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이야기
욕심 없는 마음
(작사 작곡 백순진 노래 4월과 5월)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작은 초가집
내가 먹고 싶은 것은 구운 옥수수
욕심 없는 나의 마음 탓하지 마라
내가 입고 싶은 옷은 하얀 저고리
내가 갖고 싶은 책은 작은 성경책
욕심 없는 나의 마음 탓하지 마라
‘욕심’은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고 ‘욕구’는 무엇을 얻고자 또는 무슨 일을 하고자 바라는 일이라고 한다.
구운 옥수수의 고소한 향이 뇌리에서 아련하게 번진다. 지금 옥수수를 구워 먹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구운 옥수수에서 나는 고소한 향, 어린 시절의 구운 옥수수 향을 상상하고 있다. 기억은 부정확하다. 그래서 이 글을 쓰다 말고 편에게로 가서, 결혼 후 우리 집에서 옥수수를 구워 먹은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린 시절의 향이 맞다.
그때 우리에게 옥수수는 옥수수라기보다는 강냉이였다. 물론 초등학교 음악 시간의 ‘옥수수나무’에서는 옥수수였지만 일상생활에서는 강냉이로도 많이 통했다. 찾아보니, ‘강냉이’라는 이름은 양쯔 강 이남인 강남에서 들어온 물건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옥수수’는 그 알갱이가 꼭 수수 알갱이 같은데, 그 모양이 옥처럼 반들반들하고 윤기가 난다고 하여 ‘옥 같은 수수’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자신을 '옥수수'라고 믿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닭이 자신을 쫓는 것 같아서 잔뜩 겁에 질려있다. 이제는 당신이 옥수수가 아니라는 걸 알잖습니까? 의사가 묻자, 자신을 옥수수라고 믿는 사람이 말한다. 하지만 닭들은 그걸 모르잖아요?” 김영하의 <옥수수와 나>는 인간이 추구하는 육체적, 물질적 욕망이 삶의 진정성을 파괴하고 있는 현실을 환상적인 기법으로 풀어낸 작품이라고 한다. 우화적 요소를 더한 환상적인 모티프를 배치하여, 닭들이 자기를 옥수수라고 쫓아오는 망상에 시달리는 소설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고 한다.
옥수수가 우리를 병들게 한다! 먹거리에 대한 통념을 뒤엎는 기록이 몇 해 전의 SBS 스페셜 다큐멘터리 ‘옥수수의 습격’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기존의 옥수수에 관한 통념을 뒤집고 가축을 통한 옥수수 섭취가 우리의 몸에 어떠한 나쁜 영향을 끼치는지 알려주었다. 본방은 사수하지 못했고 유튜브에서 봤다. 이것을 종이에 옮긴 것이 책 ≪옥수수 습격≫이다.
“옥수수나무 열매에 하모니카가 들어있네. (중략) 옥수수나무 잎에서 짱아가 혼자서 잠을 잔다.” 김성태 곡인 동요 ‘옥수수나무’다. "저 새는 긴 날을 노래 부를 때 옥수수는 벌써 익었다."는 ‘켄터키 옛집’ 가사 일부이다. 내게 옥수수는 하모니카 옥수수로 출발하여 새들이 긴 날을 노래 부르는 그리운 옛집의 옥수수였다. 하모니카 옥수수에도 가난이 아픔으로 박혀 있고 켄터키 옛집의 옥수수에도 노예의 질곡이 있다. 그래도 그 옥수수들은 서정적 정감 어린 옥수수였다.
소설 ‘옥수수와 나’ 그리고 다큐멘터리 ‘옥수수의 습격’을 보고나니 옥수수를 더는 서정적인 눈으로만 보지 못하겠다. 식량 전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파헤쳤다고 하는 <그 많던 쌀과 옥수수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에서는 소름도 끼치고….
옥수수를 수확하고 대를 뽑았다. 지난 늦여름 얘기다. 내 손으로 길러 삶아 먹는 옥수수, ‘대학 옥수수’보다 맛이 덜하지 않았다. 줄기를 꼭꼭, 잘근잘근 씹던 어린 시절의 옥수수 대가 생각이 나서 그렇게 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씹으면 달콤한 맛이 있어서 많이도 씹었었는데. 편이 옥수수 수염은 뽑아서 다 모아 두었다. 인형의 머리카락을 만들려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옥수수 수염 차를 만들어 보려고 모아서 말린다고 한다.
‘옥수수의 습격’을 보고 했던 긴장, ‘옥수수와 나’를 읽고 잠시 느꼈던 정체성 혼란을 ‘하모니카 옥수수’, ‘옛집 옥수수’를 불며 들으면서, 4월과 5월의 ‘욕심 없는 마음’을 들으면서 풀고 수습한다. “그러면 내년엔 옥수수 심지 말까요?” 하는 편의 물음에 지난여름이 다 가도록 나는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내년에도 옥수수를 심을 것 같다.
욕심을 버려야겠다. 세상이 어지럽다. 시절이 하 수상하다. 욕심을 무화시켜야겠다. 욕구가 선을 넘어 욕심 또 게걸스런 탐욕으로 팽창하지 않도록 벗고 비우는 12월의 저 산과 들을 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혀야겠다. 그렇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은 구운 옥수수, 욕심 없는 나의 마음 탓하지 마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