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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댄힐 Oct 02. 2016

쌀 박상 또 꽈배기

구례 장에서

https://youtu.be/7nqm7uFfxbM


   장을 한 바퀴 돌고 올 테니 여기에 서 있으라고 한다. 편이 지정해준 장소는 철물점 앞이다. 말 잘 들으면 꽈배기 사줄 테니,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서 있으라고 한다. 말 안 들으면, 즉 자리를 지키지 않고 이동하면, 꽈배기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없다고 윽박지른다. 철물점 앞, 편이 서 있으라고 찍어준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움직였다가 장을 돌고 있는 편이 나를 찾지 못하기라도 하게 되면 큰 낭패를 당하게 된다. 잘 서서 기다려야, 점수를 따야 꽈배기, 붕어빵을 하나라도 얻어 걸칠 수 있다.


   물론 우리 둘의 호주머니엔 폰이 들어 있다. 전화기가 있으니 사실 서로 찾지 못하고 헤맬 일이 없다. 하지만, 난 장에만 따라오면 잃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을 늘 가정한다. 그게 장에 따라오는 재미다. 만들어 유지해 보는 긴장감이다. 유년 시절에 지게 지고 어머니 따라간 장에서, 기다리라는 장소에 기다렸는데도 어머니가 오시지 않아, 불안에 떨던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는 어머니가 조금 늦게 오신 것이지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어떤 남자가 큰 고무통을 끌고 온다. 그런데 이동이 느리다. 느려도 너무 느리다. 고무통 안에는 큰 물고기들이 여러 마리 들어 있었다. 아까부터 유심히 봤는데, 저쪽에서 내 앞의 이쪽으로 올 때까지 팔 생각은 도통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팔려고 들고 나온 물건(물고기) 같은데 팔려는 건지 그냥 끌고 다니는 건지 나중에는 헷갈렸다. 내 앞에 서더니 어물전에서 커피를 얻어(청해) 마신다. 마시는 시간이 길다. 급하게 마시는 나 같으면 열 잔도 마시고 남을 시간이다. 여유로웠다. 부러운 여유였다. 도(道)? 선(禪)? 도라면 저 여유가 ‘도’이고, 선이라면 저 간격이 ‘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선(行禪)….


   “굽이굽이 고갯길을 다 지나서” 찾아온 시장은 아니었을까? "돌다리를 쉬지 않고 다 지나서" 가야 하는 산 넘어 집은 아닐까? 해가 서산을 넘어가기 전에 다 팔고 고무신, 검정 고무신이라도 한 켤레 사서 비닐봉지에 넣어야 기침, 헛기침을 크게 하며 사립문으로 들어설 수 있을 거 아닐까. 물건 다 팔고 고무신 한 켤레 사서 돌아가야 하는 집이 “행여나 잠들었을 돌이 생각에, 눈에 뵈는 산들이 멀기만”한 건 아닐까. “구불구불 비탈길을 다 지나서, 소나기를 맞으면서 다 지나서, 개구리 울음소리 돌이 생각에” 지난밤 꿈속에서 나타난 고무신을 사러 바삐 찾아온 시장은 아니었을까.


   

   나도 맛이 좀 갔다. 스마트한 시대, 이 시점에 어울리지 않는 상상을 그림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무통을 끄는 돌이 아버지, 커피를 다 마시고 저리로 간다.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끝까지 한 마리 팔지 않았다. 사려고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다.


   

   편이 돌아왔다. 편은 내게 꽈배기를 두 개 사 주었다. 손 짜장도 사주었다. 박상(튀밥)도 사주었다. 쌀 박상이였는데 많이 비쌌다. 구례시장 철물점은 가히 철물 백화점 수준이다. 진열도 그렇고 종류도 그렇다. 철물 살 일이 있을 때 이리로 오고 싶게 만든다. 하지만 일부러 와야 하니 오게 되지 못할 것이다. 숫돌 받침대를 하나 샀다. 편도 여기서 장을 보면 크게 만족한다. 가격에서도 신선도에서도 그렇다.


   “고무신….” 하니, 편이 “웬 고무신?” 한다. 이내 말을 돌렸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기 때문이다. “아니, 신발 점에 요새도 고무신이 진열되네. 살 사람도 없을 텐데.” 했다. 손 짜장 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고, 꽈배기는 출발하기 전에 차 안에서 먹었다. 맛이 있었다. 손짜장도 물론. 쌀 박상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 편이 한 움큼씩 쥐여주면 조심하면서 먹었다. 핸들을 잘못 돌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인용은 둘다섯의 얼룩 고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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