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환이 작사하고 이진섭이 작곡한 '세월이 가면'
①잊지 못할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이 내겐 있는 것 같지 않다. 있었다면 젊은 시절에 있었을 것이다. 없었을 것 같지도 않다. 젊은 시절에 그 누구와 함께 앉은 커피집의 의자가, 가로등 불빛이 어슴푸레 보이는 밤 창가의 의자가 한 번이라도 없었겠는가. 그런데 지금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 있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세월이 많이 갔다. 나는 여기까지 왔고.
②구월이 오는 소리가 ‘구월이 가는 소리’와 함께 손잡고 와서는 구월을 데리고 가버리더니, 어느 틈에 시월 중반이다. 소년 시절의 얼굴로만 남아 있던 섭이 성님, 친구로 어울려 주었지만 알고 보니 한참 성님인 섭이 성님 내외분과 걷기로 한 약속이 당일에 깨져 버렸다. 우리 아이들 외할머니에게 갑자기 병원 갈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③남강 변의 진주성,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이라는 가사가 샹송으로 흐르는 ‘세월이 가면’의 박인환 시인이 또 이진섭 작곡가가, 성안의 어느 찻집 가로등 유리창 안에 앉아 있을 것 같은 진주성의 분위기를 느껴 보려 했는데…. 다시 날을 잡아 봐야지. 시월이 가기 전에 잡아 봐야지. 세월, 많이 갔다. 여기서 다시 세월이 더 가면, 우리들의(나의) 세월은 “나뭇잎에 덮여서” 묻히게 된다. 그래서 지금, ‘지금’이 좋고 ‘이 시월’이 좋다. 맞이하는 매번의 ‘이’ 날-달-해가 그래야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