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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댄힐 Oct 01. 2018

나무라 해도 잎새라 해도

옛 시인의 노래-한경애

황토방 아궁이 위에 처마를 세우고 퇴비장 지붕을 만드느라고 여드레 날을 정신없이 보냈다. 다른 일을 할 때에도 전력투구하지만, 이번 일은 지붕을 만드는 일인지라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어서 비 오기 전에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그야말로 정신없이 매달렸다. 일기예보상으로는 일주일 여 동안 비가 없다고 되어 있지만 ‘짜미’라는 이름의 강력한 태풍이 일본을 향해 접근한다고 되어 있어, 마음을 졸이며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보낸 여드레, 다행히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계획된 세 가지 일, 정자 아래 시멘트 포장과 아궁이 처마와 퇴비장 지붕일을 다 마칠 수 있었다.

    

일을 마친 바로 다음 날, 새벽부터 길을 나섰다. 고향 동네 친구 넷,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 친구지만, 사느라고 바빠 고희가 될 때까지 60여 년을 서로 연락 없이 살다가 극적으로 재회하여, 살아온 삶의 이야기로 만날 때마다 이야기 꽃을 피우는 네 쌍의 친구 내외와 더불어, 주지로 있는 또 다른 친구의 절을 찾아 완도 옆 고금도라는 섬의 절을 향해 가기 위해서다.

   

절에서 점심으로 절밥을 얻어먹고 나와 강진 청자 박물관으로 갔다. 거기서 청자를 보고, 박물관 뜰을 걷고, 편한 자리에 앉아 담소 나눈 후 순천의 낙안읍성으로 왔다. 앉아 담소 나눌 때 부는 바람이 세찼다. 떨어진 잎들이 이리저리 쫓긴다. 그야말로 바람 앞의 낙엽이다. 나뭇잎은 여름에도 떨어질 순 있지만 철이 철인지라 지금 떨어닌 낙엽들의 딩구는 소리는 스산하게 느껴진다. 청자를 더 보고 뜰에서 더 머물고 싶어 지만 부산까지 돌아갈 길의 거리를 생각해 더 머물 수 없었다.     

낙안읍성, 세 번째 찾아온 곳이다. 20여 년 전, 처음 왔을 때엔 지붕의 이엉들이 전부 새것이어서 막 조성한 마을 느낌을 가졌었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새 이엉으로 바꿔 얹은 지붕은 두어 채뿐이었고 대부분은 낡은 지붕 그대로였다. 그래서 나이라는 숫자가 제법 쌓였기에 싱싱하지 않은 우리들의 몰골처럼 그 지붕들도 낡았기에 보는 눈과 마음은 더 친숙하고 편했다. 짚이 주는 편안함과 안온함은 어린 시절은 초가집 지붕 아래에서 보낸 사람은 거의 느끼는 감정이다.  

   

여기서도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그래도 조급하게 걷지는 않았다. 읍성 마을 초가집들의 이 골목 가을꽃들을 이리 보고 저 골목을 스치는 바람 소리를 저리 들으며 걷는 친구들의 느린 걸음들을 한 걸음 뒤쳐져 바라봤다. 그리고 우리가 나눈 이야기, 살아온 이야기들을 오버랩시켜보기도 했다. 그랬더니 내 눈과 가슴은 한경애의 노래에 나오는 시인의 그것이 되었다. 시인이라도 옛 시인, 왜냐하면 우리들 자신이 옛사람이었으니까. 골목을 또 성 위를 함께 걷는 저 앞의 도반들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나무라 해도, 잎새라 해도. 좋은 날엔 시인의 눈빛 되어, 시인의 가슴이 되어” (한경애의 엣 시인의 노래 가사 일부)  

   

에너지를 쏟아부은 전력투구 여드레 일 후의 작은 섬 고금도 나들이 길, 오가며 마주친 나무들과 잎새들 또 바람은 우리들의 가슴이고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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