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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댄힐 Nov 01. 2024

다시 섬에서 바라보는 섬

사량도

저기 그리 멀지 않은 섬, 소나무 사이의 사량도를 이곳 라키비움에 서서 바라볼 때면 내 머리엔 박완서의 단편 <그리움을 위하여>가 매번 먼저 스친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도 춥지 않은 남해의 섬, 노란 잎이 푸른 잔디 위로 지는 곳, 칠십에도 섹시한 어부가 방금 청정 해역에서 낚아 올린 분홍 빛 도미들을 자랑스럽게 듣고 요리 잘하는 어여쁜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풍경이 있는 섬, 그런 섬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에 그리움이 샘물처럼 고인다."

여기서 말하는 섬은 사량도이다. 작품 속 화자(話者)에게는 어렸을 때 한 집에서 자란 여덟 살 아래 사촌 여동생이 있다. 부지런하고 얼굴도 반반했던 그녀는 열두 살이나 많은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지만, 남편의 병시중을 평생 하다시피 하다가 이젠 홀로 옥탑방에서 사는 처지다.


그런데 그녀는 시집을 잘 가서 부유하게 살고 있는 사촌 언니인 화자 집에 십수 년 동안 일주일에도 몇 번씩 가서 살림을 도맡아 살아주었는데 그러던 그녀가 무덥던 여름 어느 날 더위를 피한답시고 어느 섬으로 돌연 떠나 버린다.


그 후 오랫동안 감감무소식이던 동생이 추석을 앞둔 어느 날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불쑥 나타나서는 "저기 남쪽 섬 사랑도(사량도)에서 영감 하나를 만나 사랑에 빠져 버렸다"라고 싱글벙글 수다를 떨다가, 살림 못하는 언니 즉 화자를 걱정하며 다시 사량도로 떠났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 동생이 다시 나타나서는 "혹시 그 집에서 내가 재산이라도 노리는 줄 오해할 수도 있어서 호적은 포기했고, 나는 그 사람의 와이프 제사상 차릴 때, 그는 내 남편 제사상 차릴 때 돕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살고 있으며, '하루 종일, 밤새워 얘기해도 할 얘기가 또' 생긴다"라고 말하면서 환하게 웃는다.


화자는 "시냇물 위로 청정히 피어 오르는 복사꽃 같은 동생의 말을 듣고 그 작은 섬의 선주(船主)인 그 남자를 비로소 그녀의 남편으로 인정"하게 된다.


화자의 말이다 : 나는 동생에게 항상 베푸는 입장이라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상전 의식이지 동기간의 우애가 아니었다. 나는 상전 의식을 포기한 대신 자매 애를 비로소 찾았다.


화자는 그런 사촌 동생이 그립지만 그리움을 간직하기 위해서 동생이 살고 있는 섬, 사랑도인가 사량도인가 하는 그 섬에 가지 않고 싶다고 말하며 작품은 끝난다.


한 달 여 사이에 세 번째 와서 서는 여기 남해 창선 장포 포구 위 라키비움 언덕, 오늘은 일곱 피아트(fiat) 도반들과 함께 왔다. 피아트, fiat lux(빛이 있으라)의, fiat voluntas tua(당신 뜻대로)의 피아트는 우리 일곱을 그 속에 담는 괄호의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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