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에 가면 소식을
나성의 목련 : “이곳 캘리포니아의 날씨는 일 년 내 온화해서 사계절의 구분이 확실하지 않다. 그래서 좋다는 이들도 그래서 싫다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전자에 속한다. 추울 땐 한국의 이른 봄 날씨 정도이고 더울 땐 늦여름 정도의 날씨. 그래서 전국의 무숙자들에겐 이상향이라고 불린다는 이곳. 일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한 목련은 만개했다가 지는 단계이다. 자목련이 무척 많은 이곳은 목련을 동양적인 꽃나무로만 생각했던 나의 고정관념을 깨트렸다.” (이정아 첫 번째 수필집 『낯선 숲을 지나며』 302쪽)
나성의 라일락 : “유행가 가사처럼 라일락꽃 향기 흩날리던 날 교정에서 우리는 만났다. 교수님이 다리 놓아준 축제 파트너였다. 인연은 따로 있는지 결혼까지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결혼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열렬한 사이가 아니었기에 탐색전을 거쳐 이리 오랫동안 오게 되었나 보다. 참을성 없는 내겐 지나온 세월이 아주 대견하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기 전에 중간 점검해 보는 은혼. 둘 다 흰머리 성성한 은발 되었으니 말 그대로 은혼이다. (이정아 두 번째 수필집 『선물』 41쪽)
나성의 부겐빌레아 : “담장의 부겐빌레아도 핫 핑크색 꽃을 잔뜩 뽐내며 이미 봄이 한창임을 알리는 이곳의 3월.” (위의 책 304쪽)
나성의 자카란다 : “다시 오월이 되었습니다. 늘 그렇듯 거리의 자카란다 꽃이 만발했습니다. 보랏빛 너울을 쓴 나무는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꽃잎을 날립니다. 거리의 자동차 위로 행인들 머리 위로 보랏빛 꽃잎이 하르르 쏟아집니다. 이 그림 같은 풍광을 보고 지낸 지 27년이 되었습니다. 그랬어도 아름답다는 느낌보단 애잔하다는 마음이 더합니다. 보랏빛이 주는 슬픔과 낯선 곳에서의 삶이 중첩되면서 공연히 슬퍼지는 봄입니다. (이정아 세 번째 수필집 『자카란다 꽃잎이 날리던 날』 4쪽)
22일 토요일, 을숙도 문화회관 공연장 무대에 올라가 우리가 불 노래는 <진주조개 잡이>와 <나성에 가면>이다. 하와이에 가서 진주조개를 잡고 본토에 상륙해 나성을 점령하자는 뜻이다. 우리는 ‘소나무 색소폰 앙상블’을 말한다. 소나무란 ‘소리를 나누는 무리’라는 뜻이고. 만일 앙코르가 있으면 <내 나이가 어때서>를 불 것이고. 아니, 아예 앙코르를 유도하기로 했다.
이 두 개 악보를 내가 구해서 제공했는데 ‘나성에 가면’을 보고서는 “나성이 어디냐? 홍콩 바로 옆이냐?”라고 묻는 회원이 대부분이었다. 젊은이라면 모르겠는데 세월의 켜를 쌓을 만큼 쌓은 분들의 질문인지라 당황한 쪽은 나였다. 아무튼, ‘나성에 가면’은 LA를 더 아련히 그려보게 하는 노래다. 가사도 그렇고 멜로디도 그렇고.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이 노래를 부른 세 샘 트리오의 세 멤버 중 두 명의 남자 멤버가 이 노래를 부른 후 나성으로 이민을 했다고 한다. 그 후로 혼자 남은 여자 멤버 권성희가 노래를 부르는 걸 보면 나성으로 간 동료 멤버들을 보내며 부르는 심정이라는 짐작을 지레 하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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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사랑의 이야기 담뿍 담은 편지. / 나성에 가면 소식을 전해줘요. 하늘이 푸른지 마음이 밝은 지. / 나성에 가면 꽃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어 보내요. / 나성에 가면 예쁜 차를 타고 행복을 찾아요….”
목련, 라일락, 부겐빌레아, 자카란다…. 이 중 자카란다는 아직 직접 보지 못했다. 그의 글에서 나성의 수필가이신 이정아 님도 이 꽃들은 언급하는 심정이 아련함인 것 같던데, 나성으로 누구를 보내보지도 못했고, 나성에서 온 꽃 편지를 받아본 적이 없는 나도 이 꽃들을 상상하니 아련해진다. 이정아 님께 그의 첫 번째 수필집을 받은 해가 2004년인데 12년 후인 올해 얼마 전에 세 번째 수필집을 해운대에서 받았다. 벌써 세 권 째다. 바깥 님과 더불어 오신 귀한 걸음, 힘든 걸음을 하신 두 분께 겨우 도야지 국밥 한 그릇 내어놓은 내 손이 부끄럽다. 지금쯤 나성의 보금자리에서 여독을 다 풀어냈는지 모르겠다. 몇십 년 만에 처음이라는 강력한 태풍 와중에 다녀간 남해의 아침이 더 선명히 각인되었을 것 같다.
나성, 꽃 모자, 예쁜 차…. (아래 사진은 1995년 나성에 갔을 때의 우리 다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