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창선도 고사리밭에서
여기는 남해 창선도, 남파랑길 37코스. 한겨울임에도 고사리밭은 봄처럼 초록빛을 머금고 있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고사리밭은 곡선의 미학을 따라 리듬을 이루며 산등성이를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초록이 지닌 강인한 생명력은 차가운 계절 속에서도 따스한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전망 좋은 언덕 위에 서서 발아래 펼쳐진 풍경을 내려다보면, 마치 유럽의 농촌을 닮은 듯한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이곳은 분명히 한국적이다. 소나무 숲과 산등성이를 잇는 구불구불한 길, 그 사이사이 손으로 정성껏 일군 고사리밭은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땀과 인내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풍경이다.
그 언덕길 아래, 스러지듯 놓인 찌그러진 냄비 몇 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기능을 잃고 버려졌지만, 그 안에는 분명 누군가의 손길과 식탁의 온기, 그리고 조용한 삶의 자취가 배어 있다. 그것은 그저 낡은 금속 덩어리가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아낸 '증인'이다.
찌그러진 냄비는 평범하거나 결함 있는 사물이 지닐 수 있는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의미를 떠오르게 한다. 겉보기엔 쓸모를 다한 물건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분명 누군가의 기억과 경험, 작은 역사가 담겨 있을 것이다.
그 찌그러짐은 마치 인간의 주름과도 같다. 살아가며 겪은 고난과 시간이 만들어낸 흔적이자 증거다. 완벽하지 않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식사와 그에 얽힌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생일 아침의 미역국을, 혹은 감기로 누운 날의 따뜻한 죽을 끓였던 냄비였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더 이상 쓰이지 않지만, 그 무게만큼은 가볍지 않다.
버려진 사물들은 종종 인간의 삶을 닮았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결함이 있더라도, 저마다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그 냄비는 마치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 역시 한때 누군가에게 필요했던 존재였노라’고.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조용히 자리를 내려놓은 냄비. 그것은 인간의 삶과도 닮아 있다. 기능을 다했다고 해서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존재의 흔적이 더욱 깊이 새겨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쓸모로만 존재를 평가하는 대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휴머니즘 아닐까.
냄비가 찌그러지는 과정은 인간이 고난을 겪고 변화하는 과정과도 닮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누군가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면, 그것은 끈기와 적응력의 상징일 것이다. 완벽함보다는 시간 속에서 살아남은 것들의 품격이야말로, 진짜 아름다움일지 모른다.
보름여 만에 다시 찾은 남해 창선도. 이번에는 넓으면서도 결코 크지 않은 고사리밭에서 시간을 보내고, 길뫼재로 돌아왔다. 고사리밭 너머로 펼쳐지는 숲은 계절을 따라 색을 바꾸며 고요히 배경이 되어주고, 바람이 불 때마다 풀잎은 속삭이며 흔들린다. 어딘가에선 멀리서 소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그 속에서 느리게,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다시 서 본 고사리밭 언덕, 사람들은 이곳을 ‘한국의 토스카나’라고 부른다. 이제는 그 말이 과하지 않게 다가온다. 아름다움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만들어낸 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풍경이라는 걸, 나는 이 언덕에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