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우리 집
지금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어쩌다 꿈을 꾸면 그 꿈의 주인공은 대개 유년의 ‘나’이고, 그 배경은 유년의 ‘집’이다. 그 집은 1970년 무렵, 어느 날 조용히 사라졌다.
그 시절 라디오 전파를 자주 타던 칸초네, 카사 비안카(Casa Bianca), 라 노비아(La Novia), 노노레타(Nonnoretta) 등이 생각난다. 그중에서도 ‘하얀 집’으로 번안된 패티김이나 정훈희의 노래는 유난히 가슴 깊이 남았다.
‘Casa Bianca’는, “하얗지만 낡은” 집을 회상하는 노래로 내 마음을 무척 건드렸다. 처음 들었을 때, 가사 하나하나가 내 속을 툭툭 두드리는 것만 같았다. 지금도 그 노래를 들을 때면, 나는 사라지고 없는 내 유년의 집을 떠올린다.
낡은 그 집을 도면으로 그려보겠다고 마음먹은 건 10년도 더 전의 일이다. 오랫동안 미루던 일을, 결국 사흘 만에 끝냈다. 그리고 오늘, 도면을 다 그렸다. 공간들을 다 기억하는 줄 알았는데 연필과 자를 들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 집은 정말로 낡았었다. 아니, 낡아도 너무 낡은 양철집이었다. 마당 한편엔 장독대가 놓여 있었고, 아버지는 툇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우셨다. 겨울이면 뒷 창문에 김이 서려 얼어붙었고, 방 안의 아랫목 또한 냉기가 지배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그 모든 풍경과 소리가 지금도 내 마음 어딘가에서 온기로 남아 조용히 숨 쉬고 있다. 그 집은 나의 처음이었고, 나의 뿌리였다.
세월은 무심하다. 그 집은 벌써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지금 공군 체력 단련장이라는 이름의 골프 휴게실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집의 낡은 판자벽 아래에서 내가 세상을 배웠고, 울고 웃으며 자라났음을. 그 집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을. 부엌에서는 어머니가 타지 않는 생나무 가지 연기에 기침을 콜록거리셨고, 그런 사태를 모른 척 신문을 넘기던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그 장면이, 그 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정훈희는 ‘Casa Bianca’를 이렇게 노래했다. “새하얀 집 하나, 하얀 꿈을 간직한 다정한 내 집이었어요. 보금자리였어요.”라고. 패티김은 “성당에 종소리가 산마을에 울리면, 허전한 이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라”라고 불렀고, Vicky Leandros는 “There’s a white house in a town. There’s a fire, a chair, a dream.”(어느 동네에 하얀 집 한 채. 그곳엔 난로와 의자, 꿈이 있었죠.)이라고 낡은 하얀 집을 회상했다.
그 집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내 마음속 그 집은 아직도 빛나고 있다.
이제는 기억마저 흐릿해지는 나이지만, 나는 가끔 눈을 감고 그 집을 다시 찾아간다. 기억은 희미해져도, 그 집의 감촉은 여전히 선명하다. 나는 그 집의 아들이었고, 그 집은 나의 첫 세상이었으며, 지금도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는 ‘내 혼의 집’이다.
내 마음속엔 아직도 낡은 ‘하얀 집’이 조용히 문을 열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부터 하나하나 그 공간을 더듬으며, 그 집 시절을 회상하려고 한다.
타작마당 아래 노목 돌감나무 한 그루 또 그 아래의 내 유년의 집 양철집, 도면으로 그려놓고 보니 엄청 큰 집이다. 좀 크기는 했지만 엄청나게 큰 집은 아니었다.
유년은 삶의 무게를 아직 알지 못하던 때이다. 그때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세상은 참 커 보였다. 하루가 한 계절 같았고, 작은 것에도 마음이 흔들렸다. 어른들의 그림자 너머에서 나만의 세계를 만들고 부수며 배우던, 돌아갈 수 없기에 더욱 반짝이는 기억의 안쪽, 아, 나의 유년!
유년시절, 어느덧 먼 데서 들리는 바람처럼 내 마음의 성소에 머물고 있는 시절이다. 그 시절은, 불완전했지만 순진했고, 어리숙했지만 눈부셨던 마음의 첫 집이다. 때 묻지 않은 첫 웃음, 이유 없이 흘렸던 눈물, 세상의 처음 냄새가 깃들어 있던 시간들, 아! 나의 유년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