를 들었다. 어제 삼천포 대장간에서 망가진 내 도끼와 바꾸어 온 도끼다. 절단 목 몇 토막을 패고 나니 어둠이 깃든다. 태양열 등에 불이 붙는다. 어두울수록 불이 밝다. 아니, 불이 밝을수록 어둠은 깊다. 커가는 달이 먼저 떴는지라 등이 진가를 충분히 발휘하지는 못하지만, 어둡던 뒤꼍이 밝으니 좋다. 집 앞뒤를 서너 번 돌았다.


   04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27일 오늘, 기온은 30도를 침범했다. 새삼 확인하게 되는 9월의 끝자락이다. 9월, 오는 소리는 듣지 못했는데 가는 소리는 들린다. 9월이 오는 소리는 가만히 들으면 꽃잎이 지는 소리고 다시 들으면 꽃잎이 피는 소리라는데 그건 맞는 것 같다. 비틀거리며 사는 손위 형제일로 칠팔월을 어떻게 보냈으며 9월은 또 어떻게 왔는지, 오는 기미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는데, 한숨을 돌리고 보니 가는 소리는 들린다. 무성하던 섬진강길 가로수 나뭇잎들은 물들기 시작했고 바람이 불면 제법 우수수 떨어진다.


   

   05 그래도 지난여름 또 가는 9월, 고맙다. 이것들이 내게 이루어 준 것이 많다. 정년이라는 이름으로 강의실을 떠날 때 내가 한 결심은, 밖에 나가면 지금까지 하던 일과는 아주 다른 일을 하자는 거였다. 연구실과 강의실의 일이 정신노동이었으니 그 다른 일이란 일차적으로 육체노동을 말한다. 손과 발 어깨와 등에 기대어 해낸 신체 노동이 이해의 내 주력 노동이었다. 일, 원 없이 했다.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06 뒤꼍의 어둠을 태양열 등이 지켜 준다. 내 맘의 어둠은 손과 발, 어깨가 수행하는 일들이 몰아낸다. 다른 생각 할 겨를 없이 여기까지 왔다. 어둠, 사실 어둠이 싫은 건 아니다. 어둠은 생명의 못자리일 것이다. 밝을 수만은 없다. 어두워야 별이 더 빛을 발하게 된다. 아무튼, 저 등들이 가는 해의 길을 고즈넉하게 밝혀 줬으면 좋겠다.


   07  9월, 잘 가라. 돌아보지 말고 가라. 너 오는  소리를 나 듣지 못했지만 가는 소리는 듣고 있다. 소리 없이 떨어지는 나뭇잎의 동작에서 가는 9월 너의 작별 음성을 듣는다. 소리 없는 소리, 9월의 소리다.

 

   08 별들이 점점 더 형형해진다. 총총하게 빛나는 겨울밤엔 망원경 거치대를 밖에 설치해야 한다. 땅만 보고 살았으니 이제 하늘도 좀 올려다보며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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