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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댄힐 Sep 29. 2016

물까치, 호감에서 비호감으로

배나무 그물망과 까치들 : 까치-산까치-물까치-때까치

https://youtu.be/GKv8iclNT9Y


   ①산까치, 평지에서 보게 되는 건 까치이고 똑같은 그놈이 산에 머물면 산까치가 되는 줄 알았다. 최안순의 노래 ‘산까치야’는 지금 들어도 여운이 남는다. 인적이 드문 산길을 혼자 걸을 때 느끼게 되는 아련한 여운을 이 노래는 배경으로 가지고 있다. 악양 지리산 기슭의 내 처소 길뫼재 밭 언덕에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까치 두어 마리가 찾아와 머문다. 어슬렁거리며 걸어 다니는 걸 보면 이놈이 날짐승인지 길짐승인지 의아할 때가 있다. 밭에서 걷는 걸음 수가 많다는 걸 이리 표현해 본다. 아무튼, ‘산까치야’라는 노래 여운으로 바라본 까치, 더 정답게 보였다. 그냥 까치를 산까치로 착각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은 달린 배가 물까치의 심한 공격을 받고 난 이후이다. 


   ②꽃이 지고 난 후 성냥 알만하던 배가 좀 더 커, 유리구슬만 해 졌을 때 봉지를 씌웠다. 120여 개. 지난해보다 좀 더 늘어난 개수다. 악양에서 하동읍으로 가다가 보면 ‘선장 마을’이라는 이정표가 나오는데 그 주위는 온통 배 밭이다. 이른바 ‘만지 배 밭 단지’인데 여기 배도 유명하고 맛도 있다. 이곳 만지 배 밭 단지의 배나무들이 봉지를 주렁주렁 매달기 시작할 때 우리도 배나무에 봉지를 씌운다. 올해도 그랬다.


   ③날아와 길뫼재 안팎의 나무나 전깃줄에 앉는 새가 여러 종류 된다. 대부분은 일정하게 찾아오는 새인데 더러는 모르는 새가 왔다 가기도 한다. 한 3~4년 전부터 가을, 겨울에 바로 옆 대밭에 한 무리의 새가 날아와 앉아 시끄럽게 굴었다. 떼거리로 몰려와 떠들다가는 우리 밭에서 뭘 쪼기도 하고 나뭇가지에 앉았다가 한 놈이 날면 우르르 따라서 다른 곳으로 날아가곤 했다. 몸의 빛깔은 잿빛이 도는 갈색이고 머리는 검은색이며 날개와 꽁지는 하늘색인데 좀 크고 몸매가 잘빠진 새였다. 반가웠다. 자주 찾아왔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④처음엔 떼 까치인 줄 알았다.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지라 ‘떼 까치’로 본 것이다. 알고 보니 이런 까치는 없었다. 그건 ‘때까치’였다. 그리고 또 알고 보니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는 이 까치는 때까치가 아니라 ‘물까치’였다. 아무튼, 좀 지나자 이들은 너무 요란했고 익어가는 과일을 많이 망가트렸다. 우리 과일 밭의 주공격 대상은 단물이 드는 봉숭아, 자두, 사과 그리고 배였다. 감이나 살구 등은 별 공격을 받지 않았다. 제일 큰 피해는 배가 입었다. 사실 물까치가 떼를 지어 몰려오기 전에 배는 까치와 까마귀 공격을 더러 받았다. 여기 물까치가 합세한 것이다. 물까치, 호감에서 비호감으로 돌아선 것은 이때부터이다. 


