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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댄힐 Jun 16. 2017

가방을 챙긴 후 산 책-루시와 레몽의 집

신이현이 지은 『루시와 레몽의 집』을 샀다.

종이책으로 사고 싶었는데 지금 부산 시내 서점에 다녀올 시간이 없어 eBook으로 샀다.

알자스에 관한 책을 찾는 중에 걸려든 책이다.

그곳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을 참이다. 

4 년 전, 대학의 내 연구실을, 퇴임식이라는 이름의 세리머니 후에 비워주고 나온 후 우리 아이들은 봉투, 이참에 엄마 아빠 유럽을 다녀오시라는 뜻을 담은 봉투를 내게 주었다.

물론 정말 그러냐고 누가 따지고 든다면 이 말을 정정해야 한다.

사실은 통장으로 입금해 준 것이니까.

아무튼 그때는 악양의 길뫼재 신축공사가 막 시작된 때인지라 그럴 틈이 없어 차일피일 미루었다.

그 후에는 다시 또 황토방 신축공사를 하게 되어 이번에는 아이들이 마련해 준 그 여행비를 자재 사는데 몽땅 투입했다.

그래서 아이들의 성의를 구현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모두 함께 다녀오는 여행을 설계하고 추진했다.

처음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나랑 편은 거절했다.

여러 번 거절하다가 사위들 등 모두가 함께하는 여행 계획을 다음으로 미루면 다시 설계하기가 쉽지 않은지라 편과 나는 함께 하기로 동의했다.

여행지도 하와이에서 이탈리아로 바꾸었다.

최종 목적지는 프랑스의 알자스 지방으로 확정했다. 

알자스, 내가 읽었던 오래 전의 『나의 생활과 사색에서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랑바레네 통신』의 앨버트 슈바이처 고향과

『별』의 알퐁스 도데를 떠올리게 하는 먼 저곳 알자스로 정해지니 내 가슴이 잔잔히 떨리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19세기 당시 교회의 냉담한 반응 속에서 자연주의적 교육이념을 펼쳤던 페스탈로치를 재정적으로 지원했고,

서구 그리스도교를 향해 신의 죽음을 선포한 니체에게 강의를 허락할 만큼 포용력을 보였으며,

또한 2차 세계대전 도중 나치의 횡포를 피해 망명한 칼 바르트와 칼 야스퍼스라는 두 사상가에게

자기 사상을 펼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기도 했다는 바젤 대학의 스위스 바젤을 거쳐 들어가는 알자스 여정은,

이제 말라붙어 떨릴 가슴살도 없는 나의 심중을 잔잔히 물결치게도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가보지 못한 유럽을 구경시켜주려 동행하는 딸들과 사위들, 감동이다.

로마 다빈치 공항에 내리면 그때부터 처지지 말고 아이들 뒤를 쫄쫄 잘 따라다니자고 편과 나는 손가락 걸어 다짐했다.

물론 아이들은 부모인 우리의 걸음을 감안하여 일정을 느슨하게 짰다. 


작가 박이현은 “바다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프랑스와 독일 국경의 산골마을” 알자스를 “그곳의 산과 들은 농부의 땅이었고 그들의 음식도 농부의 음식”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이 잊지 못하는 것은 “그 시골스러움” 때문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시골스러움’, 내가 머무는 섬진강-지리산 기슭 동네인 악양 동매마을도 시골이다.

그 시골스러움에 젖어 있는 나는 육신은 밭일에 땀 흘려도 정신은 한없이 편하다.

알자스의 시골스러움을 섬진강변 산기슭 내 처소 길뫼재의 시골스럼과 비교해 볼 기회가 눈앞에 왔다.

가방을 다 챙겼다.

김해공항 국제선 청사로 향하는 출발만 남았다. 

95년 하와이-La-샌프란치스코에 갔을 땐 내가 앞에 서서 가족을 이끌었다. 

2017년 지금은 아이들이 앞에 서고 편과 나는 뒤에서 따라간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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