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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댄힐 Aug 29. 2018

매미의 임종

9월이 오면 Come September

https://youtu.be/f620HNJWY6s

(빌리본 악단의 Come September, 9월이 오면)

9월에 돌려보는 8월의 필름, 섬이 스쳐 지나간다. 내 머무는 곳에서 가까운 신수도, 얼마 전에 다녀온 홍도와 흑산도 그리고 지난해 8월의 아주 먼 섬 독도.


오래 전의 책, 장 그르니에의 '섬'이 생각난다. "내가 원하는 바는 다름이 아니라 잡다한 현실로부터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되돌아 가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도 정말 자연은 그런 자연 그대로의 상태라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정말 자연은 투쟁이고 공포이기 때문이다."  (장 그러니에, '섬' 일부 발췌)


섬으로 가는 길도 섬에서 걷는 길도 고생길이다. 그래서 더욱 그럴 것이다. 필름을 되돌려 보면 배를 타고 돈 여정이 더 아련히 떠오른다. 편과 둘이 다녀온 독도, 배에서 내려서지 못한 섬 여행이어서 9월이 오는 길목에서 더욱 생각난다.

이 여름엔 매미 허물이 다른 때보다 눈에 띄게 더 많이 발견되었다.  자작나무에서, 토란 잎에서 또 사과나무에서 그리고 돌담에서도.


그런데 9월이 오는 길목, 8월 끝자락에서 돌아보니 여름 내내 매미가 울긴 울었지만 더 많이 울은 것 아니었던 것 같다. 호미질, 삽질, 괭이질에 내가 너무 빠져 있었던 걸까? 매미소리를 뚜렷이 기억하지 못하다니.

구례 천은사, 절간처럼 조용하다더니 정말 조용했다. 물소리와 새소리, 매미 소리뿐이던 절간, 우리가 내는 소리가 나니 스님이 처소에서  나와서는 법당으로 들어가더니 염불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우리가 절을 뒤로 하니 하던 염불 뚝 그치고 처소로 돌아간다. 스님의 염불 처사, 표가 난다. 나도 너무 난다.


염불소리가  그치니 후드득 빗소리가 그 소리를 대신한다. 8월의 절간은 겨울 못지않게 고요가 지배했을 것 같다. 9월이 오면 지리산 절간들에도 사람 소리가 더 들리게 되려나.

길뫼재 여기저기에 매미의 주검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이 날기 위해 벗어던진 허물만큼 많다. 이 여름에 더욱 두드러진 현상이다. 죽은 매미를 집으려고 손을 대었다. 파르르 반응한다. 세찬 저항이었다. 깜짝 놀라 손을 빨리 떼었다. 죽은 듯이 보였지만 매미가 죽은 게 아니었다. 그렇게 놀라기를 서너 번 반복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죽은 듯이 가만히 있는 그 자세는 임종 자세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언젠가 맞게 될 나의 임종도 매미처럼 저렇게 말없이 고요했으면 바람도 생긴다. 말하자면 언젠가 지구를 떠나게 될 때 매미처럼 떠났으면! 매미처럼 임종하게 되었으면! 9월이 오면 매미 소리도 점점 잦아들 것이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8월이 가기 전에 다녀 가라고, 포도가  마치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히" 듯 가지에 달려 있으니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듯이 어서 자기 집으로 쳐들어 오라는 전화가 왔다.


제법 한참 형인데도 친구로 지내는  포도 정원 집주인 내외의 성의가 고마워  폭우, 폭우 중에서도 상 폭우 중에도 망설이지 않고 길뫼재를 나섰다. 그렇게 합류한 우리 셋, 여섯은 "은 쟁반"에  담아낸 포도를 오손도손 나누었다. "하이얀 모시 수건"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어도 좋았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두 손을 함뿍" 적셨다. (인용은 이육사의 청포도)


빌리본 악단의 'Come September, 9월이 오면'은 내게 버거운 곡이었다. 쉼표 하나 없이 빠르게 이어지는 곡!

하지만 9월이 오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며칠 연습하여 오고 있는 9월에게 줄 선물로 포장했다. 하지만 포장지가 투박하다.


그래도 좋다. 9월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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