   ⑤배 봉지를 씌운 후 마음을 놓았다. 봉지를 씌우고 나면 조류의 공격을 덜 받기 때문이다. 사실 봉지를 씌우는 일도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님을 배나무를 심은 후 열매가 달리던 해에 처음 씌울 때 체험했다. 호미나 괭이 들고 하는 일보다는 쉬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따가워지기 시작하는 늦봄 햇살 아래 아직 꼭지가 덜 자란 열매를 다치지 않고 씌우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처음엔 나도 거들다가 슬그머니 손을 놓고 피한 후 그 이후론 봉지를 씌울 때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버린다. “봉지 안 씌우고 오데 가요?” 하는 편의 금속음이 귓전을 때려도 못 들은 척하면서. 아무튼, 봉지를 씌운 직후에 조류의 공격을 받은 적은 없는지라 안심하고 며칠 자리를 비웠다.


   ⑥그런데 이것 봐라, 돌아와서 보니 배나무 꼴이 말이 아니었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봉지를 뒤집어쓴 배 40여 개가 꼭지 채로 떨어져 이리저리 뒹굴고 있는 게 아닌가. 처음엔 너무 빨리 씌워 약한 배 꼭지에 부담을 줘서 그렇게 된 줄 알았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봉지가 대부분 찢어져 있었다. 새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봉지를 씌운 초기의 이런 공격 피해는 처음인지라 당황했다. 어느 놈의 짓? 까치에 혐의를 두었다. 요새 까마귀는 아직 안 오는데 까치 한 두어 마리가 집요하게 배나무를 방문하기 때문이다. 물론 물까치도 한 놈이 배나무 곁을 안 떠나고 있어 의심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까치만 오면 고함질러 쫓았다. 120여 개 열매 중 40여 개가 망가졌으면 30% 손실을 초래한 것이다. 큰 피해다. 망가진 봉지는 새것으로 바꾸어 다시 씌운 후 부산 집을 다녀왔다.


   ⑦배나무 아래가 또 어수선하다. 이번에도 봉지 40여 개가 떨어져 있다. 그렇다면 입게 된 피해는? 그런데 지난번과 차이는, 이번에는 배 꼭지는 떨어지지 않고 봉지만 찢어진 채 떨어진 게 많다는 것. 여분의 봉지가 없어 읍내 농약 상점에 갔다. 봉지를 한 묶음 사면서 사정을 얘기했더니, 그물을 씌우지 않으면 남아나는 게 없을 거라고, 그전엔 이런 적이 없는데 먹이가 모자라는지 이번엔 물까치의 무차별 공격 때문에 남아나는 게 없다고 하소연하는 피해 농민의 하소연을 자주 듣는다고, 봉지만으로는 안 되니 그물을 쳐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블루베리 농가의 피해가 크다고 하면서. 까치, 물까치, 처음엔 아주 호감이었는데 점점 비호감으로 돌아선다. 시상에, 익은 배면 몰라도 봉지를 공격하다니! 


   ⑧배 봉지를 다시 씌운 후, 그러니까 세 번째 씌운 후 사 온 그물로 나무를 덮었다. 그물을 친 후 배나무를 보니 꼴이 말이 아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한 40여 개 남은 배를 지키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다른 수가 없다. 그리고 부산 집을 다녀왔다. 배나무 아래가 깨끗하다. 까치도 물까치도 오지 않는다. 그만큼 길뫼재는 또 조용해졌다. 


   ⑨이제 알게 되었다. 그냥 까치가 산에 산다고 산까치가 아니란 것을, 그리고 최안순이 노래한 산까치의 이름이 사실은 ‘어치’라는 것을. / 이제 구분하게 되었다. 내가 때까치인 줄 안게 사실은 물까치란 것을. / 그러나 아직도 모른다. 때까치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를. 왜냐하면‘ 직접 본 적이 없기 때문에. / 아직도 본 적이 없다. 산까치라 불리는 어치를. // 까치, 호감에서 약간 비호감으로 돌아섰다. / 물까치, 아주 호감에서 크게 비호감으로 돌아섰다. 배 봉지 공격당한 이후로. // 그러나 노래 ‘산까치야’는 지금 들어도 좋다. ‘느림’을 ‘힐링’의 출발로 여기는 지금, 통기타 반주의 잔잔한 노래가 새삼 마음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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