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에 부딪힌 돌멩이를 애써 외면하려 했다. 밭일 20년, 이미 수많은 돌들과 싸워온 데다 허리도 조심해야 하니. 하지만 운명은 피할 수 없는 법. 결국 곡괭이를 들었다.
넷플릭스 영화 ‘발굴(The Dig)은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영국 서퍽의 서튼 후 유적 발굴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주인공 에디스 프리티(캐리 멀리건)는 남편을 잃고 어린 아들과 함께 시골 저택에 살며, 자신의 대지에 있는 고분들이 특별하다고 느낀다. 그녀는 아마추어 고고학자 바실 브라운(레이프 파인즈)에게 발굴을 의뢰하고, 그 결과 7세기 앵글로색슨 왕의 선박 묘지가 발견된다. 이는 고고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대영박물관과 런던대 전문가들이 개입하고 갈등이 시작된다.
참고로 레이프 파인즈는 영화 <콘클라베>에서 로렌스 추기경 단장 역을 맡은 배우이다.
이 영화는 과장 없이 절제된 감정과 조용한 톤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잿빛 하늘과 황량한 초지, 흙먼지 날리는 현장은 인물들의 내면을 비추고, 국가적 유산보다 한 여인과 한 노동자의 조용한 삶에 초점을 맞춘다.
‘발굴’은 고고학적 행위를 넘어, 각 인물들이 삶의 의미와 상처, 유산을 되새기며 자신을 발굴해 가는 과정으로 그려진다. 흙 속 과거를 파헤치며 이들은 결국 자신의 내면에 닿는다.
밭 한가운데, 나는 문명의 흔적이 아닌 돌멩이의 저항과 마주했다. 삽은 미끄러지고 괭이는 한숨을 쉬고, 나는 점점 돌을 파는 인간이 아니라 돌에게 뽑히는 인간이 되어갔다. 그때 내 안의 바실 브라운이 속삭였다.
“이건 단지 농사일이 아니야. 너는 지금 너 자신을 파고 있는 거야.”
땅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석물(石物). 고대 왕의 배인지, 고인돌인지 잠시 숙연해졌다. 마침내 인간의 체념과 삽, 괭이를 총동원해 돌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이건 스톤헨지야!”
내가 캐낸 건 단지 돌이 아니었다. 농사의 의지, 노동의 비애, 그리고 약간의 웃음이었다. 그날 나는 잠시 현대의 바실 브라운이었다.
며칠 뒤 편에게 발각되어 혼쭐이 났다.
“나잇값 좀 해라!”
맞다. 내 나이의 노동은 완만해야 하는데, 그걸 깜빡 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