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틈이 써둔 원고들을 다듬고 보완해서 ‘배채진의 길뫼 철학 4’로 상재했다. 다녀온 섬들, 간 김에 보았던 도시의 공간들, 함께 읽고 나눈 독서 모임 담론들, 고분군 답사기 등에 대한 사색 록이기도 하다. 사색의 깊이가 그리 깊지는 않다.
책 제목을 ‘푸른빛의 항케지’로 정했다. 이는 수색의 왈츠라는 노래의 가사에서 따온 표현인데 항케지는 손수건(handkerchief)을 말한다. 항케지가 그때 어법으로도 맞았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내가 품고 있는 용어인지라 그대로 쓰기로 했다. 요즈음도 행커치프를 ‘행커치’라고 줄여서 부르는 경우를 더러 본다.
수색의 왈츠는 20대 초입에 내 심중으로 들어와서는 지금까지 ‘마음의 창’이 되어 있다. 그 창문을 열면 산 너머 저곳에 있는 풍경이 눈앞에 열린다. 그래서 수색의 왈츠가 나에게는 지평의 선이기도 하다. 그 창가에 서면 나의 생물학적 나이는 내 앞에서 무색해진다. 그래서 수색의 왈츠가 나에게는 ‘어제의 나’를 ‘내일의 나’로 이어 주는 손수건이다. 손수건, 받았을 때 더욱 가슴 설레게 하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팬더믹은 그러잖아도 넓지 않은 나의 삶의 반경을 더 좁혔다. 하지만 코로나 팬더믹은 나를 책상 앞에 더 오래 앉아 있게 했다. 언택트라는 비대면 생활의 일상화는 나를 밭일을 마친 후 곧바로 글 작업실에 들어가게 했다.
이런 배경에서 6개월여 글 꼭지들과 씨름했지만, 손가락이 무디고 머리가 아둔해 나의 글에 예지의 실오라기 가느다란 빛줄기 한 줄도 제대로 입혀주지 못했다.
지난번의 ‘언제나 강 저편’의 표지에 이어 이번에도 쓰라고 사진을 주신 진주의 저명한 포토그래퍼 박정일 형이 무척 고맙다. “쌍떡잎식물 합판화군 초롱꽃목 초롱꽃과의 여러해살이풀”이라고 하는 ‘층층잔대’ 사진이 푸른빛의 항케지를 이리 잘 표상할 수가 없다.
내가 하는 일을 언제나 믿고 지켜 봐주는 나의 편, 길뫼재 글 작업실의 낡은 플라스틱 의자를 꺼내고 새로 넣어준 의자, ‘아이핏 헤드레스트 럼버 서포트’라는 의자에 앉으니 푹신하고 편하다.
사위 딸들의 변함없는 성원은 우리 내외에게 삶의 활력소다. 자녀들이 건네준 최신형 ‘Tab S6’가 글 작업할 때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11월이다. 11월, 늧어도 11월에는 중고 폴크스바겐을 한 대 사서 먼 곳까지 전 속력으로 달려 여행을 떠나겠다는 「늦어도 11월에는」의 그 11월이다. 그 11월도 이제 끝자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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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해 그러니까 어제 즉 2020년 12월 31일 밤에 기쁜 소식을 하나 우연히 확인했다.
매일 09:00~11:00에 진행하는 CBS FM 음악방송, 강석우의 <아름다운 당신에게>에서 2020.12.18일에, 나의 책「푸른빛의 항케지」가 소개되었다. 제1부의 <강석우가 들려주는 음악과 에세이> , '이야기 하나 그리고 음악', 음악으로의 행복한 여행'에서, "철학자이면서 수필가 배채진 선생의 에세이"라는 제목으로 나의 글 '저렇게 빨리'를 강석우가 낭송하였다.
위의 사실을 CBS FM 음악방송 홈페이지, 해당일자에 들어가서 확인했다. 어젯밤 밤 10시경에 인터넷 서핑 중에 확인한 기쁜 소식이다.
지난해 11월 20일에 출판한 나의 네 번째 에세이집「푸른빛의 항케지」 홍보를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고 얼마의 비용도 투입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출판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나의 부족한 책을 발견하여 12월 18일에 방송(CBS FM)에서 소개해준 것은 나로서는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2020년 12월 31일 밤에 받은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