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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댄힐 Sep 30. 2016

형제봉 신선대의 지는 해 아우라

흰 민들레 홀씨

https://youtu.be/LcZXrwz8Tt8

(민들레 홀씨되어 / 박미경)


   ①모기도 별로 없었다. 밤이면 불빛 보고 날아들어 방충망에서 날갯짓 소리를 심하게 내던 나방 등의 날벌레들 수도 여느 다른 8월보다 적었다. 마른장마와 폭염 때문인 듯하다. 내가 머무는 이곳 산기슭엔 일주일이 멀다 하고 소나기가 내려 가물진 않았다. 그러나 오후 두 시 경의 온도는 다른 어느 곳보다 높았다. 처서를 넘긴 오늘, 부산 집의 22층 서재로 들어오는 바람은 어느 때보다도 시원하다. 엊그제 처서 날, 산기슭 길뫼재의 오전, 밭이랑을 타고 들어온 바람은 땀범벅인 이마와 등을 그전보다 더 시원하게 해주었다. 등등하던 폭염의 기세가 좀 꺾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②나 또한 호된 이 8월 폭염의 한가운데를 거쳐 왔다는 말을 지금 나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태풍도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이 8월의 고기압 위력이 날벌레들의 출현을 저지시키는 것쯤이야 대수였겠는가. 그런데 뜻밖에 지네의 야밤 중 실내 방문을 이틀 사이에 연이어 두 번이나 받았다. 안으로 들어와서는 첫날은 악기 및 글 작업실 벽에 붙어 기어 다녔고, 이튿날은 잠자리의 내 팔뚝에 기어 다녔다. 그전엔 한 번도 안에서 만난 적이 없는 놈들인데 처음으로 들어온 걸 보면 고기압의 위세가 태풍과 날벌레는 저지해도 길벌레의 출몰은 저지하지 못한 모양이다. 


 

   ③일, 덥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일이다. 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의 일은 밭일이다. 나, 밭을 마련한 이후 10여 년 동안 밭에 오면 점심 후 잠시 취하는 휴식 시간을 빼고는 저기 형제봉의 신선대에 지는 해의 아우라가 짙은 색으로 걸릴 때까지 내내 일했다. 편이 화를 내며 말려도 그렇게 했다. 그런데 이 여름의 폭염 속에선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덥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일이긴 하지만, 일하다가 지구에서 강제로 퇴출당할 수도 있을 정도로 강한 폭염의 위세에 내가 눌리는 게 상책이라는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8월 중순에 들어서는 오후 일은 아예 제치고 오전 일도 일찍 시작하여 11시경에는 마쳤다. 내 나름의 생존전략이었다. 


   ④나의 낮 일은 밭일이고 밤일은 악기 일 아니면 글 일이다. 악기를 잡으면 자판기를 못 두들기게 되고 자판기에 손을 얹으면 악기를 손에 쥐지 못하게 된다. 요새는 악기를 더 자주 손에 잡았다. 밤일 둘 다 속도를 내고 진척을 이루고 싶은데 더디다. 공명을 불러오는 잘 쓴 글을 보거나 특히 잘 연주한 색소폰 소리를 유튜브에서 보고 들으면 기가 죽는다. 그래도 이제 내가 먹은 나이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내 소리를 내야 할 때. 그래서 이제 내 소리를 녹음하고 내 글을 인쇄한다. 인쇄, 나의 글 두 번째 인쇄는 내년 1월 3일을 발행일로 정해 두고 있다. 녹음, 녹음 장치가 따로 없고 핸드폰 녹음이다. 녹음하여 들으니 내 소리의 수준을 알겠다. 거울을 보고 내 얼굴의 생김새를 알 수 있듯이. 내 소리를 내 글에 싣는다. 내가 낸 소리를 내가 듣고자 함이다. 열린 공간인지라 다른 분도 들을 수 있음을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이렇게 하는 게 내 소리 일의 진척을 더 이룰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얼굴, 못나도 내 얼굴이고, 글, 못 써도 내 글이며, 소리, 질이 낮아도 내 소리 아니겠는가. 그래서 얼굴에 철판 깔고 내 소리를 내 본다.


   

⑤우리 밭 언덕의 흰 민들레, 처음엔 한 그루였는데 해를 넘겨 서너 그루로 늘어났다. 이해 봄 얘기다. 꽃이 지고 홀씨가 또 다른 송이로 맺혔을 때 훨훨 날아가기를 기다렸다. 한참 기다려도 날아가지 않은 홀씨 송이는 입으로 불어 날렸다. 주변에 앉아 내년에 돋아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이렇게 늘어나서 길뫼재 우리 밭 언덕이 흰 민들레로 봄을 이루고 싶기 때문이다. 흰색이라고는 하지만 아주 흰색은 아니다. 상아색이라고 해야 하나. 흰 민들레가 토종 민들레라는 말도 있고 노란 민들레보다 더 귀한 민들레라는 말도 있고 해서 나는 이 민들레에 더 공을 들이고 있다. 민들레의 이미지는 밟힘이다. 봄에 꽃을 피운 후 밟히다가 죽기 전에 다시 한번 더 꽃을 피운다고 한다. 유소년 시절 이후 60년도 더 지나 만나서는 내외분이 좋은 우정을 우리에게 나눠 주는 섭이 형, 형이면서 친구인 사진작가 그 형이 며칠 전 길뫼재의 민들레 담론에서 그렇게 말했다. 




   이 여름의 바람은 더 시원했다. 길뫼재 언덕에 서면 바람이 낮에는 앞에서 오고 밤에는 뒤에서 온다. 앞에서 오는 낮 바람은 섬진강 바람이다. 진짜 그러랴만 난 그렇게 여기고 있다. 강바람, 그 누구의 마음을 민들레 홀씨 되어 누구에게 날아가게 하는 고마운 바람, 오가는 길의 섬진강, 볼 때마다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도 연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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