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금 깎아 먹고 가만 앉아 있으니 귀가 운다. 울기로서니 그것 다반사 아닌가? 그래도 운다. 가만 들으니 풀벌레 우는 소리다. 풀벌레가 운다. 울기로서니 소슬바람 계절에 그것 다반사 아닌가?
그래도 운다. 가만 들으니 귀가 우는 소리다. 풀벌레가 운다. 풀벌레가 울어도 풀벌레 소리고 귀가 울어도 풀벌레 소리다. 그래, 8월이면 선선한 바람도 나고 풀벌레도 울었지. “실버들을 천만사 늘어놓고도 가는 봄을 잡지도”못했는데, 이 철에 우는 풀벌레를 내 어쩔 수 있단 말인가.
초동친구들 생각난다. 그들은 가는 봄을 잡지도 못했단다. 가난을 원죄로 뒤집어썼기로 남 다 가는 중학교 고등학교 진학은 꿈도 못 꾼 채, 지 태어난 그 집에서 아들 딸 낳고는 농사짓고 살다가 골병들어 병든 갑돌이와 삼식이는 죽을 나이 아닌데 벌써 죽었단다.
나도 소꿉놀이에 참여했다. 소꿉 시절의 순이, 경이 생각난다. 좀 커서도 소꿉 했다. 커서 한 소꿉놀이는 따라오고 따라가는 거... 내가 순이를 따라가면 순이는 도망가고. 도망가서는 다른 눈 쳐다보고 있고. 환이는 경이를 따라가는데 경이는 나를 따라오고 나는 도망가고.
나는 여기 있는데 그들은 어디 있는지. 누구는 죽었을 것이고 누구는 살아서는 살아온 삶의 궤적을 헤적이고 있을 것이고….
풀벌레가 운다. 잠이 안 온다. 그들도 나처럼 "잠 못 이루는가." 소슬바람에 "풀벌레 슬피 울 때에" 그들도 나처럼 뒤척이고 있는가. 풀벌레 소리에 잠 못 이뤄 나와 앉는 줄 눈치챌라 편 모르게 더더욱 슬금슬금 기어 나들어야겠다. 그들도 나처럼 깎은 능금을 먹고 있을까? (배채진의 오래전 글 '능금과 실버들')
간략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