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130
물독 뚜껑 위에 놓아둔 한 줌 쌀이 그대로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곤줄박이(혹은 박새)가 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 왔어도 집 앞까지는 다가서지 못했을 것이다. 쌀이 그대로 있다는 말을 하니, “그릇에 담아 테라스 앞 나무 아래에 놔둬 보세요”라고 한다. 그럴까 하며 전화를 끊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고 삽과 곡괭이, 거름 소쿠리, 괭이를 챙겼다. 호박 구덩이를 팔 참이었다.
구덩이 열 개를 파니 오후가 다 갔다. 큰 돌이 많아 처음부터 끝까지 곡괭이질이었다. 파낸 흙을 긁어내고 퍼 올리는 건 삽과 괭이 몫이었지만, 중심은 곡괭이가 했다. 지난번 나무 구덩이 아홉 개까지 합치면 열아홉 개가 바위밭에 뚫렸다. 이미 주문해 둔 사과, 복숭아, 석류, 살구나무가 2월 중순쯤 택배로 도착할 터다. 구덩이마다 소똥 거름을 가득 부으며, 언젠가 주렁주렁 매달릴 호박을 상상했다.
초승달이 형제봉에 걸렸다. 손톱 같은 달을 보다가 안으로 들어와 나팔을 꺼냈다. 오늘은 Non Ti Scordar Di Me, ‘물망초’를 불어 본다. 삐끗할까 조심하며 한 곡 두 곡 불었지만, 곡괭이질로 지친 몸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만 악보를 덮는다. 그러면서도 오래 묵은 의문 ― 가사 속 ‘비오델 향기로운 봄을 찾아’의 ‘비오델’이란 무엇일까 ― 역시 접어둔다. “잠이 와서 자야겠소. 잘 자시요.” 전화를 끊으니 손톱달도 이미 넘어갔다.
날이 밝았다. 물론 밝기 전인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산그늘이 아파트나 빌딩 등의 건물 그늘보다 더 짙은 모양이다. 이곳의 여명이 부산 집의 여명보다 늦다. 오늘 일은 차나무에 거름 주는 일이다. 차나무에 거름을 주고 나면 이번 겨울의 거름 주기 일은 모두 끝을 맺는다. 말하자면 ‘봄맞이’ 준비가 일단 완료되는 셈이다. 여덟 시부터 시작한 일, 열 시를 넘기니 배가 좀 고프다. 챙겨 가지고 온 설 밥풀과자와 커피를 새참으로 챙겨 테라스에 앉았다. 잠시 휴식, 꿀맛 같은 휴식 시간이다.
이때 푸드덕, 곤줄박이가 날아왔다. 셔터 한번 급히 누르고 나니 푸드덕 날갯짓, 저만치 나뭇가지에 앉는다. 물독 위의 쌀을 앞, 나무토막 위에다 옮겨 놓았다. 모이 준비가 되지 않아 급한 대로 쌀을, 내 식량 쌀을 한 줌 놓았지만, 준비되는 대로 새 모이를 놓아줄 참이다. 일하는 사이에 유심히 살폈지만 내 있을 동안에 쌀을 쪼아 먹지는 않았다. 아예 접근을 시도하지 않았다. 서너 번 얼굴을 보여주고는 어디론가 가더니 아예 돌아오지 않았다.
3년, 씨를 심어 자란 차나무들이, 3년 그것도 세월이라고 이제 제법 자랐다. 그렇게 자란 차나무들이 밭 둘레 이곳저곳에 제법 된다. 3년, 묘목으로 심은 나무들이 3년 그것도 세월이라고 제법 키가 자랐다. 매화나무는 꽃봉오리를 튼실하게, 많이 맺고 있다. 돌담 아래의 차나무들에 거름을 주는 것으로 오늘 일은 다 마치게 된다. 이제부터 할 일은 연장 챙기고 돌아갈 차비하는 일이다. 이 또한 하나의 큰일이다. 시간을 제법 잡아먹는 일이다.
범이와 호비의 열흘 분량 식량을 사료통에 챙겨 넣고 창고 문을 닫는 것으로 돌아갈 채비는 끝이 났다. 한 30분의 여유가 있다. 나팔을 들었다. 다시 ‘물망초’다.
"해 없이 추움의 땅에서 제 제비 떼들 모두 떠나갔네. 비오델 향기로운 봄을 찾아….”
물망초, 아마 고등학교 때 보았을 영화 ‘물망초’에서의 탈리아비니의 노래, 아련한 물망초. 영화보다 노래를 먼저 알게 된 것은 음악 시간 때문이었을 것 같고, 이런저런 물망초 꽃말을 듣게 된 것은 진주 남강이 내려 보이는 망경동 언덕 집의 고교 키 작은 친구를 통해서였다. 영화는 맨 마지막 순서다. 꽃말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영화의 원제는‘봄바람’이었다던가.
물망초는, 무엇(something)도 없고 그 무엇도 모를 서툰 사춘기 그때부터 생각만으로 아련해지던 그 무엇이었다. “비오델 향기로운 봄을 찾아”의 비오델은 미지의 세계로 이어지게 하는, 궁금증 더해주는 언어였다. 비오델, 노래를 배울 처음부터 분명 비오델이었다. 돌아가면 이번엔 꼭 확인해 보겠다고 생각했다.
하도 오래되어 누렇게 바랜 『학생애창 300 곡집』을 폈다. 역시 '비오델'이었다. 비오델, 어는 곳을 말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짐작하면서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비오델과 닮은 가사 단어는 viole이다. 지 집요하게 뒤졌더니 가사에 대한 해석이 나온다.
드디어 찾았다. 이런 뜻이었다.
“제비는 떠나버렸네. 나의 춥고 해 없는 땅을. 제비꽃 사이의 봄을 찾아서(cercando primavere di viole). 행복의 사랑 보금자리를 찾아서….”
그러니까 비오델은 오랑캐꽃, 제비꽃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비올레 향기로운 봄을 찾아"로 해야 할 것을 "비오델 향기로운 봄을 찾아"로 잘못 인쇄해, 그 당시 노래를 익힌 사람의 머리에 비오델로 고착시킨 것이다.
오늘, 종일 비가 내렸다. 어제 오후 일은 비 맞으면서 했다. 겨울비인지라 걱정했지만, 그리 많이 내린 비가 아니어서 맞으면서 했다.
새는 오지 않았다. 어디서 비를 피하고 있을 것이다. 새는 제비가 아니었다. 이 땅의 추위를 피해 멀리 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오면 그건 이 땅에 다시 봄이 것을 의미한다. 새는 제비 또 봄을 연상시켜주기도 했다.
부산으로 돌아오는 고속도로, 비 내리는 고속도로인지라 엄청나게 천천히 조심 운전했다. 오늘, 거름을 준 나무들이 비에 젖는 모습을 연상하면서, 비오델 제비꽃의 향기로운 봄을 상상하면서 젖어 있었다. 상념에 젖고, 필 매화의 봄에 젖어 있었다.